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세비치 풀스토리
93년 8월 22일, 유고슬라비아 질란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이름은
Александар Палочевић
알렉산다르 팔로세비치
14살 때 유고슬라비아는 해체되고
세르비아 국적을 가지게 된다.
15살때 지역의 어린이팀인 SF 파라친에 들어갔다.
파라친은 유소년만 있는 팀인데
선수를 키워서 프로로 보내는 축구 아카데미였다.
팔로세비치는 베오그라드 유스 팀에 들어갔고, 2011년 콜업됐다.
그러나 1군팀엔 자리가 없었고, 3부리그 임대를 가게 됐다.
임대를 간 팀들에선 1년반동안 36경기 8골이라는 찮은 성적을 거뒀다.
2013년, 마침내 팀에서 자리를 잡게 됐다.
14/15시즌까지 주전으로 활약했다.
15/16시즌이 시작하기 전
그는 리그 상위팀 보이보디나로 한화 7.4억으로 이적했다.
팀에서 완벽한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4위에 공헌했다.
16/17시즌엔 활약을 인정받아 세르비아리그 베스트11에 선정됐고,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주장이 되기도 했다.
17/18 시즌엔 포르투갈 2부 아로카로 이적해서 무난하게 했다.
그후 포르투갈 1부의 나시오날로 이적했지만 백업으로 활약했다
18/19 시즌 종료 후, 포항의 오퍼를 받아 임대이적한다.
반시즌동안 16경기 5골 4도움이라는 괜찮은 성적을 냈다.
20시즌, 그는 미드필더임에도 득점 3위를 하고 22경기 14골 6도움이라는 미친 스탯을 찍었다.
시즌이 종료되기 전, 그는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을 보러 세르비아로 돌아갔다.
한편 대전 대구 서울이 팔로세비치를 두고 영입경쟁을 했다.
지방이 맘에 들지 않았던 팔로세비치는 서울행을 선택한다.
포항 시절의 미친 득점력을 기대한 서울팬들은 실망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술의 탓이 컸다.
공미가 주 포지션이던 팔로세비치가 기성용과 같은 자리인 3선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다.
팔로세비치는 안익수가 부임하며 예전의 득점력을 되찾앗다.
안익수 밑에서 팔로세비치는 10경기 6골을 달성한다.
22시즌에는 다시 3선으로 쓰였는데, 주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자신한테 맛지 않는 옷이라 그런지 부족한 장면을 많이 보여줬다.
일류첸코의 서울 이적에 공헌했다
이전부터 팔로세비치가 일류첸코에게 서울로 오라고 했으며
일류첸코가 서울로 간다고 했을 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실제로 둘의 가족끼리도 같이 놀 정도로 사이가 좋다.
23시즌에는 수비가담, 공격 전개를 맡는 완성형 미드필더 역할을 했다.
최종 성적은 35경기 4골 2도움
팔로세비치가 박동진의 라커룸자리에 sibal이라고 적어놨다가 참교육당했다고 한다.
2024시즌, 제시 린가드가 영입되며 팔로세비치의 주전 경쟁은 어두워졌다.
또한 한승규가 미친 폼을 보여주며 벤치 신세가 되었다.
이 때 자꾸 공을 끄는 경향을 보여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2024시즌 중반, 아들의 건강이 안좋아져 자국 세르비아로 돌아간다고 한다.
팔로세비치는 서울의 힘든 시기를 많이 버텨준 선수이기도 하다.
그가 어딜 가든 항상 응원하겠다.
댓글은 회원만 열람할 수 있습니다.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