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 안 되는 경기를 보다
(전술적인 이야기는 어느 정도 배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여러 회원님들의 의견에 따라 수정 후 재등록한 글입니다.)
조금 심심한데 상암 바람이나 쐬러 가 볼까..' 하는 생각으로 집을 나서던 순간이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기 직전에 성남FC와의 비공개 연습경기를 구리도 아니고! 모란도 아니고! 무려 상암에서 한다는 소식을 접했지요.
어차피 가도 관람하지 못하지만, 집에서 상암까지 1시간 10분이 걸리는 조금 긴 여정이기에 다시 돌아가기도 싫었고, 분위기라도 느끼자는 심정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https://fcseoulite.me/free/15328056
계단을 올라오니 워밍업으로 미리 공을 차 보는 선수들의 기합 소리가 1시간 10분 여정의 피로를 풀어주었습니다.
아울러 15번 게이트 쪽에 인분이 있었다는 제보를 확인했는데, 다행히 냄새도 안 났네요.
이 때까지만 해도 경기를 볼 거라는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는데..
웬걸요. 경기장을 1바퀴 돌아보니 딱 하나, 8번 게이트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모든 관계자 분들이 입장한 후에 철문을 걸어잠그고 연습경기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그러지 못한 상태에서 경기가 시작된 것이지요.
빈틈을 노린 할아버지 한 분과 저는, 돈 주고도 못 보는 경기를 15분 동안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히로시마전에서 프리롤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나상호(7번) 선수.
서울의 2022시즌을 돌아봤을 때 가장 돋보였던 문제점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공격 자원들의 조직력이 다듬어지지 않으면서, 나상호 선수가 측면에만 고립되는 장면이 잦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류첸코 선수가 나상호 선수 앞에 다가와서 측면까지 열심히 커버해주는 모습이 경기 도중 심심찮게 나왔지만 조금은 버거워 보였고, 나상호 선수가 중앙으로 위치를 옮겨다녀도 다른 공격수들이 상대 수비를 효과적으로 분산시켜주지 않아서, 역습 상황이 아니면 마음 놓고 슈팅을 시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리그1에서도 라이트 윙어를 경험해 본 바가 있어 측면 커버에 능숙한 황의조 선수가, 카타르월드컵 이후 향상된 오프 더 볼 움직임으로 '프리롤'을 부여받은 나상호 선수를 도우며 과포화된 공격진을 다채로운 공격진으로 바꿔줄 수 있을까요.
한 때는 중앙 미드필더 팔로세비치 선수를 프리롤로 여기고 라이트 윙어와 스트라이커 자리에도 배치하면서 자유롭게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미리 눈치 챈 상대 미드필더들이 늘 중원을 꽉 막아버려 실패하기 일쑤였고, 정작 대표팀에 자주 발탁될 정도의 주요 득점원인 나상호 선수에게는 특별히 요구되는 움직임과 역할이 없다시피 했지요.
결국 집중 견제를 피하지 못한 채 경기를 거듭할 수록 외딴 섬이 되어간 나상호 선수의 공격포인트는 기대보다 저조했고, 더불어 패스가 본인 마음대로 돌지 않던 팔로세비치 선수는 종종 불만을 표현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팬들 뿐만이 아닌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보낸 2년 남짓은 분명히 답답했을 것이고, 이제부터라도 나상호 선수에게 적극적으로 의존하는 축구가 원활하기를 바랍니다.
경기 내용이나 라인업을 밝힐 수가 없게 되어 아무거나 주절주절 써 보았습니다.
연습경기의 전반 15분이 지나자 모든 관계자 분들이 입장을 완료하였고, 선택받은 자가 아닌 저는 더 이상 경기를 관람하게 될 경우 코로 설렁탕을 마시게 되기 때문에, 너무너무 아쉽지만 경기장에서 나왔습니다.
경기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월드컵경기장역의 급속충전기 앞에서 부족한 배터리를 채우며 보냈습니다.
덕분에 집에 갈 때까지 배터리 걱정은 붙들어 맸습니다. 사랑해요 마포구청!
전/후반 모두 종료 휘슬은 예상보다 늦게 울렸네요.
경기 도중에도 휘슬 소리가 거의 쉴 새 없이 울리던데, 반칙이 많아서 추가시간을 4분 이상은 준 것 같았습니다.
퇴근하는 선수단을 주차장에서 만나고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저나 선수들이나 마찬가지로 춥고 배고파서 곧장 집에 가기로 합니다.
2023시즌을 앞둔 시점에서 사실 몇 차례 비관적인 글을 적었고 서울의 축구가 기대되지 않는다는 푸념도 늘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제가 다소 감정에 치우쳤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선수단은 주경기장인 상암까지 와서 연습경기에 정성을 들였고, 실물로 본 새 유니폼도 아름다웠고, 말은 안 좋게 했지만 축구장에 와서 즐거움을 느끼는 저의 마음도 변치 않은 것을 느꼈습니다.
FC서울과 성남FC 두 팀 모두, 약 8개월 간 펼쳐질 2023시즌을 크게 다치는 사람 없이, 재미있는 경기와 건승으로 보내길 바랍니다. ⚫🔴 🦇
추천인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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