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상담게시판을 보고 느낀 안티개랑 논쟁에 대한 올드팬의 소회

나는 10년도부터 본격 서울서포팅을 시작했다. 망원동에서 30년을 살았고, IMF때 사업하시는 아버지가 삼남매를 모두 돌 볼 여건이 안돼서 잠시 안양외갓집에 맡겨졌을 때 안종 앞에 사시던(지금도 사시는) 외할아버지 손을 잡고 주말에 안종에서 LG치타스 경기보러가며 안종 넘어가는 터널에 공들고 뛰놀던 기억도 있으니 첫 직관은 98년도 정도 되겠지.

10년도 서울 입문했을 때 서울은 진짜 강팀이었고, 지지 않는 팀이었다. 황보관 시절은 직접경험 못했으니 패스하고 15, 16년까지 서울은 항상 강팀, 강호 이미지면서도 리그 전체 팬덤에게 괄시, 조롱받던 팀이었다. 진짜 서포팅하면서 당시 10대~20대 초반 시절 철 지지리도 없던 시절에 상처도 많이 받았고 타 팀에 대한 분노도 엄청 쌓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중 수원삼성에 대한 분개, 절대 섞일 수 없는 집단이라는 생각은 누가 강제로 내게 주입한 것도 아니고 그 당시 팬들이라면 경기장에 가서 피부로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냥 수원삼성이라는 팀과 그 팬들은 굳이 누가 '우리의 라이벌이야'라고 하지 않아도 경기장 1-2년만 다니면 '저 찢어죽일 놈들'이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그렇게 느끼게 된 대표적인 사건을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내가 나고 자란 망원동-상암동 일대는 지금은 꽤나 발전하고 망리단길, 상암동(DMC)일대가 개발되면서 젊은 독거세대가 유입되고 신축 아파트 단지들이 새로 조성되면서 부촌의 이미지가 있지만 과거 내가 나고 골목을 누비던 90년대 후반 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부촌인 서교동을 제외하면 상암, 성산, 동교, 망원동은 베드타운이면서 저지대였기에 장마철, 태풍철이면 상시적으로 침수되던 지역이라 개발이 더디고 집값이 싼 동네였다. 실제로 피난짐을 챙겨본 경험이 두 세번 있었고.

할아버지대부터 사업을 하던 아버지는 원래 서교동에서 지내다가 사업의 몇번 위기를 겪고 부천으로 옮겼다가 다시 망원동으로 이사했기에 그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었다. 그 영향을 나도 받았음은 당연하고. 그 당시 학군, 동네의 분위기는 지금 망원동과는 아주 다른 느낌이었다. 아파트보다는 허름한 빌라, 쪽방도 존재했고 지금 망원동 체육공원 앞 카페단지는 원래 모두 빈민계층이 살던 쪽방촌이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난지도'에 대해 우리 윗세대 어른들, 원주민분들은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쓰레기 매립지가 사라진게 93년. 그 뒤로 10여년이 흐른 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에도 사실이 아님에도 상암동 사는 애들은 쓰레기동네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었고, 타 지역애들이 마포구 상암쪽이라하면 난지도 이야기 할 때도 있었고 쓰레기 냄새난다는 이야기도 실제로 들어본 적이 꽤 많다. 명백한 지역차별적 발언이고 불쾌한 이야기다. 동네 어른들에게는 분명 우리 세대보다 더 상처되는 말이었던 건 분명하다. 

그런 지역적 특성에 기반해 '거지들 노선', '쓰레기 매립지', '난지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패륜송보다 더 열불이 끓어올랐다. 내가 나고 자랐고 내 추억이 가득 담긴 동네를 거지, 쓰레기 매립지, 난지도라고 부르는 것에 그 누가 감정이 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추억과 내가 사랑하는 동네를 거지들 동네라고 부르는데? 쓰레기 매립장이라고 부르는데? 축구로 상대를 조롱하는게 아니라 사는 동네, 내 연고지역을 비하하는 서포터즈는 수원 이외에 내 기억에 존재하지 않았다. 

2. 예전에 진군가가 왜 생겼는지 이야기하면서 앤썸을 거부했던 이야기를 썼었는데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요약하자면 30주년 K리그 앤썸, 우리가 흔히 아는 K리그 앤썸 HERE IS THE GLORY는 서울팬들을 왕따시킨 시절의 산증거물이다. 리그서포터즈들이 모여 만든 앤썸에 우리는 초대받지 못했다. 우리는 왕따였으니까. 그들 논리로 패륜구단이었으니까. 우리 구단이 앤썸을 트는 듯 마는 듯 틀고 서포터즈가 진군가로 앤썸을 덮고 떼창하는 문화는 그 무시와 괄시에 대한 저항이었다. 

지금도 구글에 FC GS를 검색하면 풋케위키라는 문서가 나온다. 지금 모르는 팬들은 검색해서 거기 우리 엠블럼이 어떻게 걸려있는지 보길 바란다. 오프와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그 역사와 분위기를 만든 팬덤은 수원삼성을 필두로 한 몇개의 팬덤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퇴색됐지만 패륜송을 우리에게 노래까지 만들어 부른 구단은 수원과 인천이 거의 유이한 걸로 안다. 우리가 젖어 스스로 부르던 자조나 자학과는 다르다. 그들은 진짜로 우리 구단이 사라지기를 바랬다. 진심으로. 

3. 그 밖에 수많은 사건들, 가령 서포터즈간의 충돌, 산발적인 조롱등 셀 수도 없게 많은 사건들을 차치하고 2018년만 돌아가보더라도 승강P.O당시 부산 홈석에 유니폼 중 가장 많은 색깔은 파란색이었다. 당시 사진이나 분위기는 구글이나 네이버에 K리그 연합군만 쳐도 수두룩 나오니 모르는 분들이 계시다면 검색해보길 바란다. 우리가 강등당할 위기에 누구보다 박수를 치고 좋아하던 친구들은 수원삼성팬들이었다. 

그런 시절을 겪고 자라왔는데 작금에 안티개랑 사이트라던지 수원삼성 조롱하는게 뇌절이라는 이야기는 퍽 충격적이긴 부분으로 다가오긴 한다. 세월이 바뀌어서 새로 팬이 되신 분들과 다른 나만의 한의 깊이가 다른건지 아니면 이제 팬들이 느끼는 서포팅의 요소가 증오나 분노에 기반한 골 깊은 감정보다는 즐거움에 초점을 맞춰 진화한건가 그건 좋은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내가 응원하고 피부로 맞닿아 온 수원삼성이란 존재는 개랑 앞에 안티가 붙을 수가 없고 개랑 그 자체의 이름에 이미 안티의 뜻이 담긴 대상이니까.  좀 나도 시간이 지나고 희석된 감정이 있고 과거처럼 분노나 혐오의 감정이 들진 않지만 그래도 걔네를 대상으로 회고하고 돌이킬 때 나한테 상처만 준 존재인데 저 단어를 봤을 때 뭔가 서글픈 감정도 들고 그렇다. 

어떤 의미로 피곤하다고 하는 지 공감도 들기도 하고. 그럼에도 내가 느낄 때 수원삼성이란 대상은 지금이야 해학적으로 풀어도 충분하고 굳이 죽일 놈들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싶진 않지만 작금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평생 놀리고 싶고 되갚아주고 싶은 존재인데 안티개랑이라는 단어가 너무 낯설어서 적어본다. 

솔직히 정도가 너무 원색적인 비난, 눈쌀찌푸려지는 욕지거리가 아니라면 서울라이트에서는 이해해줬으면 좋겠는 부분이 솔직한 심정으로 그 글을 보자마자 들어서. 그런 혐오적인 분위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