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전 늦은 직관 후기 (쓰다보니 장문)
1. 05년쯤인가 중학생 때 같이 서울축구 보러다녔다가 지금은 전혀 관심없어진 친구한테 "집으로 돌아와라" "요즘 서울 재밌다"하고 꼬셔서, 마침내 얘가 자기 여자친구 데리고 제주전 홈개막전 보러온다고 했었음. 근데 딱 코로나 때문에 2군 나서게 되면서 막상 보러와서 스토리 몰입 없이 흥미 잃어 다신 안올까봐 다음에 기성용 등 유명선수 나올때 오라고 하고, 나는 원래 같이 축구보러 다니던 고등학생 친구들 데리고 상암 입성.
2. 홈개막전, 좋은 스쿼드, 봄 날씨 등 기대가 컸지만 어쨌든 비가 안온것에 만족하며 친구들에게도 현 상황이 이렇고 오늘 져도 박수쳐줘야한다고 미리 사전 정보 깔고 들어옴.
3. E-C석 1열 앉아서 가깝게 관람한 건 좋았는데, 높이가 피치랑 같다보니 먼 거리에서 거리감은 좀 파악이 힘들긴 했음. 어쨌든 어떤 하이라이트 코멘터리 보기 전에 나의 감상은,
4. 우리 선수들 안되는 자리 서 가면서 잇몸으로 버티는 그 90분 너무 안타깝기도하고 마지막엔 감동적이기도 했음.
5. 팔로, 고요한은 몇 안남은 베테랑이어서 그런지 스스로가 그 책임감을 크게 느끼는 듯했고, 그래서 오히려 얼어있는 어린 친구들을 대신해 볼 소유를 높이려다가 오히려 타이밍을 뺏기는 경우가 아쉬웠음. 특히 팔로는, 전반에 좋은 찬스에서 수비에게 블록당하는 슛이 너무나.. 이 스쿼드에 그런 찬스가 흔히 오지 않을거라 정말 탄식이 터져나옴
6. 합이란게 나올 수 없는 급조된 스쿼드로, 오프사이드 트랩을 계속 쓰고 위협적인 상황 나오는게 너무 불안해보여서, 경기장 내에서는 조금 불만이었는데 경기 끝나고 김진규 인터뷰를 보니, 감독님의 지시가 스쿼드가 어떻든 재밌는 경기를 하라고했기 때문이라는 것 보고 수긍 감.
7. 제주가 준비한 패턴은 사실상 하나였는데, 계속해서 뚫리는 모습이 아슬아슬했음. 특히 스털링 같던 제르소..ㄷㄷ..
8. 백종범은 전반에 자기 스스로 불안해보이는게 여러번 느껴졌지만, 짧은 시간에 평정심을 찾고 놀랍도록 빠르게 적응함.
9. 제르소 교체아웃될 때, 반대쪽으로 나가서 경기장을 빙 걸어돌아서 들어갔는데, 친구가 나지막이 "제르소~" 부르고, 제르소가 쳐다보면서 손 흔들어줌 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우리 근처에 앉아있던 관중들 다 빵터져서 흐뭇하게 제르소한테 박수쳐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오늘의 개인적인 킬포...
10. 박호민 골 들어가고나서는 오늘의 아슬아슬함마저 모두 처연하고, 뭉클해서 감동적이었고, 김신진 마지막 슛은 집에 올때까지 계속 눈 앞에 아른아른 ㅎㅎ..
11. 경기 후에 합정역 근처에서 친구들이랑 맥주 한 잔했는데, 9시쯤 나와서 걷던 우리 앞으로 서울 머플러 두른 남자분들이 우리 머플러 보고 "수고하셨습니다~" 모르는 사이인데도 인사해주고 가셨는데, 거기서 친구가 이 애틋한 연대감에 감동먹음..
12.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유의미한 직관이었다. 왜인지 선수들이 계속 미끄러지던데 우리 홈인만큼 얼른 잔디 적응하면 다음에 좋은 축구할 수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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