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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2년차 라이트팬의 2020년

설라_58090679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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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fcseoulite.me/anonymous/3178873 복사

나는 2018년에야 FC서울의 경기를 봤어. 부산과의 플레이오프 두번째 경기를, 그것도 후반전에 들어서, 정말 우연히, 일요일 낮에 TV 채널 돌리다가 보게 됐어.

어릴 때부터 축구는 국대 경기만 봤는데, 그렇게 무관심했던 나조차도 FC서울은 기성용과 이청용이 뛰던 팀이고, 박주영이 뛰고 있는 엄청 잘나가는 팀...정도로 기억하고 있었어. 데얀이라는 이름도 자주 들었고.

근데 그런 팀이 강등 플레이오프?? 하면서 하도 희한해서 경기를 보다가, 박주영 선수의 그 믿을 수 없는 장거리 슛이 골대에 들어가고 'FC서울 1부 리그 확정!'이라는 자막이 뜨는 게 너무 인상적이라, 내년에 시즌 시작하면 FC서울 경기를 한번 봐야겠다, 정도로 생각했어. 내가 사는 곳도 서울이고, 심지어 상암과도 그리 멀지 않은 편이니까 FC서울을 함 지켜보자라고 생각하는 게 아주 자연스러웠어. 


그리고 2019년 초반엔 TV 중계로만 경기를 봤어. 잘 하더라고.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팀을 엄청 열심히 파고 있던 떄는 아니라, 선수들 이름도 잘 못 외웠어. 그때 수비수들은 황현수, 이웅희, 김원식, 김원균 같은 선수들이었겠지. 


그러다가 늦봄 정도부터 한번 경기자에 가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직관을 갔어. 한번 경기장에 가보니까 너무 재미있어서 도저히 끊을 수가 없더라고. 직장인이라 매번 직관을 가진 못했고, 심지어 아직 원정 경기는 한번도 못 가봤지만, 그래도 홈경기를 한 10번 정도는 갔던 거 같아. 아챔 예선 경기 두 번도 옷을 한 여섯 겹쯤 껴입고 가서 봤었고. 


김남춘 선수 복귀 경기는 TV로 봤어. 전북전이었고, 장기부상 털고 돌아왔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예상보다 훨씬 잘해줘서 인상적이었어. 경기 종료 휘슬 불리니까 그자리에 주저앉아서 '이제 살았다'하는 표정을 짓는 게 카메라에 잡혔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 

여름 정도부터 귀신같이 성적이 꼴아박기 시작하면서 수비가 엉망이 되었다는 인상이 너무 강해서였는지, 남춘 선수가 복귀한 다음 몇 경기 뛰지 못했지만 그때마다 수비 라인이 훨씬 안정적이고 든든하다는 느낌을 받았어. 겨울에 재계약 동영상 뜬 것도 보면서 '처음과 끝을 이 팀과 함께 하고 싶다'라는 말이 되게 인상적이고 또 기분 좋게 들리더라고. 


그리고 2020년..... 

본격적으로 이 팀의 팬이 된 게 1년 정도밖에 안 된 사람에게 2020년은 정말 너무너무너무 하드하고 빡셌어. 

오죽하면 업무로 만난 다른 팀의 친한 분이 "축구 때문에 너무 불행해 보여요..."라고 걱정할 정도로(그 말을 들은 게 두달 전쯤이니까 강등 위기가 상당히 체감되던 그 시기였어), 정말 엄청난 스트레스와 긴장감과 분노의 연속으로 경기를 봤던 것 같아. 

그래도 당연히 그 사이사이 기성용 선수 복귀와 한승규 선수의 뻐렁치는 세레머니들로 행복했지만...


그러다가 금요일, 김남춘 선수의 부고를 듣고나서부터 어제 인천전 직관하고 돌아와서 새벽에 잠들때까지, 

이틀 내내 틈만 나면 울음이 터져나와서 정말 힘들더라. 그렇게 힘들었던 2020년 마무리가 이런 충격으로 끝날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 못했잖아.

나한테는 FC서울의 든든한 수비수로 가장 처음 각인된 선수고, 

인스타그램으로 선수들의 일상을 훔쳐볼 때마다 김남춘 선수는 참 두루두루 잘 지내는 사람, 편하고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구나, 라는 인상을 주는 선수였어. 

그런 사람이 죽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질 않고, 대체 선수단과 코칭 스텝과 가족들 마음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자동적으로 눈물이 터져나오더라고. 일개 라이트팬이 이럴 정도인데....

금요일 밤에 설라 게시판에서 상암 N측 1번에 추모소가 차려졌다는 걸 보고 밤에 혼자 갔다왔어. 

나 말고도 몇 분이 더 계셨는데, 그냥 뭐 할 바를 모르고 계속 그 앞에서 왔다갔다하다가 눈에 꾹꾹 담기만 하다가 또 혼자 펑펑 울면서 주차장까지 걸어갔고. 

토요일 경기에선.....나는 그동안 직관 다니면서 소리를 크게 내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어제 경기는 정말 보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심판 똑바로 해!!" "이 깡패같은 ○○○들아!!" 하고 고함을 칠 수밖에 없었어. 


그래도, 정말, 어제 경기가 홈경기여서 너무 다행이었어. 

우리 선수들과 팬들이 다같이, 서로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공유하면서, 우리가 함께 남춘 선수를 애도할 수 있어서. 원정 경기였다면 불가능했을 거잖아.

센터서클에서 선수들이 인사할 때 김남춘 콜이 울려퍼지는데, 선수들이 무너져내리는 게 멀리서도 보이고, 내 주변 사람들도 다 목이 메어서 우는 게 느껴지고. 


설라 게시판 보다보면 83년부터 응원한 사람들도 참 많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팀에 기여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서

나같은 초짜 라이트팬이 감히 애정을 이야기해도 되나 싶지만, 

어제부로 나는 정말 확실히 깨달았어. 

적어도 2020년을 함께 했던 FC서울 선수들과 팬들은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정서적인 합일감을 느끼고 있다고.

2020년 내내 입으로야 엄청 욕하고 실망했지만, 나는 이제 이 팀을 도저히 모른척할 수 없고 무관심해질 수가 없어.

이런 경험을 같이 했던 사람들의 동질감에 대해서는,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 


글이 너무 길어져서 미안. 

너무 라이트팬이라 자게에 글 쓰기도 민망해서 익명에 길게 남겼어.

이제 2년차인 라이트팬에게도 남춘 선수와의 이별이 정말 힘들고 슬퍼... 다른 선수들에게도 더 열심히 응원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그리고 우리 선수들이랑 코칭스탭들 모두 정말 힘들 텐데, 부디 구단에서 케어 잘해주고 함께 극복해나가길 바랄 뿐이야. 

2020년에는 제발, 행복한 일이 더 많은 FC서울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 이상으로 더 힘든 시절이 또 오진 않겠지 설마. 이 이상으로 힘들 거라고는 상상도 안돼. 


FC서울 우리팀, 정말 사랑하고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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