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버막 사진들, 그리고 장문의 후기
내가 무슨 호사를 누리겠다고 오늘 킥오프 세시간 전부터 경기장에 왔는지 수십번은 곱씹어볼 정도로 처참한 경기였다. 결정적으로 이 ○○○은 버막 사진을 딱 1년만에 다시 찍게 될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황망하고, 힘이 빠진다.
사람이 화가나면 혈압이 오르다가 어느 순간 기점을 넘으면 확 혈압이 떨어질 때가 있다. 평소에도 최고혈압이 두자리수에 불과한 내가 경기가 끝나고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도 상술한 바와 같다.
오늘 역시 경기 종료 휘슬이 불리자마자 머리가 핑 돌더라. 무슨 객기인지는 몰라도 겉옷 한벌 없이 반팔 유니폼 한벌 걸치고 경기장에 와서 더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난간을 잡지 않고서는 몸을 가누지 못하겠어서 한참을 가만 서있었다. 축은해보였는지 누군가가 와서 "버스 막으러 가요"라고 하기 전까지는.
작년에는 20명 남짓한 인원이 절망스런 표정과 함께 "우리가 뛰어도 12위"라는 걸개를 들고 서있던 지하주차장 출입구 앞에는 수백명은 거뜬히 되어보이는 사람들이 각자의 실망감을,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운집해있었다.
버스가 지상으로 나오고, 감독이 확성기를 잡는다. 분에 못이겨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부터 그를 말리는 사람, 영상과 사진을 찍고자 머리 위로 스마트폰을 치켜드는 사람들까지. 현장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한다.
뒤이어 나온 주장은 죽을 각오로 마지막 경기에 뛰겠다는 각오를 밝힌다. '그렇다는건 그동안 경기에서는 죽을 각오로 뛰지 않았다는건가?' 셔터를 누르는 내 머릿속은 온갖 잡생각으로 뒤얽힌다.
버스와 팬들이 서로 등을 돌리며 떠나고,
아수라장이던 공간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진다.
이번 가을은 유난히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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