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알못의 축구 이야기 백3, 전술의 고전과 현대, 그리고 미래를 엿보기 (2)
(1)
https://fcseoulite.me/free/4035529
2.
백3의 예술: 카테나치오, 위대한 인테르
센터백 두 명 아래에 자물쇠 역할의 스위퍼를 두는 카테나치오라는 전술은 사실 1940년부터 존재했다(이에 대해서 리베로의 태아적 이미지와 카테나치오의 프로토 타입이 탄생한 과정이 궁금한 학구열이 높다 못해 궁금해서 밤이 없는 축구팬들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글인 https://m.blog.naver.com/throughpass0422/220604684808 를 참고할 것).
그리고 이를 발전시켜 1960년대 ac밀란(파울로 말디니의 아버지인 체사레 말디니가 리베로로 뛰면서 밀란에게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안겨준 시절)의 네레오 로코 감독이 있었고, 이러한 카테나치오들을 에레라 감독과 그가 이끈 인터밀란이 존재했다.
위의 그림이 바로 에레라 감독의 위대한 인테르이다. 에레라 감독은 당시 축구계에서 성행한 4-2-4 포메이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이탈리아어로 '자유인'이라는 뜻을 가진 리베로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3명의 수비수 뒤에 최종 수비수인 리베로를 배치한 1-3-3-3 포메이션으로 강력한 수비 축구를 선보였다. 당시 리베로로 중용된 아르만도 피치는 뛰어난 시야와 경기 운영으로 카테나치오의 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글에서 당장 보려는 선수는 아르만도 피치가 아니다.
피치에서 왼쪽 끝으로 가보라. 1.에서 언급한 파케티가 있다. 이 선수는 분명 풀백에 있다. 그러나 이 선수가 움직이는 범위는 하프라인 아래에 그치지 않았다. 기회가 있으면 직접 공을 몰고, 혹은 미드필더의 명령을 듣고 하프라인 위로 올라가 공격을 돕고, 때론 직접 마무리를 짓기도 했다. 그리고 오른쪽 윙어였던 쟈이르(야일이라 표기된)에게는 적극적인 수비가담을 요구하면서 50년대부터 동시대까지 활동하던 디 스테파노에게서 확인한, 요즘인 2020년대 축구에 와서까지도 자주 볼 수 있는 공격수의 수비가담을 확인할 수 있다.*
리베로(현대적인 축구에선 사장된 스위퍼에 가까운 리베로)와 오버래핑 풀백, 공격수의 수비가담까지 이 파격적인, 당시에는 최첨단의 전술적 요소들은 에레라 감독 하에 시너지를 일으켜 수비적인 축구의 절정을 보여줬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위대한 인테르라 불리게 된 건 단순한 전술적 가치만 있어서가 아니다. 성적 없는 위대한 전술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964년, 인터밀란은 1960년대 당시 챔피언스 리그의 주도권은 디 스테파노- 페렌치 푸스카스라는 가공할만한 공격 듀오를 보유한, 하얀 저승사자 군단이라 불린 레알 마드리드와 결승에서 조우해 우승을 다퉜고, 마졸라의 2골, 밀라니의 연속골로 3-1 완승을 하”**면서 이를 증명했다. 이러한 인터 밀란의 전술은 이탈리아를 전술의 나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카테나치오는 지금에 와서도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전술로 남는 것을 넘어, 비교적 최근까지 이를 응용한 전술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큰일이다. 슬슬 글을 쓰기가 귀찮아진다. 그냥 한 번 써볼까 하고 시작한 글이라 목적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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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삼 느끼지만 현대를 사는 축구팬들에겐 풀백의 오버래핑이 무엇이 이상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을 충격이라 느끼기 위해선 근대축구에서 사이드백이라는 이름을 두고 풀백이라는 이름이라 불리게 됐는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선 조금만 검색을 하면 나올 테니 노력하길 바란다. 이 글은 애당초 나무위키나 발췌 자료로 사용하는 저급한 글이다. 젠장.
** :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284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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