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칼도 관련 저 아래 글에 추가로
05~09 서울의 팀 컬러를 만들고 서울이 확고한 강팀 이미지 구축하고 거대 팬덤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두 축은 바로
박주영 / 귀네슈
그리고 그 두 위대한 인물 틈 사이에 절대로 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 '히칼도'임
괜히 레전드 칭호를 받는게 아닐 뿐더러
레이피어 소모임 분 중 히칼도 그림 그려진 대형 깃발에 spirit 이라는 문구가 씌인게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연고 문제로 원정이라도 가면 쓰레기통, 소주병, 돌이 날라오던
인터넷 커뮤마다 조리돌림 당하고 '클린 서포팅' 한다며 무대응에 맨 몸으로 쳐맞고만 다니던 시절
저 아래 글처럼 관중석의 우리를 보고 오히려 독려하고 기 안죽게 했던 선수가 히칼도였음
당시 전남에서 성과를 낸 직후라 양아들 백지훈까지 데려와 서울에 백지훈-박주영 청대 라인을 인식하려던 이장수는
전형적인 선수비 후역습 구식 한국스타일 축구로 간간히 성적은 내던 감독이었는데
어마무시한 킥력을 가진 공미 히칼도를 수혈함으로써 히칼도-박주영 라인을 완성했고
상대팀들 견제가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히칼도-박주영 라인은 많은 어시와 골로 찍어누르고 팀을 4위 플레이오프권 정도로 올려놨음
예전 훈련 영상들 보면
당시 중고교 유망주 조광래 전 감독( 현 징구 사장)이 싹쓸이 해서 전국에서 공 좀 찬다는 어린 미드필더를 우리 팀에 다 있었는데
고요한 고명진 이청용 송진형 김동석 같은 대형 유망주들이 히칼도 킥 찰 때 옆에서 보고 따라하고 그랬었음
한 때 코너킥 찰 때 2군 경기장 가본 올드팬들은 어린 선수들이 죄다 히칼도처럼 킥 차고 디딤발 점프하는거 보고 웃고 그랬음
암튼.. 당시 우승을 통해 연고 이슈와 팬덤 확보에 방점을 찍고 싶었던 서울 높으신 분들이
이장수 무전술, 최상위권 성적 실패를 문제 삼아 시즌이 끝나고 명장 귀네슈를 모셔오는데...
( 비하인드 - 사실 경질의 직접적인 이유는 선수단 내 불만이 폭발했기 때문도 있음 : 성남과의 플레이오프 때 당시 부상이었던 최원권(현 대구 감독)을 갑자기 주전조로 호출, 상대팀 에이스였던 '모따를 담궈버리고 카드 받으면 어차피 부상이니 다음 게임 때 나오지마라'고 이장수가 지시한 사건 때문에 선수단 내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았던 것도 있었음)
어찌저찌 그렇게 모셔온 귀네슈
서울의 색채를 만들고 전술적이던 스타플레이어던 단순히 축구를 보는 재미를 넘어서서 문화를 만들어 준 위대한 감독 덕분에
성적도 팬덤도 재미도 모든 것이 정상으로 향해가고 있었지만
공미를 쓰지 않는 4-4-2 전술로 인해
결과적으로 히칼도를 시작으로 송진형(호주 뉴캐슬로), 김동석(울산으로) 같은 연령대 최고 공미들이 차례차례 모두 팀을 떠나게 됨
18살, 19살이던 쌍용의 주전 기용, 국대 선발이라는 놀라운 등장과 다이나믹하고 꽉찬 경기 내용 때문에
정말 많았던 히칼도 팬들마저 차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던 상황을 맞이하게 된거지
영상에서처럼 팬도 떠나보내기 싫고 선수도 떠나기 싫지만 어쩔 수 없는 그 이별이 무슨 한처럼 팬들 가슴에 남은거...
영웅님 오신 날 히칼도 인사 영상 후 히칼도 콜이 아주 작게나마 들렸을 때
올드팬들 상당수가 울컥했던 이유가 이 정도 글로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음...
아 그리고 당시 전광판에는 양 옆에 소리 측정 데시벨 화면 같은게 있었는데
소리가 클수록 막대가 위로 올라가면서 빨간색이 되는 그런게 있어서
당시에 개랑 것들이랑 경기하면 N석에서 집중적으로 응원을 해도 게이지가 65%가 될락말락했던게 다인 장내 소리였는대
저 게이지를 맨 윗까지 시뻘겋게 찍은 유'이'한 인물이 바로 히칼도 콜이었음 (또 다른 한 분은 10년 챔결 아디신)
E석 W석 N석 모두가 세트피스, 코너킥 , 히칼도가 공만 잡을라치면 클랩퍼 치면서 저 콜을 부르는데
역대 모든 응원가 중 그 소리 데시벨을 뛰어넘는 응원은 없었다
추천인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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