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일 김개랑씨의 하루(2부)
1부 : https://fcseoulite.me/free/22222373
11시 00분)
오늘도 20-2번 버스에 몸을 싣는다. 조금은 이른시간이지만 검은 옷, 파란 머플러 그리고 비도 눈 소식도 없지만 우산을 든 사람들이 정거장마다 이 버스를 채운다. 동질감. 안도감. 아니 이건 전우애다. 눈빛이 교환된다. 눈동자에는 의지가 실려있다. 오늘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어? 눈온다.'
창 밖에 눈이 조금씩 내린다. 가슴 속에 찡한 것 몽그라져 올라온다.
'하얗게 눈이 내리던 그날처럼, 나의 마음에 환희를 한번 더.'
나는 그 날을 보진 못했지만, 적어도 눈이 우리에게 좋은 의미라는 건 지난 주를 통해 알게 됐다. 좋은 기분이 몸을 감싼다. 눈이 오는 날 수원은 지지 않아. 오늘 우리는 이 눈과 함께 또 역사를 만들어 가겠지.
'야, 어디쯤이야? 밖에 눈 옴 오늘 우리 역사를 만들어 가는거 아니냐? ㅋㅋㅋ'
'까똑''2년 연속 승강 플레이오프 가는 것도 역사냐? 하긴 원나라 속국 시절도 고려사고 일제강점기도 한국사지'
'○○○아 아가리'
'ㅇㅋ 거의 다 옴. 그래도 근데 눈오니까 뭔가 기분은 좋네'
그래, 저 가사와는 좀 맞지 않긴 하네 그래도, 눈이 우리에게 좋은 의미인 건 맞잖아.
버스는 광교중앙역을 지나고 있다.
11시 25분)
'ㅋㅋㅋㅋ 아 오늘 경기 기대되네' , 'ㅋㅋㅋㅋ이걸 오네 이거 지면...'
버스를 내리자마자 뭔가 해맑게 웃으면서 지나가는 사람 두명의 말소리가 스쳐지나간다. 우산, 머플러 등 수원과 관련된 아무 표식도 없고, 강원팬들은 보통 버스를 타고 한번에 올테지. 수원팬이 지금 저렇게 나사빠져 웃으면서 지나갈리가 없으니 저 놈들은 매북이나 북X가 아닐까. 합리적 의심이 든다. 청백적을 킨다. 이 사실은 공유되어야 한다.
'오늘 매북파이들 존나 왔나 보네. 옆에서 키득거리면서 지나감.'
벌레같은 ○○○들. 남의 슬픔을 보며 웃는 ○○○들은 다 천벌을 받아야 한다. 얼마 전 일이 떠오른다. 얼마전 나는 펨코에 지금 내 생각과 같은 뉘앙스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고승범 사건으로 반성해야 할 북X 놈들이 찌그러져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나에게 '니네는 18년에 안그랬냐?', '개로남불 개쩌네' 등등의 댓글로 염병을 떨었다. 그건 지네가 패륜짓을 해서 마땅히 벌 받아야 했다는 걸 왜 모를까 그리고 그건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게 아니라 부산이 판을 벌린건데 왜 우리가 욕을 먹는지. 우리가 인기팀이다보니 우리를 시기하는 놈들의 억지가 늘 과하다. 특히 북X와 은근히 편드는 매북놈들 그러니까 고승범을 그렇게 때리고도 반성을 안하지, 보란 듯이 살아남아 내년에는 올해의 설욕을 다 되갚아주리라 다짐한다.
그래, 그때의 서울도 살아남았는데 우리라고 살아남지 못할 리가 없지. 저렇게 웃는 걸보니 저것들은 북X가 확실하다. 지금 실컷 웃어둬라.
'야 어디야 여기 북X 있음.'
'까똑' '나 쓰레기 주우면서 가는 중. 걔네도 좀 주워라~'
아 맞다. 선행을 해야지 나도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쓰레기를 찾는다.
오늘 이기고 신나게 외쳐야지,
'강원 따운!, K리그2 비상! 경남, 김포, 부산 아무나 나와!'
11시45분)
친구와 만나 쓰레기를 한바탕 주웠다. 훈훈하게도 주변 사람들도 몇명 우리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선행은 보상을 받는다. 북X 놈들이 업보를 지난 경기에서 청산 받지 않았던가.
'업보 쌓으면 청산 받아 그렇지?, 우리 선행했으니까 우리 살아남겠지?'
'어... 업보는 우리도 만만치 않긴 한데 오늘 선행으로 카바쳤으니까 오늘 지지는 않겠지?ㅋㅋㅋ'
'? 우리가 무슨 업보가 있는데'
'어... 농담이야'
'재미없어 ○○○아. 오늘은 좀 제발'
'알았어 농담이야 ㅋㅋㅋ 밥 먹고 들어가자'
우리의 업보란 무엇일까. 열심히 응원한 죄?. 이 팀을 믿고 지지한 죄? 대체 무슨 업보. 저 말이 걸린다. 나는 억울하다. 나는 18년도 부산 아이파크를 응원하지 않았다. 그 곳에 가지도 않았고, 나는 경기장 밖에서 그 누구에게도 위해를 가한 적이 없다. 나는 그냥 평범한 수원팬이었는데 저 업보 소리는 왜 따라다니는 걸까, 강등콜? 그건 누구나 다 하는 거잖아. 솔직히 그걸 누가 먼저 누구한테 했는지 어떻게 다 명확히 조사한단 말인가. 그런 걸로 업보라면 우리는 이미 올해 다 청산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억울하다. 날이 추워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 볼과 귀가 빨갛고 뜨거워지는 것 같다.
'야, 서서 뭐해 밥 먹을거면 빨리 와'
'야, 진짜 예민하니까 업보 얘기하지마라'
'알겠어 안할게 미안해 미안 됐지? 이 ○○○는 나보다 뒤늦게 팬됐는데 왤케 예민해.'
너는 왜 먼저 응원해놓고 그런건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탁 차오르지만, 이내 삼킨다. 어차피 얘도 진심인걸 아니까. 받아내는 방식이 다른거겠지.
12시 40분)
밥을 먹고 다시 빅버드로 돌아오는 길 강원 원정팬 버스가 도착했다고 한다. 10대가 왔다고 한다. 10대든 100대든 어차피 우리가 응원으로 다 쳐바르니 문제가 될 건 없다. 응원단을 부를게 없어서 공무원들까지 총 집합을 시켰다니, 시도민구단들은 정말 적폐 중에 적폐다. 응당, 서포터즈석을 자발적으로 채우는 우리가 1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또 확신으로 변한다.
밥을 먹는 중에 라인업이 떴었다. 카즈키, 이종성이 없는 것이 영 맘에 걸린다. 강원은 라인업이 두터워 진 것 같다. 그래도 이런 단기결전은 보통 기합, 더 간절한 쪽이 승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간절하다. 우리의 라인업과 제주와 수원FC의 라인업을 보니 제주에게 내심 고맙다. 제주는 거의 주전을 내주었다. 고맙다 남패륜. 오늘 수원FC를 꼭 잡아다오라는 얘기를 하며 부지런히 경기장으로 발을 옮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스타디움을 둘러싸고 있다. 소모임의 걸개가 철창에 나부낀다.
그 중 '축구수도' 배너가 눈에 가장 눈에 띈다. 지금은 쇠퇴했다지만, 언젠간 다시 축구수도의 위용을 되찾을 거란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인파를 헤짚고 천천히 북문으로 발을 옮긴다. 나와 친구도 어떤 말을 나누진 않는다. '오늘 살아남을 수 있겠지'라는 말같은 건 사치에 가깝다. 살아남아야만 하므로. 늘 설레었던 그러나 요 2년간은 긴장감과 약간의 울렁임이 일게하는 N석 게이트를 넘어 우리의 자리로 향한다. 그 안에 모두가 검고, 속은 파랗다. 오늘 경기가 끝나면 검은 것은 벗어 던지고 파란 물결로 쓸어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나도 오늘 안에는 염기훈 유니폼을 입고 왔다.
자리에 가니 흰색 플래카드가 놓여져있다.
'카드섹션.'
이걸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팀이 K리그2를 간다고? 웃기지 말라 그래. 갑자기 자신감이 샘솟는다. 원정석도 차츰차츰 차기 시작한다. 뚫어져라 쳐다본다. 빨간 것과 초록 것을 찾는다. 아직 보이진 않는다. 보이면 각오해라. 시간이 살같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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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경기 시작 10분 전 내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한다.
(3부에 계속)
인데 밥먹고 뭐 해야할 일이 있어서 언제 3부 나올지 모름. 현생사세요 다들 ㅎㅇㅌ
*그리고 웬만하면 종합커뮤로 퍼가지 말아주라, 이게 걍 우리끼리 웃자고 쓴 글이고 이거 퍼가서 누가 나한테 ○○○하면 나 힘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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