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 김개랑씨의 하루.(1부)
09시30분)
'청백적! 거리와 친구들과 우리의 노래들과 우리의 이야기와~ 블루윙! . . .-'
내 삼성 Z플립에서 울리는 웅장한 데스파시토 알람과 함께 눈을 뜬다. 주말에는 알람을 맞춰놓지 않지만 올 시즌 처음 이긴 날 눈이 떠진 시간이 오전 9시30분. 이 시간에 일어나면 왠지 이길 것 같아 알람을 맞춰 놓은 것이다.
눈을 비비며 알람을 끄고 그대로 청백적에 들어간다. '(톡..톡..톡..토톡...) 설레서 지금 눈떠진 개붕이면 개추...' 글을 하나 쓰고 간밤에 글들을 복습하며 뒤척거린다.
10시20분)
청백적, 펨코 등을 다 뒤적거리고 나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침대 맡에 둔 아길레온 인형을 괜시리 쓰다듬으며 읊조려본다. '오늘은... 오늘은... 이기겠지?' 아길레온은 아무 말이 없다.
거실로 나가 내 전용 컵인 수원 삼성 스탠리컵에 물을 따라 마시며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주말인데 벌써 일어났니?', '오늘 무슨 약속있니 아들?'
'저 오늘 축구보러 가요'
'그 맨날 지는 거 뭐하러 보러 가는거야 가서 스트레스만 받아오면서 어휴...'
엄마의 애정섞인 핀잔에 대꾸를 할 힘도 없다. 저 말도 벌써 작년부터 귀에 인이 박히게 들은 말이다. 엄마 말대로 우리 팀이 허구한 날 지는 것도 사실이고 내가 그깟 공놀이로 스트레스만 받는 것도 사실이라 사실 대꾸할 말이 없다. 하지만 ... 하지만...
'죽어도 블루윙스라구요...'
들릴 듯 말듯 내뱉고 나자 숨이 턱 막혀 냉장고 문마저 턱- 닫는다. 어차피 먹을 게 어제 먹다 남은 치킨 밖에 없다. 치킨...? 갑자기 숨이 또 한 번 턱 막힌다. 애꿎은 물이나 한 컵 더 마시고 방문을 쿵 닫고 들어갈 수 밖에.
12시30분)
축구 생각을 잊기 위해 쇼츠를 넘기며 잡념을 떨쳐본다. '하하하 메코클 ㅈㄴ웃기네 ㅋㅋ' '(스윽) 아... 빌어먹을 알고리즘. 슈퍼매치, 수원 강등콜을 외치는 수호신...?, ''수!원!강!등! 수!원!강!등!' 개같은 ○○○들... 오늘 기필코 복수해주리라. 이미 예전에 비추를 박은 게시물이건만 왜 오늘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 뜨는 건지. 신경질스럽게 영상을 다시 보지 않음을 누르고 폰을 꺼버린다. '시X 씻기나 하자...'
(까똑-)
울리는 카톡 알람소리, 오늘 같이 경기장을 가기로 한 친구가 몇시에 갈 건지를 묻는다.(토..톡..토..톡)
'진짜 지지자는 당연히 2시간 전이지 2시까지 만나 ○○○아'
'오늘 날 존나 더운데 지면 개빡칠 듯 ㅋㅋㅋ'
이 씨X놈은 갑자기 왜 진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 부정타게 이런 불결한 마음이 모여서 패배 기운이 쌓인다는 걸 모르나?
'안 지니까 아가리해라 늦으면 뒤진다'
13시 10분)
목욕재계. 몸을 닦으며 심신을 정결케하는 것. 오늘처럼 중요한 전투에 나가기 위해서는 목욕재계를 신성히 해야한다. 유튜브를 키... '아 씨...x 진짜...'
'수!원!강!등! 수!..(뚝)'
유튜브를 똑바로 껐어야하는데 신경질 난다고 그냥 어플을 닫았구나... 신성한 목욕재계 시간에 벌써 부정이 타버린 기분이라 기분이 좋지 않다. '개같은 북X○○○들...' 하여튼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족속들이다. 오늘은 기필코 이겨서 그 패륜놈들의 일주일을 망쳐주리라 다짐하며 저장된 동영상에서 수원삼성 응원가 모음을 재생한다.
'이게 응원이고 이게 응원가지 카피나 하는 ○○○들'
응원가를 들으니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응원가를 들으니까 오늘 이길 것 같은 느낌.
(흥얼흥얼)'알레알레~알레알레 알레 알레 올라~ 알레알레 알레 청백적의 챔피어~ㄴ 어~디라도~ 꿈 속이라도~ 널 따라가~'
'그래! 씨X 죽어도 블루윙즈다 어디라도 따라가주마!'
13시40분)
옷장을 열어 고민하지 않고 26번 염기훈 유니폼을 고른다. 염기훈 유니폼을 들쳐내니 작년 시즌 오현규 마킹이 보인다. 갑자기 또 석이 나간다. 떠나간 현규에 대한 속상함인지 오현규가 나갔는데 대체자로 뮬리치를 사온 개런트에 대한 원망인지 그중 날 더 힘들게 하는 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 아니지 현규를 원망하다니 수원팬이라면 그럴 수 없다. '현규야... 우리는 이제 누가 지켜주냐...' 그래 어떻게 현규에게 속상하다고 말하겠어. 작년 강등을 구해줬는데, 하지만 올해는 현규가 없다. 개같은 개런트○○○들... 하지만 우리의 자존심 염기훈이 남아있지 않은가. 슈퍼매치는 염기훈이지! 내 선택에 오늘은 주저함이 없다.
거울에 오늘 유니폼 착장을 비춰본다. '음 역시 유니폼은 수원이지' 블루윙즈 머플러를 메고 북벌완장을 가방에 메단 채로 어머니의 핀잔이 날 괴롭히기 전에 서둘러 현관문을 후다닥 나선다.
'다녀 오겠습니다.' (삐리릭- 쿵)
묘한 긴장감이 전신을 감싼다. 날은 덥지만 경기장으로 내딛는 첫발에 또 묘한 기대감이 실려있다.
'그래도, 오늘은 이기겠지', '그래 오늘은 이길거야...', '김병수 믿어...'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진짜 뭔가 이길 거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 가보자
'죽어도 블루윙즈다 씨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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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나면 2부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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