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편찬원 피셜) 서울공동화정책 때 강제로라도 연고이전 시키라고 정부가 압박 넣음
출처: 서울의 축구 (2018.03.05 서울역사편찬원 발간, 정윤수 교수 집필 - 정용철 교수 감수)
1983~1986 시즌엔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랑구단처럼 경기를 했고, 1987년부턴 광역 지역연고제가 실시됨. 즉, 연고 제도의 근간이 마련된 것임. 하지만 프로축구팀이 연고지에 제대로 뿌리 내린 건 절대 아니었음.
서울올림픽 준비 때문에 대우(부산+경남)는 마산에서 홈경기를 하고, 럭키금성(충청도)는 청주와 천안 등에서 홈경기를 함. 이러면 연고의식이 생길 수가 없음.
전북 현대(전주), 전남 드래곤즈(광양), 경남FC(창원)나 프로야구처럼 한 곳을 메인 홈구장으로 정한다면 광역 연고지를 둬도 연고 정착이 잘 됨. 그렇지만 수시로 순회 경기를 하면 연고 정착에 크게 도움 안 됨.
당장 2020년대에도 일부 광역 연고 구단들은 연고의식이 부실한 편임. 이 글을 쓰는 본인도 강원도 사람이지만 강원FC에 큰 연고의식은 못 느낌. 허구한 날 홈경기가 강원도 여러지방에서 번갈아 벌어지는데 내 고향 팀이라는 생각이 왜 듦? 차라리 대학교랑 가까운 FC서울이 더 매력있지.
1990년대 초중반에는 LG치타스(FC서울)와 일화천마(성남FC), 유콩 코끼리(제주 UTD) 등 3팀이 서울동대문운동장에 자리를 잡음. 드디어 프로축구에도 서울 연고 팀이 생겼음.
근데 홈경기 개최 비율은 오히려 광역 연고지 시절보다도 낮아졌음. 하지만 이건 구단들이 연고 정착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음. 오히려 구단들은 공동 마케팅까지 시행하며 연고정착을 위해 노력했고, FC서울의 전신인 LG치타스는 홍보팀과 영업팀도 별도로 뒀음
그러나 구장이 1개 뿐이고 소유주도 정부여서 경기장 관리가 정말정말 힘들었음. 경기 일정 수립조차 빡센 수준이었음. 게다가 국대경기나 고교 축구, 실업축구 경기를 위해 홈구장을 울며겨자먹기로 비워야하는 상황도 허다했음. 지금이랑은 난이도가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음.
그러다가 1995년 2월에 연맹 이사회에서 서울에 축구전용구장 건립할 계획을 연말까지 세우고, 그렇지 못할 경우 나가라고 통보함. 하지만 2020년대에도 축구전용구장 건립이 쉽지 않은데 당시는 말할 것도 없었음. 그냥 짐싸서 빨리 나가라는 소리를 돌려서 말한 것에 불과함
이에 세 구단은 서울을 떠나지 않겠다며 항의했지만 연맹과 정부에서 모두 묵살함. 연맹은 연고지 안 옮기는 팀들에게는 리그 참가를 금지시키겠다며 엄포를 놓았고, 정부에서도 강제 이전 지침을 하달함
결국 LG, 유공, 일화는 모두 서울에서 반강제로 쫓겨났고 LG는 2004년이 되어서야 서울로 간신히 복귀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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