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글주의] 그냥 강원전 때 어떤 장면이 안 잊혀져서
지난주 강원전에 W석이랑 붙은 N석에 앉았는데, 경기 시작하고 아이 한 명 동반한 가족이 들어오더라.
거리두기 때문에 앞뒤로 세 명이 각각 따로 앉고, 아이는 얌전히 이미 진행되고 있던 경기만 쳐다보더라고.
그사이에 엄빠가 옷도 여며주고 사진도 슬쩍 찍어주는 모습이 괜히 눈에 들어왔어.
내 편견 때문인지 몰라도 아빠가 이제 막 축구라는 걸 알게 된 아이를 위해서 축구장에 한번 데려와본 것 같았어.
왜냐하면 구단 용품은 둘째치고 검빨도 찾아볼 수 없었거든.
심지어 아빠는 종종 전화 받으러 나갔다 들어오느라 경기를 거의 못 보더라.
그동안 엄마랑 아이만 따로 앉아 남겨져 있는 모습을 보자니,
안 그래도 골이 안 나와 지루한데 흥미를 잃진 않을까 괜히 걱정되더라고.
근데 전반 30분 지나고 서브 선수들 몸 풀러 나오니까 아이 엄마가 엄청 놀라는 거야.
몸 풀러 나오는 주멘을 가리키면서 아이한테 뭐라뭐라 흥분된 얼굴로 말하더라.
물론 아이의 반응은 잠잠했지.
그때부터 엄마 눈은 몸 푸는 주멘에 계속 고정되어 있었어.
그리고 후반전에 주멘이 들어오고 그쪽 코너 플래그 바로 앞에서 프리킥이 나왔지.
알다시피 주멘이 골 넣는 순간 경기장 안 모두가 벌떡 일어나 기뻐했잖아.
아이 엄마도 다르지 않았어.
골이 들어간 순간 벌떡 일어나 아이한테로 가서,
그 작은 몸을 자신의 분신을 품듯 꼬옥 끌어안으면서 엄청 기뻐하더라.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아이한테 직접 보여줄 수 있어서,
그 선수가 바로 눈앞에서 멋진 골을 넣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였을까.
아이 엄마는 정말 행복해 보였어.
그 아이가 엄마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적어도 어떤 선수의 골을 직접 보았고 우리 엄마가 정말 행복해하며 자길 안아줬다는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더라.
반면 난 그저 아빠 따라온 머글 가족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던 게 너무 민망하더라고.
아이의 엄마가 서울 팬인지, 주멘의 팬인지, 혹은 그냥 과몰입을 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모처럼 나들이 나온 가족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주멘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팬들을 그리워하고, 보란듯 열심히 뛰어주는 주멘이 리그 레전드인지, 국대 레전드인지 하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겠더라고.
그날 아이 엄마의 표정이 잊히지 않아서,
북봉이로서 주멘을 생각하면 뭔가 애틋해지는 감정을 뇌피셜과 섞어 남겨 봄.
아, 심판 오심 때문에 막판에 어머님 분노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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