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욱이 골을 넣는데 좋아하긴커녕 머리를 쥐어뜯는 서울팬이 있다?!

(놀랍게도 어그로 아니고, 진짜입니다)

2018년, 대지를 가르는 패스로 독일을 부숴버린 주세종.

익히 아시듯 이 당시의 소속팀은 아산무궁화였습니다.

저는 그 해에 '주세종 보러 가자' 를 실천했고,

서울 유니폼을 본 주세종에게 싸인볼을 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이런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이때 아산 서포터즈 아르마다는 생업도 잠시 접어두고 A매치가 열리는 상암에 와서 서명운동을 전개했고,

저는 그게 우리 선수의 커리어를 지키려 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너무 고마웠습니다.

현장서명은 못 했지만 자필 해체 반대문 공유 운동에 동참하기도 했고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2019년에도 이 구단은 존속에 성공했습니다.

주세종은 그 덕에 후반기 인천전에서 골을 넣고 서울의 3위를 수성하는 큰 업적을 세웠습니다.

그해 3월, 저는 이런 쪽지를 받았습니다.

서명 같이해줘서 고맙다고 티켓북 한 장과 함께 보내주셨는데요,

직전 해에 크게 당한 게 있어서 국내축구판이 이렇게 따뜻할 수도 있구나 하고 충격을 먹었습니다. 너무 고마웠어요.

아쉽게도 개막전은 서울과 겹쳤고, 이후엔 공부가 바빠서 가지 못했지만 아산의 2019시즌 최종전에 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창단한다는 좋은 소식이 들렸거든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축하드려요!"라며 아산 서포터즈 분들한테 몽쉘이라도 하나씩 돌리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최종전 당일, 1호선 타고 경기장에 가는 도중에 이런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산, 시민구단 창단 확정 아니야... 시/도의회 통과 불확실"

(어찌된 일인지 이 기사 링크는 남아있지 않네요)

저에게는 축하하러 간 자리였고, 2년을 고통받은 아산 팬들한테는 결실을 보러 가신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가 기사 한 줄에 지옥이 되더라고요.

시즌 최종전, 내년에 돌아온다는 걸 알아도 슬프고 아쉽습니다.

그런데 저분들은 지금 가면 영영 못 볼 수도 있는 자리에 놓였던 겁니다.

메가폰을 든 분도 울고, 일가족 팬도 다같이 울고, 박동혁 감독도 울고, 주장 박세직도 울고...

원래 그날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남남이 될 사이였지만,

저는 그 순간 때문에 여태 남이 되지 못하고 있네요.

다행히 사람들이 울던 자리는 텅 비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웃고 환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창단 이후에도 위기는 많았지만,

그 위기 속에서도 내일이 더 기대되는 팀으로 커가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아직 이 팀을 놓지 못했습니다.

2019년 마지막 경기에서 접한 마음,

"저 사람들은 내 팀 선수 주세종한테, 그러니까 나한테 해준 게 이렇게 많은데 나는 그렇게 힘들어하는 저분들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

하는 마음을 여태 버리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창단 4년차의 2부리그 최저연봉팀이 어떻게 이렇게 빠르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나 신기하고 재밌거든요.

올해도 저는 이 팀 축구를 시간 나면, 그러니까 서울 경기랑 안 겹치면 중계로라도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제가 아산 축구를 처음 접한 2018년, 본가 서울을 구해냈던 소년이 있습니다.

우리 서울을 가장 힘들 때마다 구해냈기에 제게 살면서 처음으로 상무 유니폼도 구매하게 한 이 선수를,

저는 오늘 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이 글의 제목이 왜 어그로가 아니고 진짜인지 이해하시겠죠?

저는 비록 기숙사 짐 옮기는 게 오늘이라 직접 가지 못하지만,

아마 조영욱 윤종규 이상민 보러 가시는 분들 계실 겁니다.

서울라이트에 오늘 경기 직관인증을 올려주시는 모든 분께 충남아산FC의 창단 년도인 2020포인트를 드리겠습니다!

(이로써 이 글의 탭이 왜 '이벤트'인지도 설명이 되겠네요.)

(인증탭을 사용해주세요)

아울러 이 세 선수를 응원하는 피켓이나 서울 유니폼을 지참하신다면,

해당 선수들이 오늘 원정팀 선수 자격으로 이순신종합운동장에 가는 것이기 때문에 원정석 티켓 구매를 권유드립니다.

아산 원정석은 어차피 E석 귀퉁이라 다른 종합운동장 S석만큼 시야제한이 심하지 않거든요.

충남아산FC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있다면, 그건 "감독의 능력이 확실한 구단"이나 "스쿼드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구단", 혹은 "매년 발전을 거듭하는 구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팀을 "노력하는 구단" 이란 말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시민구단 관련 이야기가 많습니다.

시비, 도비로 횡령이나 하고 외국인 사기맞아서 수억을 날리고...

저도 그런 팀들은 리그의 암덩어리라고 생각합니다.

충남아산FC는 그런 구단과 거리가 먼 행보를 해왔습니다.

2019년 아산무궁화 시절, 이 팀 프런트는 시의 무관심과 시즌이 끝나면 해체하는 위치 속에서도 지역 기업들을 설득해 18억 5천만원을 유치했습니다.

전임 시장이 외국인 쓰지 말라고 하니 안 쓰고 6위를 기록했고,

올해는 아예 'CHUNGNAM ASAN'을 떼고 메인스폰서를 얻었습니다.

연봉이 매해 최하위인데 순위는 계속 올리기도 했고,

이 구단의 팬샵에서 파는 상품의 종류는 서울보다도 다양합니다.

선수단은 매해 관내 학교나 기관을 수십번씩 찾아갑니다. 

물론 시비, 도비를 얻어 운영하는 구단의 태생적 한계가 있지만,

자생과 자생력 키우기는 다르고 후자는 꼭 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북맥주를 기획한 프런트 인터뷰에서 본 얘기입니다)

충남아산은 자생력을 키우려 하는 몇 안 되는 시민구단입니다.

그러니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은 몇 구단과 운영 형태가 같다고 해서 동일선상에 놓을 건 아니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전 구단 팬들이 합심해서 지킨 아산의 축구,

이젠 한국 축구에 빚지는 존재가 아니라, 축구 발전에 기여하는 존재로 커가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 가시는 분들이 좋은 추억을 쌓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서울라이트 회원 중에서 아산, 천안, 당진, 평택 등지에 사시는 분이 계신다면 언젠가 이순신종합운동장 한 번 가보시는 게 어떠실까요?

https://www.instagram.com/p/CpOcx06rMcw/?igshid=YmMyMTA2M2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