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과 자성
자생과 자성
오랜만에 MT 가고 싶을 때
선배나 후배나 동기가 부르면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대학을 졸업해서 갈 일이 없네
사실은 거짓말
가고 싶지 않다
여행을 가는 일이나 전철이나 기차를 타는 일이나 점점 내리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차 안에서 자주 보지 않는 능선이나 강이나 바다를 가끔 보면서 세상이 언제 이렇게 변했나 하고 생각하는 일이나 내려서 가방을 의식하지 않고 끝없이 걷는 일 같은 것들과
지난여름에 혼자 생각했던 무서운 이야기나 지혜와 무관한 이야기를 겨울에 친구에게 털어내는 이야기와 술을 마시면서 자주 오지 않을 전망을 보면서 이것을 관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생각 같은 것들을 겪었고
그것들을 전부 좋다고 느꼈지만
언제부턴가 MT는 가고 싶지 않아졌고 그때부터
건방지게 늙은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선배나 어떤 후배나 어떤 동기는 아직도 졸업하지 않고 가기도 하고 졸업한 뒤에도 가기도 하는데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므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MT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지금쯤 남쪽 지방에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
사무치게 봄이 왔다는 기사 제목
남쪽에 가지 않아서 요즘 뉴스를 잘 읽지 않아 모르는 이야기들이라서
말할 게 없네
그보다는 가까운 이야기
오랜만에 광나루에서 만난 친구와 중국집에서 짬뽕과 볶음밥과 탕수육을 시켜서 먹기 전 매화가 핀 걸 본 이야기나
한강의 고가도로를 건너며 세 번 정도 물냄새를 맡는 동안 친구가 고등학생 때 이룬 시원한 혁명을 들었던 이야기
그런 것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MT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늙음이 겸허에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성찰스러운 이야기나
몇 번이고 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방황스러운 반복적인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이 이야기는 끝이 나고
계속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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