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TSG 4월호] 이상과 현실 사이의 타협? 2023년 '익수볼'의 변화 - 2023 K리그 TSG기술위원 김남표
안익수 감독의 2022년은 순탄치 못했다. 2021년 성과를 내었던 특유의 전술을 시즌 초반부터 구현하였으나 좀처럼 결과를 내지 못했다. 최종 성적은 9위. 구단 창단 이래 11위를 기록한 2018년 이후 가장 낮은 성적표를 받았다. 이른바 ‘익수볼’이라 불리는 안익수 감독의 전술적 방향성이 확고해 보였으나, 안익수 감독 개인적으로는 ‘이상과 현실’, 즉 ‘내용과 결과’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라 생각된다.숱한 고민과 의구심 속에 지난 시즌을 보낸 FC서울이 올해는 달라졌다. 시즌 첫 4경기에서 3승 1패를 기록하며 현재 리그 2위 자리에 올라섰다. 3월 무패를 기록한 지난 2019년 이후 가장 기분 좋은 출발이다. 하지만 이를 보고 ‘드디어 그 익수볼이 통하는가.’라고 한다면, 틀린 분석이다. 서울은 지난 시즌과는 확연히 다른 경기 운영을 통해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BEFORE : 안익수 감독은 어떤 전술을 활용했었나?
서울의 기본 포메이션은 4-1-4-1 이다. 수비시에는 허리 라인의 기성용이 중앙으로 내려온 5-4-1 대형을 형성한다. 백3로 전환하지만 최후방 라인을 높게 잡아 강하고 지속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이 특징이다. 윗선에서부터 수비를 시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가 미드필드 1/3지점으로 볼을 전개했을 때에도 끊임없는 압박을 가한다. 지난 시즌 서울은 K리그에서 2번째로 높은 압박강도(PPDA)를 기록했다.(8.2)
한편 공격시에는 기성용이 뒤에서 받쳐주고 양 윙백이 중앙으로 들어오는 형태를 보인다. K리그에 신선함을 불러 일으켰던 이른바 ‘인버티드 윙백’ 전술이다. 이 경우 서울이 미드필더 진영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면서 볼 소유를 기반으로 한 빌드업을 전개할 수 있다. 이 때 안쪽으로 좁힌 윙백은 서울의 볼 점유에 관여하지 않는다. 상대 측면 선수를 묶어 서울의 윙어에게 공간을 열어줄 수도 있고, 또는 서울의 미드필더가 윗선에 위치하게 하여 전방으로의 패스 옵션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현대 축구에서 이러한 ‘인버티드 윙백’ 전술을 활용하는 팀들은 지속적인 볼 소유를 통해 경기를 지배하려는 특징을 보인다. 중원에서 수적 우위를 형성할 수 있을 뿐더러, 윙백이 중앙에 위치하기 때문에 상대 역습을 막아내는 데에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은 지난 시즌 경기장 위에서 이러한 전술을 구현하는 데에 여러 문제점을 보였다. 수비부터 얘기해보자. 지속적인 압박을 강조하는 전술은 한 시즌을 쭉 치르기 위해 반드시 체력적 준비가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은 시즌이 진행됨에 따라 체력과 집중력에서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수비 진영에 많은 공간을 노출하는 문제를 보였다. 좋은 경기를 하고도 수비 허점을 내줘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지난 시즌 서울은 6월까지만 하더라도 나쁘지 않은 수비 조직력을 선보였다. 단일 경기에서 단 한번도 2실점 이상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시즌 첫 18경기에서 19실점만을 허용했다. 지난 시즌 서울은 7월 여름에 돌입하면서 수비 조직력이 급격히 무뎌지는 모습을 보였다.
높은 수비 라인도 서울의 고민거리였다. 높은 수비 라인이 잘 이뤄지기 위해서라면 이 3가지 요건이 잘 갖춰져야 한다. ▲뛰어난 전술 이해 능력을 갖춘 선수 – 수비 라인의 리더 ▲돌파를 당하더라도 쫓아갈 수 있는 스피드 ▲넓은 공간을 커버해 최후의 수비수 역할을 겸해줄 수 있는 GK. 지난 시즌 서울은 오스마르, 기성용 등의 베테랑은 있었으나, 높은 수비라인을 커버하기 위한 기동력 좋은 선수들을 확보하지 못했다.
서울의 공격 역시 아쉬운 점이 있었다. 전반적인 빌드업 과정은 좋았으나 공격 1/3지점에서의 마무리 작업이 미숙했다. 박스 안으로의 침투가 활발하지 않았으며, 공격 지역에서의 적극성도 변수를 만들어 내기엔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측면에서 볼을 돌리다 다시 뒤로 공격을 물러서는 상황이 많았다. 서울이 많은 패스 횟수(625회, 1위)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득점 숫자가 저조했던 이유다.
AFTER : 2023시즌 FC서울의 변화
이러한 서울이 이번 시즌에는 확연한 변화를 주며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우선, 빌드업 작업 자체가 상당히 간결해졌다. 선수들이 각자 위치를 지키며 개인 능력을 활용하는 플레이를 시도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이젠 인버티드 윙백과 같은 전술적 움직임도 잘 이뤄지지 않는 편이다. 가령 황의조를 예로 들어보자. 황의조는 이번 시즌 일류첸코와 함께 4-4-2의 2톱 자리에 배치되어 2선 쪽에서의 연계 플레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역할을 맡았다. 뛰어난 피지컬을 통해 전방에서 볼을 소유하고 양 윙백의 오버래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빠른 공수 전환을 바탕으로 선 굵은 축구를 전개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이번 시즌 서울은 낮은 지점에서 볼을 탈취하고 빠른 역습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대개 2톱 일류첸코와 황의조가 전방에서 볼을 지켜주고, 양 윙어가 빠르게 올라와 역습을 전개하는 패턴이다. 이번 시즌 서울은 ‘시퀀스당 패스 횟수’, ‘시퀀스당 소요 시간’, ‘시퀀스의 다이렉트 스피드’의 수치에서 모두 전년도보다 간결해진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수비 방법 역시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형태로 변화했다. 이번 시즌 서울은 4-4-2를 기반으로 공간을 지키는데 주력하는 형태를 보인다. 상황에 따라 윙어를 아예 수비라인으로 내려 상대의 측면 공격에 대응하기도 한다. 가령 3R 울산전의 경우, 서울은 윙백 김태환의 적극적인 오버래핑에 대응하기 위해 윙어 임상협을 내린 5-2-3 수비대형을 경기 중 혼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작년과 달리 전방에서 무리한 압박을 잘 시도하지도 않는다. 선수들이 앞으로 무리하게 덤비는 수비보다는 상황 판단을 통해 안정적인 수비를 구축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전반적인 조직력과 수비수-미드필더 간의 유기적인 움직임은 더욱 좋아졌다. 서울의 이러한 변화는 압박강도 수치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시즌 서울은 K리그에서 2번째로 높은 압박강도(PPDA)를기 록했으나,(8.2) 이번 시즌은 단 10위에 그친다.(10.62) 올해 서울보다 낮은 압박강도를 보이는 구단은 수원FC와 대구 뿐이다.
축구계에는 '단순한 것이 최고다.'라는 격언이 있다. 서울의 전술적 색채가 작년에 비해 단조롭고 옅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색채가 옅여졌다는 것을 바꿔 말하면 전술적으로 유연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강한 색채를 유지하는 것보다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프로무대에서 더 현명한 방식이 되기도 한다. 올해는 FC서울의 약진을 기대해본다.
김남표 위원 약력
1995~1999 대우로얄즈 코치
2000~2004 부산아이파크 코치
2005~2022 KFA 전임강사
2014~2022 AFC 1급 피트니스 주강사
2017~2022 AFC 프로 라이선스 주강사
2019~2020 KFA 기술발전위원회 부위원장
2022~ 한국프로축구연맹 TSG기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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