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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사에 대한 책임 : 왜 망한 팀을 좋아하세요?

윤영선 title: 뗑컨윤영선 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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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fcseoulite.me/free/1884903 복사

FC서울이 악화일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 2018년부터 지인들은 내게 제목과 같은 질문을 해왔다. 왜 굳이 그런 팀을 좋아하냐고. 순위표 보니까 전북이랑 울산이 잘 나가던데? 대구나 광주 축구가 재미있지 않아? 이 질문은 2019년 잠깐 동안 종적을 감췄다가, 올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어쩌면 그 18년보다도 지금이 더 심하다는 느낌까지 있다. 나조차 그 질문에 답하는 게 지겨워지기 시작했으니. 그래서 그럴 때마다 내놓는 자동응답기와도 같은 대답을 최근에 만들었다. 단 한 팀의 축구를 보는 이유는 성적도 재미도 아닌, 같이 만든 기억 때문이라고.


"너와 나의 뜨거운 역사를 위하여"


국내축구를 1년 내내 보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이 문구에 대해 알 것이다. 경남 FC의 서포터즈가 원정을 떠날 때마다 그들의 자리에는 이 글자가 적힌 배너가 걸린다. 너와 나의, 뜨거운 역사. 대부분의 팀 팬들은 그 때문에 열불이 터지는데도 축구를 본다. 같은 팀의 크고도 기나긴 홈 경기 걸개를 보면 조금 더 명확해진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가야할 길이 있으니 우리 행복하지 아니한가.' 내가 사랑하는 팀과 함께 가는 길이라면 그게 ACL 결승이든, 한때는 결승이 현실이던 무대의 문턱이라도 넘어보기 위해 초라하게 비를 맞으며 보는 장거리 원정 최종전이든, 아니면 하다못해 승강전이든 가야 하는 거다. 애인이 늦잠을 자고 나와 안 맞는다 해서 바로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찾는 경우는 잘 없지 않은가? 축구팬들에게 지지하는 팀은 그런 거다. 그 팀과 함께한 시간이 좋아서, 그 시간 속에서 만들어낸 기억을 놓을 수 없어서 쇠락해가는 게 눈에 보이는데도 팀을 놓지 못하는 거다. 


나야 서울 축구를 본 게 기껏해야 5년밖에 안 됐지만 서울에는 그보다 훨씬 오래 축구를 본 사람들이 많다. 개중에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몇 년째 팟캐스트 방송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대학교에서 만난 애인이자 지금의 배우자가 서울 팬이라 같이 응원한다는 분도 있다. 지난해 어느 날에는 직관을 갔다가 동대문의 LG 시절부터 이 팀을 지켜봐왔다는 나이 지긋한 분을 N석에서 만났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지만 저절로 경례가 나오더라. 2017년의 어느 날엔 엠블럼에 'LG ANYANG F.C.'가 박힌 붉은 유니폼을 입은 분이 경기가 끝난 후 북측광장을 빠져나가는 것도 본 적이 있다. 이런 분들에게 FC서울은 성적 좀 안 나온다고 관심을 줄일 수 있는 뭔가가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하는, 그야말로 가족 같은 존재다. 설령 지치는 상황이 와도 안 보자니 '그럼 지금까지 봐온 내 시간은?' 이라는 의문이 따르는 게 팬이라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현실이다. 팀과 자신이 함께 만들어온 이야기 때문에 축구를 보며 얻은 스트레스가 일상 생활에까지 영향을 줘도 그만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축구를 본다. '나와 팀'이라는, 인생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서사 때문에. 


어떻게 보면 망조가 든 팀 팬들은 팀 자체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서사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해 그 팀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둘이 만든 이야기에 책임을 다하는 건 한쪽뿐이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진하게 든다. 굳이 서울뿐 아니라 수원이나 인천 등 아사리판이 난 다른 팀도 마찬가지다. 팬들은 어찌됐건 내 팀이니까, 내가 사랑해왔고 함께 시간을 보낸 팀이니까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운영은 막장이 돼가는데도 FC서울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인천 유나이티드의 곁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서사를 만든 다른 주체인 구단들은 그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나? 하위권에 처져있는 건 똑같지만 성남은 초보 감독에 대한 우려를 충실한 선수 보강을 통해 줄여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부산은 적어도 승격함으로써 팬들의 한을 풀기 위해 백방으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서울과 수원과 인천은 책임을 다하긴커녕 그런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는지도 모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성용부터 리얼돌까지 전반기에 있던 수많은 일들은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랬다간 칼럼이 아니라 욕으로 원고지 40장 정도는 너끈히 채운 후에 GS스포츠라는 원고명이 적힌 고소장을 받을 것 같아서. 서울의 새 외국인이 제리치였다가, 호사였다가 (어느 누구도 유니폼을 입지 않았는데) 이제는 벨트비크란다. 팀이 빈공에 시달리는 와중에 외국인 공격수를 빨리 보강하긴커녕 이 선수다, 저 선수다 설만 흘러나오게 하고 결과물은 내지도 못하는 건 함께 만든 이야기를 성의껏 이어가겠다는 자세가 전혀 아니다. 수원의 핵심이자 레전드나 마찬가지였던 홍철이 나가는데 구단 SNS에는 영상편지 하나 없다. 햇수로 8년을 중심이 돼 뛴 선수와의 작별이 기껏해야 그래픽 사진 한 장으로 나타나는 건 그간 쌓아온 이야기조차 가치없게 취급한다는 소리다. 인천은 생존왕이라는 소리를 몇 년째 듣고도 다시 맨 밑에 처박혔다. 실수는 한두 번이다. 같은 방식의 실패를 반복하는 건 스스로에게 그러지 않을 책임이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행보다. 과연 이들이 팬과 함께 직조한 서사를 계속해서 똑바로, 아니 최소한 상식적으로 짜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알기나 하는 걸까.


결혼은 어느 한 명의 최선만으로 이어질 수 없다. 다른 모든 관계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함께 만드는 이야기는 둘이 모두 성의를 보일 때 이어질 수 있다. 지금 몇몇 구단이 보여주는 자세는 그와 거리가 너무 멀다. 재정악화, 마케팅, 모기업 내지는 지자체와의 관계는 다 중요하다. 하지만 창단을 하겠다고, 내지는 입성을 하겠다고 관계서류에 사인한 순간 구단이 우선적으로 바라봐야 할 건 그들 뒤에 서 있는 지지자들이다. 혼인신고서에 이름을 적는 순간 직장생활과 친구와의 모임 같은 것보다 배우자가 중요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곤두박질친 순위뿐 아니라 비상식적인 행보로 욕을 먹는 팀들은 과연 이 의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나?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의무가 있다는 걸 알고는 있나?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일하는데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고? 만약 그렇다면 사이코들이겠지. 1부리그 챔피언의 축구를 보든, 2부리그 꼴찌팀의 축구를 보든 팬들은 경기장에 가고 유니폼을 사기 위해 돈을 쓴다. 하지만 내 돈을 주고 스트레스와 분노, 편두통과 우울감 그리고 일상 생활의 악화를 얻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축구 잘 하는 게 어렵다면 존중받는 느낌이라도 줘야 돈값을 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돈값 하라고 있는 게 프로다. 이 팀 사무국들이 '프로'축구 업무를 할 자격이나 있나? 전혀 아닌 것 같다. 


인간은 의식주가 없으면 살 수 없지만, 축구 못 본다고 죽지는 않는다. 안 봐도 될 축구를 눈앞에 들이밀어 멀쩡한 사람을 팀에 살고 죽게 만들어놨으면 그렇게 만든 책임을 좀 지길 바란다. 어느 날 갑자기 끼어들어서 졸지에 같이 만든 팬으로서의 서사를 아름답게 꾸리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이어갈 수나 있게 해달란 말이다. 그러라고 구단에서 돈 받고 밥 먹는 거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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