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챔 특집 글 1탄, 2013년 당시 광저우는 얼마나 강했을까?
강력했던 그 시절을 지켜본 우리가 모두가 아쉬워하고 그리워할 2013시즌 아챔 결승
당시에 결승 상대였던 광저우는 결승 진출 이전까지 대회에서 내내 압도적인 모습과 초호화 용병들이 엄청난 활약을 하던 기억이 날것이다
초화화 군단, 아시아의 맨시티, 역대 아시아 최강 팀중 하나.. 우리의 결승상대는 이전과는 다르게 다양한 수식어가 뒤따르고 이슈를 불러온 팀이라는 것을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과장이었을까 아니면 실체가 있는 두려움이었을까?
그럼 이제 당시에 광저우의 스쿼드를 보면서 당시에 광저우 선수진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살펴보자
먼저 그 언론에서 특히나 무시무시하다고 경계하고 강조하던 외국인 군단들의 합류이전의 커리어를 살펴보자
용병들을 소개에 하기에 앞서 비교를 쉽게 하기 위해 당시 k리그 합류이전부터 특급 선수로 평가받던 몰리나의 브라질 산투스 시절 기록을 먼저 얘기하면
성남에 합류하기전에 몰리나는 08 시즌 브라질 1부리그인 산투스에서 풀 시즌을 뛰면서
리그 경기만 32경기에서 6골 7도움의
활약으로 팀내 주전으로 핵심적인 선수로 활약했고 두번째 시즌은 두어달만 활약하면서 9경기에서 2골 1도움으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고 이후에 성남에 합류한다
현재도 광저우 소속이면서 중국으로 귀화한뒤 중국국대에서 데뷔전까지 치룬 엘케손
광저우에 합류전 그는 브라질 1부리그에서 활약하던 공격수 였다
합류 직전 세 시즌의 기록에서
각각 2010시즌 34경기 6골 8도움
2011시즌 35경기 8골 10도움
2012시즌 31경기 11골 1도움을 기록했고
2013시즌에 광저우에 합류한다
심지어 엘케손은 89년생으로 만 21세~23세 때 저런 엄청난 스탯을 브라질 1부리그에서 찍어낸 것이다. 당시 엘케손은 광저우의 4231 전술에서 원톱을 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몰리나의 전성기 조차도 엘케손의 성장기에 미치지 못할정도로 엄청난 기록이다
두번째 용병은 무리키
무리키는 당시 용병들 중에 가장 빨리 광저우에 합류한 선수다 2부리그 시절인 2010년 여름 중간에 합류한 선수로 역시 이전에 브라질 1부리그에서 활약하던 선수다
합류 직전 2시즌의 기록을 살펴보면
2009 시즌 31경기 9골 11도움
2010시즌은 몰리나처럼 개막후 두어달만 뛰다가 광저우에 합류했는데 7경기 4골 1도움을 기록하고 광저우에 합류한다
두시즌 기록만 보면 38경기 13골 12도움으로 3경기에 공격 포인트 2개를 기록한 셈이고 전성기 아드리아노가 서울에서 보여준 활약을 브라질 1부리그에서 보여준 셈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놀랐는가? 사실 얘네둘은 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광저우가 당시 축구선수 중 세계 주급 3위를 줄정도로 엄청난 연봉을 주면서 데려온 선수가 아직 남아있으니...
그 선수는 바로 아르헨티나의 다리오 콘카
셋중 나이가 제일 많은 83년생이며 위에 두 선수와 마찬가지로 합류직전 브라질 1부리그에서 활약하던 선수였고 포지션은 광저우에서 4231에서 2선의 중앙 공미를 맡았다
이 선수는 11년 여름에 광저우에 합류 했으며 합류직전 두 시즌의 스탯은 다음과 같다
2009시즌 36경기 7골 11도움
2010시즌 38경기 9골 19도움
2011시즌은 두어달만 뛰며 9경기 1골만 기록한채 다소 부진했지만
2010시즌 콘카는 브라질 1부리그에서 시즌 mvp를 수상하며 앞의 두선수와는 클라스가 다른 선수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여기에 아시아쿼터는 당시에 한국 국대 주전 센터백으로 자리매김하던 김영권이었을 정도로 말그대로 광저우는 초호화 용병들이 자리잡던 시기였다
쉽게 말하면 아시아쿼터제로 영입한 김영권을 제외하면 나머지 남미 3인방은 몰리나는 쨉도 안되는 어마어마한 선수들이 포진된 막강한 공격진을 지닌 팀이었다.
근데 재밌는 사실은 당시 결승전에 우리팀을 포함해서 선발 출전한 멤버들 22명 중에 세계 축구 3대리그에서 활약한 선수가 딱 한명있었는데 그 선수는 위의 용병들 중 그 누구도 아닌 의외의 선수였는데 그 선수는 바로...
당시랑 현재까지도 광저우의 주장을 맡고 있던 정즈 였다 3선에 더블볼란치에서 활약하던 선수로
프리미어리그에서 06/07 시즌 겨울 이적 시장에 중간에 임대로 영입되면서 반시즌간 12경기를 뛰며 1골 2도움 기록하는 활약을 보이며 로테이션으로 꽤나 쏠쏠하게 출전한 선수다 아마 당시 박지성 세대때 해축을 본 팬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선수다. 해당시즌에서 찰튼은 강등당하고 정즈의 임대도 그렇게 종료되면서 중국에 다시 복귀하는 듯 했지만 얼마 안가 바로 강등된 찰튼에 합류하며 주전으로 활약하며
첫시즌 42경기 7골 6도움을 기록하며 주전으로 뛰지만 다음시즌에서는 주전에 밀리고 그 다음 시즌은 셀틱으로 이적해 6개월간 잠시 기성용과 같은 팀에서 활약했다.
아마 중국 축구 역사상 맨시티에서 수년간 주전 풀백으로 뛴 순지하이 다음의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이며 현 중국국대 에이스인 우레이보다 아직 까지는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아디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팀인 레벤테와 세비야에 소속이 된적은 있으나 2군무대만 뛰면 공식전은 단 한경기도 뛰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당시 광저우를 용병빨의 팀이라고 얘기하며 용병에 대한 경계만을 했던 기억이 있지만 정즈가 보여주듯이 광저우는 결코 용병만 무서운 팀이 절대 아니었다
당시 광저우는 4231 전술을 썼는데
------------엘케손
무리키------콘카------가오린
--------정즈----황보원
순시앙--김영권--펑샤오팅--장린펑
-----------------정청
로 베스트 라인업을 구성했는데
참고로 황보원과 펑샤오팅은 k리그에서 나름 활약했던 경력도 있던 선수들이었고
장린펑은 소설에 가깝지만 라모스의 백업으로 레알마드리드 이적설까지 나온 선수다(당시 뭐 레알이랑 협력관계라는 말도 있기도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확실하진 않음)
어쨋든 2013년 당시 중국 A 대표팀 기록을 살펴보면
중국 골키퍼 중에서 가장 많은 a매치 경기를 소화한 선수가 광저우 주전인 정청
중국 센터백 중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가 광저우에서 주전인 펑샤오팅
중국 오른쪽 풀백 중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가 광저우에서 주전인 장린펑
중국 왼쪽 풀백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가 광저우에서 주전인 순시앙
중국 수미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가 광저우에서 주전이자 중국 국대 에이스인 정즈
중국 오른쪽 공격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가 광저우에서 주전인 가오린
그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황보원 빼고는 광저우에서 베스트 11에 있는 선수들은 전부 중국 국대 주전이라는 얘기고 거기에 심지어 한국 국대 주전인 김영권이랑 초화화 외국인들까지 고려하면 중국 국대 베스트보다 광저우가 더 세다는 얘기와 같다.
그리고 재밌는건 황보원 마저도 중국국대 였고 황보원을 중국국대에서 주전으로 밀어낸 선수는 광저우 벤치에 있던 선수라는 점이다.
중국 국대가 아무리 아시아 강호팀들한테 덜미를 잡히던 팀이라지만 아시아 레벨에서 그래도 중상위권, 10위권 안팎에 드는 팀의 주전이 총집합하고 초호화 외국인들 까지 더해진 스쿼드는 k리그 어떤 팀들에게 심지어 전성기 서울에게도 부담스러운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 남았따. 초보 감독이었던 독수리 최용수와 지략 대결을 펼칠 광저우의 수장은 누구였을까?
그 감독은 바로
이탈리아의 명장 마르첼로 리피였다.
2010년 비록 이탈리아 대표팀을 이끌고 조 최하위로 남아공 월드컵에서 탈락해 경질 당했지만
이전까지 그의 경력은 긴 설명이 필요없다
2006년 독일월드컵 우승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과 함께 3회 연속 결승 진출(결승 총 4회 진출)
세리에a 우승 5회
감독으로서 가장 명예로운 챔스와 월드컵을 모두 석권한 엄청난 커리어의 소유자였다
결론 : 당시에 광저우는 정말 역대급으로 강했던 팀이 맞고 우리도 당시에 역대급으로 강했던 스쿼드였던 건 사실이지만 감독으로보나 선수진으로 보나 광저우한테 밀릴 수 밖에 없던 스쿼드였다..
그러나 과연 그렇다고 해서 광저우한테 무조건 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을까?
그 이야기는 반응 좋으면 2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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