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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실하게’와 ‘되는대로’를 뒤집을 때 벌어지는 사고 : 2020 도쿄 올림픽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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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이 설득력 있는 문장은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의 좌우명입니다. 인생은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리 성실하게 잘해도 밖에서 변수가 생겨나면 뜻대로 풀리지 않을 수 있는 거니까요. 반면 하루하루는 어느 정도 의지대로 끌고 가는 게 가능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의지로 가능한 일은 성실하게, 운에 맡겨야 하는 일은 되는대로’라고 풀이할 수 있는 이 문장은 누군가의 좌우명으로만 볼 게 아니라 일종의 상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상식’을 따르지 않는, 즉 그것을 거꾸로 이행하는 사람들은 자주 변을 당합니다. 최근 여러 가지 의미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랑종>에서 이를 잘 표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구마의식을 하려 했던 무당 두 명이 의식 전날과 당일 모두 죽어 나가자, 무당의 언니이자 귀신 들린 주인공의 엄마 ‘노이’가 갑자기 자신에게서 악귀에 대적할 수 있는 조상신이 느껴진다면서 카메라맨 1명을 제외하고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향을 받아듭니다. 문제는 노이가 그 직후 향을 전부 거꾸로 뒤집어 향로에 처박는다는 겁니다. 결국 그 행동 때문에 향을 주지 않은 카메라맨을 뺀 모두가 악귀에 들리는 상황이 벌어지죠. 무속 신앙, 아니 거의 모든 신앙에서 상징물을 뒤집는 것은 신성 모독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상식을 거스르면, 그것을 거꾸로 꽂아버리면 그 주체는 큰 화를 입고 맙니다.


 안타깝지만 올림픽대표팀 남자축구 대표팀은 상식과 거꾸로 가는 행보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의지로 가능한 일을 성실하게, 의지만으로 안 되고 운이나 전후 상황 같은 다른 것들이 필요한 일을 되는대로 하는 게 상식이라고 가정할 때 김학범 감독은 이것을 뒤집어 한 감이 있습니다. 의지로 가능한 일이었던 소집, 선발, 훈련, 전술과 같은 일은 결과적으로 되는 대로 진행된 모양새가 나왔고, 대신 의지만으로 안 되는 일은 성실하게 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상식을 거꾸로 돌린 행보가 내내 이어진 결과 팀은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성실하게 → 되는 대로


 많은 축구팬들은 김학범 감독이 소집훈련과 최종 발탁, 즉 준비 과정만큼은 성실하게 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지나치게 많은 차출 횟수와 체력훈련을 과하게 중시하는 모습으로 인해 숱한 논란이 있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차례 담금질해온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최종 선발 명단을 보면 준비조차도 되는 대로 했다고 이야기해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3년을 훈련으로 준비한 팀의 최종명단치고는 우려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먼저 조별리그 1차전부터 대표팀의 발목을 잡은 백업 스트라이커의 부재가 눈에 띕니다. U-24 팀에서 가장 많이 뛰었고 주전으로 자리를 잡았던 오세훈과 조규성 중 한 명도 올림픽 최종명단에 발탁되지 못한 겁니다. 팀의 사정이나 특정 포지션의 선수 숫자에 따라 발탁 선수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올림픽 대표팀에는 실력 있는 2선 자원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한 명이라도 더 선발하기 위해 백업 스트라이커를 포기한 건 불안하긴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행보입니다. 

 올림픽 최종명단이 종전과 같이 18명이라면 말입니다.


 18인 명단 발표 다음 날 코로나19로 인해 가용 선수가 적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4명(골키퍼 1명 필수)을 추가 발탁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톱은 이 명단에도 없었습니다. 황의조는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고 프랑스 리그앙에서도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는 좋은 스트라이커지만, 2~3일 간격으로 경기를 펼치는 대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책임지는 건 그에게도 힘든 일입니다. 김학범 감독도 이 문제를 모르지는 않았던 건지 평가전에서 송민규와 이동준 등을 제로톱에 놓고 경기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효과가 드러나지 않았고, 결국 본선에서는 이 플랜B를 쓰지도 못했습니다. 2선 자원들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해 배제한 또 하나의 톱이 필요한 순간은 0:1로 끌려가던 조별리그 1차전부터 찾아왔고 비어버린 타깃맨의 자리는 센터백 정태욱이 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태욱이 워낙 제공권을 잘 갖춘 선수라고 해도, 전문 공격수가 앞에 서 있는 것만큼 잘할 수는 없습니다. 황의조만을 선발했어도 결과가 좋아서 빈자리를 체감할 상황이 오지 않았다면 좋은 선택이었다는 이야기가 따라왔겠지만, 첫 경기부터 선수가 없어 이른바 ‘땜질’을 시키는 경기가 나왔고 결국 이 선택은 악수가 됐습니다. 더구나 황의조를 향해 크로스를 올리는 게 적잖이 보이던 공격 패턴이었다 보니 ‘이럴 거면 공중 경합에 강점이 있는 공격수를 데려가지 그랬냐’는 지적은 이후에도 나왔습니다.


 와일드카드 선발에서도 문제가 터졌습니다. 황의조 1명에게 톱 자리를 전담시킨 것도 아쉬운 결정이었지만, 다른 와일드카드의 선발과 활용은 대표팀을 더욱 괴로운 상황으로 몰고 갔습니다. K리그 팀이 외국인 선수를 쓰는 이유가 전력보강이듯 올림픽 대표팀이 와일드카드를 선발하는 것 또한 확실한 전력보강을 위해서입니다. 경험과 기량을 갖춘 선수가 연령 제한이 있는 대회에 투입되면 결과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4골(페널티킥 2골)을 기록한 황의조를 제외한 와일드카드는 좋지 못한 쪽으로 많은 이야기를 낳았습니다. 권창훈은 분전했지만, 종전에 있던 부상으로 인해 실전 감각이 완벽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와일드카드에 걸맞은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느냐는 의문에 시달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경기감각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주 포지션이 아닌 왼쪽 윙을 병행하며 적응에 애를 먹었습니다. 기량은 의심할 데가 없지만 컨디션에 물음표가 붙는 선수를 선발한 뒤 최적의 모습을 보일 수 없는 방법으로 투입한 겁니다. 결국 악재가 겹치다 보니 권창훈은 4경기 중 2경기에서 선발에 포함되지 못했고, 여러 차례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고도 득점 없이 대회를 마감했습니다.


 권창훈은 그나마 ‘잘 뛰었지만 기록이 아쉽다’ 정도로 말할 수 있겠지만, 다른 와일드카드인 박지수는 촌극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선발 과정을 통해 대표팀에 합류했습니다. 당초 발탁하려고 했던 다른 와일드카드 수비수를 소속팀과의 협의 없이 최종명단에 포함시켜 놓고, 당연히 실패할 거라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진짜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야 부랴부랴 출국 2일 전에 박지수를 불러들인 겁니다. 수비는 선수 개인의 기량도 기량이지만 조직력이 중요한 자리인데 박지수는 이번 대표팀의 주축인 U-24 수비수들과 이전에 호흡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선발 출전한 조별리그 2·3차전에서 무실점을 기록하고 위기를 차단하며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결국 긴 패스와 스피드를 통해 뒷공간을 계속해서 노린 멕시코와의 8강전에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박지수는 “내가 중심을 잡지 못했다”며 자책했지만, 어이없는 배경 속에 갑작스레 발탁돼서 없는 적응 시간에도 최선을 다한 그에게 수비 불안을 지적하는 건 가혹합니다. 이런 급조에 가까운 발탁은 벌어지지 말았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박지수 발탁과 관해 일어나선 안 됐던 일은 감독과 축구협회의 잘못된 결정에서 비롯됐습니다. 애초 발탁하려 했던 수비수 김민재는 소속팀 베이징 궈안의 차출 허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김학범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민재를 무리하게 최종 명단에 넣은 후 ‘1%의 가능성을 보겠다’는, 출국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국 99%의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벌어졌고 그 대가가 박지수의 출국 2일 전 발탁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축구협회가 김민재의 차출을 위해 전북 현대 구단에게 영입을 제안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모자란 글이지만 꼴에 칼럼이라는 형식을 달고 있어서 거친 표현을 쓰기 껄끄럽습니다만, 누가 주도했든 말 같지도 않은 제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팀 쪽에서 이유가 어찌 됐든 클럽팀에게 특정 행보를 제안하는 건 그 자체로 월권이라는 소리를 들을 일입니다. 해외 팀이 거절하면 차출할 수 없지만, 국내 팀에 온다면 차출이 무조건 가능하다는 계산 역시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그런 계산이 들어간 시점에서 차출을 위해 전북을 이용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감독과 협회는 김민재 차출이라는 큰일 앞에서 미리부터 협조를 구해 발탁 가능성을 높이거나 안 될 상황이면 빨리 포기하고 대체선수를 조기에 합류시켜 호흡을 맞추게 하는 것 중 어떤 방법도 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꼼수를 쓰려다 실패하고, 베이징이라는 감나무 아래에 누워 졸지에 덜 익은 감이 된 김민재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성실하게 진행 및 결정해야 했던 최종명단과 와일드카드 발탁은 체력훈련 일변도의 소집훈련 방식과 묶어 ‘되는 대로’에 가깝게 치러지고 말았습니다.



되는 대로 → 성실하게


 성실하게 해야 했던 일들을 되는대로 했던 김학범 감독은 대신 반드시 하지 않아도 괜찮은 일에 성실을 기했습니다. 무리한 소집과 훈련이 정당했다는 것을 결과로 보여주는 대신 감독으로서의 업무가 아쉬웠다는 걸 결과로 보여준 감독은 정작 원론적이고 튀지 않게 답해도 상관없는 인터뷰에서 과한 성실함을 드러냈습니다. 대표적인 실언이 그 유명한 “일본이 부럽다”입니다. A대표팀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수를 얻지 못해서 소통이나 차출이 원활한 일본이 부럽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일본은 2020 도쿄 올림픽의 개최국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개최국이기 때문에 축구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종목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을 것이고, 이에 맞춰 아시안게임 때는 아예 2020년에 U23이 되는 연령대의 선수들을 출전시키며 올림픽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일본은 감독 또한 A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 모두 모리야스 하지메로 같습니다. 애초에 환경 면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만한 개최국 타이틀이 있었고, 감독은 양 팀이 일원화돼서 차출에 관한 협상이나 갈등은 있을 수 없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이런 한국과 차이가 큰 일본 대표팀의 상황과 구조를 경쟁 대표팀의 현업 U23 감독인 김학범 감독이 모르진 않았을 텐데도 인터뷰에서 일본을 비교 대상으로 놓은 건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인터뷰의 더 큰 문제는 당시 올림픽 대표팀은 가나 U23 대표팀과 두 차례의 평가전을 치르고 체력훈련을 하는 일정이었고 A대표팀은 월드컵 2차 예선을 치르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혹자는 몇 명 올림픽대표팀으로 보내준다고 수준이 높지 않은 2차 예선도 통과하지 못하면 그게 더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평가전과 메이저 대회 예선은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당연히 후자 쪽으로 중요도가 기울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이를 거꾸로 놓고 불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쉬운 행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수 차출에 관한 갈등이야 어느 때든 있을 수 있고 지난해 하나은행컵(A대표-U23대표 간 청백전)에서도 그에 관한 이야기가 가볍게 오갔지만, 그런 일 때문에 예민한 소재인 일본을 꺼내 비판하는 건 오해의 소지도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이야기가 나온 후 A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은 월드컵 예선에 나가는 A대표팀 감독 권한으로 선수를 정당하게 차출하고도, 심지어 A팀 쪽에서 불러서 점검하던 이강인을 U23팀으로 보내고도 듣지 않아도 됐을 비판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김학범 감독이 무엇 때문에 비교 대상으로 맞지도 않고 감정 소모를 부추길 수밖에 없는 일본에 관한 말을 꺼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타인의 생각을 알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로 인해 소모적인 논쟁과 가치판단의 부재가 축구 언론에서 만연했다는 건 부정하기 힘듭니다.

 

 과한 성실함이 드러난 인터뷰가 논란이 된 건 이게 다가 아닙니다. 앞의 것보다 파장은 적었지만 해외파 선수 관련 인터뷰에서도 팬들은 덜컹거렸습니다. 손흥민은 토트넘 핫스퍼 구단으로부터 올림픽 차출 허가를 받았지만, 최종 명단에 발탁되지 않았습니다. 김학범 감독은 이에 대해 “부상 우려가 굉장히 높다고 판단해 제외했다. 보호해야 할 선수는 우리가 못 쓰더라도 보호해야 한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해당 인터뷰만 놓고 보면 선수를 지킬 줄 아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내막을 잘 모르는 몇몇 네티즌들은 그런 반응을 내놓기도 했죠. 하지만 문제는 이런 선수 혹사를 막으려는 행보는 김학범 감독의 올림픽 준비 과정과 완전히 모순된다는 데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고 커리어가 덜 유명한 국내파 선수들은 비시즌과 휴식기마다 소집해서 체력훈련을 시키고, 그 여파로 부상당하거나 경기력이 떨어진 선수는 탈락시켜 놓고 손흥민에게만 다른 잣대를 놓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준비 과정 내내 선수의 상황은 안중에도 없다가 한국 최고의 선수가 발탁 여부로 논란이 되자 몸상태를 걱정했다면서 출전 시간과 부상 부위를 인터뷰로 이야기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김학범 감독의 인터뷰를 거쳐 간 해외파는 또 있습니다. 이강인입니다. 최종명단 발표 후 첫 훈련 당시 이강인을 두고 “일본이 성장 차원에서 구보를 끌어올리는 것처럼 우리도 강인이를 키워줄 필요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이 또한 한 문장만 떼놓고 보면 정말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몇 해 동안 K리그 구단 소속 유망주들이 올림픽대표팀 소집훈련 이후 부상과 컨디션 난조에 시달린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닙니다. 구단들이 ‘대승적으로’ 많은 차출에 응했더니 해당 선수들은 어떤 대표팀과는 다르게 다녀올 때마다 떨어진 폼을 보여주고, 정작 차출을 요청한 감독은 스페인에서 이미 성장세를 입증받고 있는 선수를 두고 대승적 차원을 찾는 상황을 아무 문제 없다고 보긴 힘듭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팀에 좋은 영향을 줄 순 없었을 겁니다.


 그러한 인터뷰는 오히려 대표팀의 응집을 가로막을 여지를 남겼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리그에 영향이 미칠 정도의 강훈련을 받고, 워낙 기간이 길고 강도가 있는 일정인지라 소속팀 동계 훈련에 아예 가질 못하면서 올림픽을 보고 뛰었던 선수들의 시선에서 다른 선수들의 컨디션과 커리어를 걱정하는 인터뷰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비치기 힘들었을 겁니다. 팀에 정신적으로 균열이 생기는 모습이 대회에서 보인 건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을 남기는 행보를 자제하는 것 또한 감독의 역할임을 생각하면 해당 인터뷰들이 필요했던 인터뷰라고 할 순 없습니다. 


 지나친 성실함이 문제가 된 경우는 또 있습니다. 훈련을 위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하는 4구단의 선수들을 차출한 것도 언론과 K리그 팬들의 입방아에 올랐습니다. 문제는 이 훈련이 예비명단으로 진행된 체력훈련이라는 겁니다. 김학범 감독은 최종명단을 추리지 않았기에 훈련에 갔다가 엔트리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국제대회에 나가는 전북 현대·울산 현대·포항 스틸러스·대구 FC의 협조를 요청했고, 결국 이들 구단은 소속 선수가 ACL과 올림픽에 전부 나가지 못할 위험을 감수하며 몇몇 선수를 ACL 개최지가 아닌 U23 대표팀 훈련지로 보냈습니다. 그 때문에 전북은 주전 골키퍼 송범근을, 포항은 그때까지만 해도 팀의 에이스였던 송민규를, 스리백을 쓰는 대구는 주전 센터백 2명을, 울산은 베스트11의 절반가량을 이전보다 많아진 상금과 리그의 위상을 놓고 싸우는 ACL에서 기용하지 못했습니다. 전력 누수에도 불구하고 모든 구단이 16강 토너먼트에 올랐기에 망정이지 한 구단이라도 피해를 본 후 탈락했다면 뒷말은 더 많아졌을 것입니다. 참고로 얘기하자면 김학범 감독이 부럽다고 인터뷰한 일본도 ACL에 출전하는 J리그 팀들은 주전이 모두 출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일본 올림픽대표팀은 ACL 기간만큼은 J리그의 ACL 참가팀에서 선수를 차출하지 않았거든요. 상황은 늦춰진 최종 선발로 흔들린 올림픽팀 선수들에게도, 졸지에 척추를 잃은 ACL 참가 K리그 팀들에게도 나빠지기만 했습니다. 되는대로 진행해도 괜찮았던 인터뷰와 ACL 참가팀 선수 차출은 무리한 성실로 인해 끝내 이상한 그림을 낳고 말았습니다.


 

 대물림을 끝내자


 사람들은 멕시코전 대패를 주목하지만, 이번 대표팀의 문제는 과정에서부터 계속됐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표팀 경기를 치르지 못해 훈련의 중요성이 강조됐던 건 사실이지만 그걸 고려해도 올림픽대표팀의 계속됐고 강도 높았던 훈련 소집이 선수와 소속팀에 준 악영향은 컸습니다. 이상윤 해설위원이 말했듯 엄연히 ‘선수들에게 월급을 주고 있는’ K리그 구단은 부상의 위험이 있든 중요한 대회가 있든 성적의 위기가 있든 일방적으로 선수를 내줘야 했고, 대표팀은 올인에 가까운 지원을 받고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준비 과정이 정당화되고 자리를 잡을수록 선수의 기량은 더 퇴보할 것이고, 구단들은 U22 규정까지 감수해가며 유망주를 키우는 이유를 잃어갈 것입니다. 메달을 땄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준비는 무리였다고 이야기했겠지만 그러지도 못한 이상 더욱 지금의 방식을 고집해선 안 됩니다. 구단과 선수를 희생시킨 결과가 흑역사로 남을 6실점 탈락이라면, 자국 리그도 모자라 A대표팀까지 헝클어가며 연령별 대표팀을 지원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2부리그 팀까지 포함한 프로축구계 대부분에게 고통을 주고 결과도 내지 못하는 지금의 형태를 되풀이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이번 대회를 교훈 삼아 국제대회에 선수의 커리어, 프로구단의 성적을 거는 비정상적인 대물림이 멈췄으면 좋겠습니다. 


 국제대회에서 호성적을 내려는 것, 병역특례를 받으려는 것 같은 대표팀의 목표는 결국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한 것입니다. 메달을 위해 프로리그를 희생시키고 대표팀 행정은 퇴보하도록 하는 지금과 같은 체제로 그 발전이 이뤄지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다급하다고 해서 성실하게 해야 할 일과 되는대로 해도 될 일을 맞바꾸면 사고를 맞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꼭 필요하다고 해서 상식을 거스르고 향을 뒤집어 버리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표팀을 보면서 크게 공감했던 말 한 마디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프로는 대표팀의 들러리인가. 프로팀의 한 해 농사를 망칠 셈인가?”

 - 김학범 감독 (2006년, 당시 성남 일화)

 

 * 비판과 분노로 점철된 본문과는 별개로, 이번 대표팀에 들어가 대회를 치른 선수들에게 정말 고생 많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팀이 이렇게 운영된 이상 선수의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워낙 크게 진 이상 선수 개개인에게 잘못이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 총합이 팀을 요동치는 행보에 빠지게 만든 사람들의 그것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마음입니다. 또한 혹독했던 준비 과정은 함께하고 최종명단에 들지 못해 대한해협을 건널 수 없었던 선수들이 너무 상심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FC서울 축구를 보고 있으니 이름을 적는 윤종규, 조영욱 선수를 비롯한 소집됐던 모든 선수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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