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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FC서울의 시간

나캡 title: 뗑컨나캡 15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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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fcseoulite.me/free/12899303 복사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같은 제목을 한 영화의 원작으로도 유명한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김병수’(축구인 김병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가상의 인물이다)는 자기가 한 일을 기억해 숨겨야 하는 연쇄살인범이지만 치매를 앓고 있다는 모순적인 설정을 가졌는데, 그 설정이자 시간의 특성을 정말 잘 반영하고 있는 한 문장이라 할 수 있겠다. 악(惡)이 됐든 무엇이 됐든 다른 것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입장이라면 휘두를 수 있고 반대편에 있다면 막을 수라도 있지만, 시간은 어느 인간에게도 이용하거나 저지할 자격을 부여하지 않은 채 모두에게 스며들어 각자를 끌고 갈 뿐이다. 누구도 그것을 이길 수 없고, 막을 수 없다. 그런 존재와 친해지거나 익숙해지지 못한 채 반대편에 서 있다면? 무엇을 원하든 원하는 걸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우리 앞에 펼쳐진 안익수 감독의 축구는 너무도 명백하게 시간을 컨트롤하지도, 유리하게 만들지도 못한 채 반대편에 서서 끌려가고 있다. 


 2021년 중후반과 이번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서울 축구의 핵심은 움직임이다’라는 평가와 시각이 많았다. 공을 점유하고 앞으로 올라가 수적 우위를 갖고 서로 주고받는 작업을 통해 찬스를 만드는 전술적 형태에 있어 하프스페이스가 됐든 상대 선수가 없는 지점이 됐든 그곳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이 핵심이 됐기 때문이다. 

https://sports.news.naver.com/kfootball/vod/index?uCategory=kfootball&category=kleague&id=909388&redirect=true

 2021년 좋았던 장면의 대부분과 함께 2022년 개막전에서 ‘상대 문전으로 파고든 후 수비가 없는 곳으로 달리는 선수를 보고 힐패스를 내준 윤종규-수비가 미처 들어오지 못한 곳으로 뛰어든 조영욱’으로 이어진 선제골이 대표적으로 움직임을 잘 활용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에서의 ‘효율적인 움직임’은 곧 ‘시간적 우위’로 이어진다. 쉽게 이야기해서 상대가 신경 쓰지 못하는 곳에 내 팀 선수가 들어가 있다면 그곳으로 바로 찔러줄 수 있고, 이것은 상대 수비의 구축에 필요한 시간보다 빠른 공격 작업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공격 작업에 돌입할 때의 공간적 우위는 곧 상대의 진영 정리보다 우리의 공 투입이 빠르다는 시간적 우위가 되고, 그 시간적 우위가 다시 상대 문전에서의 공간적 우위(=우리의 공격을 막기에 부족한 상대 수비의 숫자)로 이어진다. 멀리 갈 것 없이 이번 시즌 초중반의 서울은 경기 내용을 보나 그 경기를 분석한 여러 전문가의 영상을 보나 그게 어느 정도는 되는 팀이었다. 확실한 골게터가 없었다 보니 점한 시공간적 우위에 비해 득점력이 떨어져서 그렇지.(실 득점에 비해 높은 xG값 등의 당시 지표를 보았을 때 이는 감독에 대한 감정이나 경기를 보는 느낌과는 별개인, 팩트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의 경기들에서는 이 ‘시간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축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을 적으로 돌린 채 뭔가를 해보려 하는, 근원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시도가 눈에 띌 뿐이다. 

 지금의 서울 축구는 기본적으로 느리다. 공을 획득하면 후방 패스 작업이라는 수단을 통해 상대 진영으로 올라가려 했던 종전과는 다르게, 오랫동안 뒤쪽에서 공을 돌리거나 중앙으로 이동한 풀백에게 전진이란 소득 없이 넘기는 장면이 많아졌다. 이는 자연히 공격의 템포와 선수들의 포지셔닝에 영향을 미친다. 농구에서 공격 코트를 왼쪽-오른쪽의 반으로 쪼개 공이 있는 지역을 ‘스트롱 사이드’라 일컫고 공이 없는 곳은 ‘위크 사이드’라 이야기하는데, 서울 축구의 스트롱 사이드는 시간이 갈수록 전방에서 후방으로 이동하고 있다. 공이 뒤에서 오래 돌다 보니 선수들이 의식하는 무게중심 또한 뒤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이렇다 보니 상대의 압박을 견디는 위치에서 공을 간수하는 시간이 길어져 템포는 느려지고, 앞에 있어야 할 선수들의 포지셔닝까지 점차 뒤로 당겨진다는 문제가 생겼다. 보통 뒤쪽이 공 점유의 중심이 되는 팀들은 점유 자체를 많이 하지 않고 확실한 역습이라는 무기도 가지고 있지만, 점유를 강조하는 서울은 이게 되지 않기에 중심의 후진이 더 큰 문제를 가져온다. 탈압박의 어려움으로 인해 후방에서 공을 돌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더 많은 선수들이 전개에 가담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최전방에 서 있는 선수들까지 하프라인 밑으로 내려와 더 긴 거리를 뛰면서 상대에게 탈취될 위험을 키운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의 서울 공격진은 지속적으로 하프라인 밑까지 내려가 장시간 공을 돌리는 후방에서 직접 공을 받아 전개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이것은 길어지는 상대 박스와의 거리와 그에 따른 체력적 부담으로 인해 파괴력의 실종을 가져왔다. 극단적으로 요약하자면 수비지역의 과한 스트롱 사이드화가 공격 자체를 ‘위크(weak)’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팀이 빠른 템포의 공격이나 역습을, 즉 시간을 아군으로 만드는 축구를 애초부터 못하던 팀은 아니었다. 

 https://sports.news.naver.com/kfootball/vod/index?uCategory=kfootball&category=kleague&id=855087&redirect=true 

 당장 안익수 감독의 부임 극초반이었던 이 경기에서, 팀이 애지녁에 12위로 떨어지고 기강 문제가 계속해서 밖에 있는 팬들의 귀에까지 들리던 상황에서도 서울은 효율적 움직임을 통한 시간 확보와 그에 따른 퀄리티 있는 공격을 할 줄 아는 팀이었다. 고질적으로 못하고 전술 특성상 잘하기 힘든 일도 아니고, 해왔던 일을 하지 못하니 팬들이 갑갑함을 호소하는 것 아니겠는가. 핵심 선수들의 이탈과 남은 선수들의 체력저하로 기존에 쓰던 틀을 구현해내기 어렵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 시간을 스스로에게 가까운 범위에 두는 것이 프로로서 필요한 결정이었고 지도자의 의무겠으나, 현재까지 이 팀과 감독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몇 달 전의 서울 축구는 공을 잡는 순간부터 공격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의 모든 시간 동안 기대라는 걸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을 잡으면 무의미한 시간이 흐를 뿐이다. 무의미한 채로 끝날지 상대의 탈취와 역습 그리고 그걸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수비진이 주는 불안한 시간으로 변질될지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말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경기장 안의 시간이 그렇게 의미 없거나 나쁜 의미가 묻은 채 흘러가는 동안 경기장 밖의 시간 또한 지나고 있다. 

 FC서울이 가까운 미래에 어떤 팀으로 인식될지를 판가름하는 시간은, 그러지 않으려는 몇 차례의 시도가 있었다만 결과적으로 경기장 내부의 시간을 낭비한 채 쏟아져 내려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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