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규가 이 글을 보면 좋겠다 :)
방금 한승규의 모든 유니폼을 하나하나 접어 넣었다.
7벌의 유니폼, 2008년부터 시작된 나와 FC 서울의 이야기에서 가장 빛났던 선수의 유니폼들.
가장 아름답지만 슬펐던 2020년, 우리에게 돌아온 벚꽃 같았던 2022년, 슬럼프였던 2023년, 그리고 다시 날개짓을 펴던 2024년
각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유니폼들 보면서 많은 감정이 교차했고 많은 기억들이 생생했다.
신기하게도 막 밉고 증오스럽거나 혐오스럽지는 않더라.
그냥 조금 돌아보는 시간을 오랜만에 갖게 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와중에 혹시 이 유니폼들이 상하지 않을까, 변색되지 않을까, 녹아서 눌러 붙지 않을까 하고
실리카겔을 하나하나 넣어놓고 판지로 마킹을 고정시키는 나.
이제는 아무 가치 없는 천 쪼가리들인데도, 누군가에게는 불태워 없애고 싶은 쓰레기인데도
소중하게 다루며 팔 생각도 전혀 들지 않는 내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유니폼 7벌, 그라운드를 누비는 승규의 사진 N개, 나와 찍었던 사진-친구들과 내 가족과 같은 사람과도 함께 찍은 사진들, 메시지와 함께 싸인된 트레이닝복들, 싸인 카드들, 굿즈들.
모두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한승규와 관련된 모든 기억들을 박스에 넣었다.
절대 버릴 수 없는 것들이기에 소중하게 하나하나 손상 안 가게 비닐에 싸서 박스에 넣어 놓고 멍하게 바라보니 많은 생각이 들더라.
'너도 후회 많이 될거다.'
애초에 오늘 아침 소식을 봤을 때 화가 나고 인간적인 실망을 했다기 보다는, 그냥 뭔가 그 알잖아, 틀리지 않는 불길한 느낌...
그렇기에 의외로 담담하게 정리하고 있는 것 같다.
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내가 5년 동안 보고 느낀 사람으로만 기억하는게 더 마음 편할 거 같으니까.
아니더라도 이제 내가 응원하고 사랑했던 선수로 바라 보기는 힘드니까.
2020년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마다 그 누구보다 큰 힘이 되어 준 사람, 축구 이외에도 것에 있어서도 나를 뜨겁게 동기부여 해주며 달리게 해준 사람.
FC 서울이라는 팀을 계속 응원할 수 있게 만들고 떠났음에도 평생 응원하리라 마음 먹게 만들었던 그 날.
2021년 잠시 떠나 있을 때도 감동을 준 사람.
2022년 돌아와서 환한 미소와 따뜻한 말들로 모두를 반겨준 기다렸던 벚꽃 같은 선수.
2023년 슬럼프 속에서도 언제나 웃는 얼굴로 지냈던 사람.
그리고 올해... 새로운 감독과 새로운 팀의 주축으로 빛났던, 그러나 이제 다시는 FC 서울의 엡블럼을 달 수 없게 된 사람.
내가 이 공놀이를 15년 넘게 보며 가장 뜨겁게 응원했고 가장 사랑했던 선수,
다시 이 팀의 유니폼을 입고 3년 동안 수호신과 가슴 벅차게 소통하며 울고 웃었던 선수의 마지막이...
이렇게 끝나니 참 미련도 많이 들지만
그 무엇보다 아쉬운 건
어떤 방법으로도, 무슨 일이 있어도
FC 서울 한승규의 이야기가 이렇게 영영 끝나 버린 것.
본인이 자초했고 본인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걸어 버린 것이지만
최소 2020년 그날 결심했던 그 말 때문에 평생을 저주할 수는 없을 듯 하다.
'저 선수는 어떤 커리어를 걸어도, 오늘이 FC 서울과 함께하는 마지막 날이지만...
그라운드에서 볼을 계속 차는 한 뜨거운 박수와 애정으로 응원하겠다.'
너가 '우리 선수'였기에 너무나 허망하지만 최소 이 모습들은 기억하고 싶다.
경기장에서 이 악물고 뛰고 누구보다도 경기에 집중해 헌신하고 누구보다도 기뻐하기도 슬퍼했던 한승규의 모습과,
팬들을 만날 때 언제나 미소 가득한 얼굴로 먼저 반겨주고 고마워하고 사소한 응원에도 누구보다 고마움을 표현하던 모습.
이것만큼은 내가 알던 한승규라 믿을테니, 언젠가 다시 그라운드에서 볼을 차게 될 그날이 있다면,
아니 평생을
구단과 감독님, 동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를 사랑해준 팬들에 준 상처를 기억하고 반성하기를 마지막으로 바래본다.
승규야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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