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의 신(Carnage; 2011)
작은 영화다. 영화 내내 거실 밖으로 나가는 일도 거의 없고, Carnage(대학살) 이름 값도 못하게 액션 장면, 잔인한 장면 하나 없이 애들 부모들의 교양없는 말싸움만 가지고 80분을 끌어간다.
원작이 연극인 만큼, 영화보다는 다분히 연극적인 방식으로만 끌어간다. 묘하게 과장되어있는 연기도 그렇고, 배우들이 소리 지르거나 화 낼때 카메라로 배우들이 관객을 보고 말하는 것 처럼 구도를 잡기도 한다. 영화 일부 장면을 제외하면 거의 러닝타임과 작중 시간이 동일하게 진행되면서, 감정 변화나 갈등 상황을 실시간으로 고조시키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연극의 그것과 꽤 유사하다.
영화는 교양으로 포장된 사람들의 가식을 벗기는데 집중한다. 아이들의 싸움으로부터 시작된 어른들의 작은 논쟁이, 영화가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등장인물들의 상황, 성격 등과 맞물려서 남편이 버린 햄스터까지 물고 늘어지는, 구질구질하고 유치한 싸움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백미.
인상 깊은 장면은 앨런(크리스토프 왈츠)의 핸드폰을 그의 와이프(케이트 윈슬렛)가 어항 속으로 집어넣어버리는 부분.
이 장면은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핸드폰으로 구질구질한 커뮤니케이션을 최대한 피하던 앨런을 강제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중심으로 집어 넣어버리는 영리한 연출이다. 의사 소통을 위한 도구가 의사 소통을 피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도 재밌는데, 자사의 약물로 피해 본 사람들의 소송을 최대한 다른 쪽으로 돌려 해결하라는 내용의 통화는, 이는 맥락상 앨런의 태도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80분 간의 대학살극이 끝난건 민낯을 감추고 있던 가식과 교양 뿐이다. 부모들이 자신의 가면을 신나게 까부수고 있는 동안에도, 오늘도 마이클이 내버린 햄스터는 공원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으며, 아이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귀찮아서 옛날 글 한 번 수정해서 우려먹...으려고 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필력이 구려서 많이 고침.
추천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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