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부의 추억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동네에는 나름 이름 난 고등학교 축구부가 있었음.
로비에 들어서면 대통령배부터 왠만한 대회 트로피는 다 전시되어 있었으니.
가파른 산 중턱? 꼭대기?에 있는 학교였는데,
매일 아침이면 축구부 형들이 그 산을 뛰어 올라갔다가 숨 몰아 쉬며 걸어 내려오고
다시 뛰어올라가길 반복하는 걸 볼 수 있었지. 허벅지 굵기 보고 겁나 멋있다고 생각했음.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축구부 자체 연습경기나 다른 학교랑 하는 친선 겸 평가경기를 보러 종종 갔었는데.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코치는 전반 내내 욕지거리 뿐
그러다 휘슬이 울리면 물고 있던 담배를 끄고,
구령대 아래 개구멍 같은 창고문을 열어 야구방망이를 꺼낸다.
전반 뛰었던 선수들은 휘슬 울리기가 무섭게 우르르 모래먼지 일으키면서 달려와
플라스틱 의자 앞에 주루룩 줄지어 엎드림ㅋㅋㅋㅋㅋ
방망이 내리치는 횟수가 분데스리가 평점시스템.
얼마나 맞아왔는지, 애들 맷집이 좋아서, 겁나 아플 것 같은데도 무덤덤함.
평점 매기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둥글게 모이면 비로소 전술 얘기를 꺼내는데
대체로 뻔하고 두루뭉술한 이야기.
그래서인지 나는 미국월드컵 독일전 보면서
전반 끝나고 겁나 맞았나보다 싶었음. 특히 고정운ㅋㅋ
친구 부모님이 그 학교 근처에서 목욕탕을 운영해서 저녁에 공짜로 목욕할 수 있었는데
축구부 형들 단체로 들어오는 것 보면 애달팠음. 엉덩이에 그라데이션이 ㅎㄷㄷ
그것 보고 나는 축구선수는 절대 안되야지 결심했다.
야만의 시대에서 성장한 선수들의 실패, 데뷔, 은퇴를 지켜봐서인가
90년대 리그 선수들에 대해 추억할 때 리스펙을 바닥에 깔고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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