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 역사상 최악의 시즌: 늦겨울, 혹은 초봄 - 2020 회고록(10, 終)
It's hard to make sense. Feels as if I'm sensing you through a lens
이해가 되지 않아요, 멀리서 렌즈를 통해 당신을 쳐다보는 것 같아요.
If someone else comes I'll just sit here listening to the drums
만약 어떤 이가 와도, 당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드럼을 치고,
난 여기서 그 소리를 듣고 있겠죠.
Previously I never called it solitude...
전엔 이럴 때 외로움을 느낀 적은 없었죠...
- Mew, <Comforting Sounds>
10월 31일, 합정역.
“안녕하세요. 저 혹시 꽃집에 국화 있나요?”
“아 네 잠시만요!”
국화를 포장하던 직원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근데 무슨 일 있나봐요...? 오늘 유난히 국화를 찾는 사람들이 많네요.”
“오늘 할로윈인데 할로윈 관련 물품보다 국화를 더 많이들 찾아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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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전, 10월 30일 오전.
평소랑 다름없이 펨코 국축갤을 돌려보던 나는 어떤 질문글 하나를 보게 된다.
“혹시 김남춘 어떤 선수였는지 알 수 있음?”
‘응? 혹시 김남춘 다른 팀으로 이적하나..?’ 나는 이에 김남춘을 평가하는 댓글을 달았다.
“이번 시즌 서울 주전 수비수였음. 쓰리백 때는 정신 없이 털리다가 포백 돌아가니까 좀 괜찮더라.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실망스러운 시즌이었음.”
이렇게 다소 냉정한 댓글을 달 때에는 몰랐다. 이 질문글이 단순한 질문글이 아니었다는 걸.
이것이 김남춘에게 건네는 마지막 말이었다면 좀 더 따뜻한 말을 해줘야했던 걸.
본인의 생일을 맞아 주세종은 이곳저곳에서 축하 메세지를 받고 있던 와중이었다.
이번 시즌 폼이 전체적으로 좋지 못해 마음 고생이 심했던 주세종은 시즌을 정리하고 다음 커리어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러 동료들에게 축하 메세지를 받던 중, 누구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 문장은 심상치 않았다.
“세종아... 남춘이가...”
...
“남추이 행복해야된다.”
“난 너가 참 좋다! 맛난 거 먹으러 가자.”
...
2020년 10월 30일 13시 46분.
우리의 원클럽맨, 김남춘의 죽음을 확인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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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서울월드컵경기장.
“꿈에 그리던 구단에 들어오게 되어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서울의 루키 김남춘은 대기만사성이었다. 20살의 어린 나이에 대전 시티즌에 입단 테스트를 봤으나 실력의 한계에 무릎을 꿇고, 대학교 무대로 돌아가려 했으나 이미 모든 대학교 축구부의 입학 절차가 마무리되어 1년 간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그랬던 그를 받아준 건 광운대학교. 1년 간 그는 연습생 신분으로 광운대학교와 훈련을 같이 한 뒤, 1년 후 정식 절차를 거쳐 대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4년 간 대학 리그 정상급 수비수로 활약하게 되고, 2013년 드래프트로 서울에 입단하게 된다.
이미 김남춘의 나이 25살, 그럼에도 프로 리그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2013년 그는 리그 0경기 출장, ACL과 FA컵 경기에서 한 경기씩 출장 기록을 세우고 시즌을 마친다.
그럼에도 김남춘은 기다렸다. 그리고 항상 행복했다. 그의 트위터 글에서처럼 말이다.
그렇게 김남춘은 2년을 기다린 끝에 2014년부터 서서히 로테이션으로 기회를 잡기 시작하고, 2016 시즌 중반 주전으로 올라오기 시작해 서울의 마지막 리그 우승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된다.
상무 상주 기간에도 준주전으로 활약한 김남춘은 전역 후 장기간 부상을 앓다가 2019시즌 다시 복귀했으며, 2020시즌부터는 최용수의 스리백이든 김호영의 포백이든 간에 가장 먼저 선택받는 수비진의 중심 선수가 되었다.
김남춘은 정말 누구보다도 밝은 사나이였다.
오래된 서울팬이라면 그의 활달한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 것이다. 후배들은 그를 따르고, 선배들은 그를 귀여워했다.
특히 4살 위 형인 박주영과는 콤비 수준으로 사석에서도 매일 붙어있다시피 했다. 둘다 맛집 찾아가는 걸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참 죽이 잘 맞는 사이였다.
그래서 더 믿기지 않는 죽음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유족이 된 가족들도 정확한 이유를 몰랐다.
가장 잔혹한 사실은, 당장 떠난 동료를 뒤로 하고 내일 있을 마지막 경기를 치뤄야 한다는 것.
상대팀을 포함해 다른 팀들의 잔류가 걸려있는 리그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에 이를 미룰 수는 없었다. 선수들은 참아내야 한다. 그것이 프로다.
늘 항상 같은 설레임으로 경기장에 도착할 때마다 항상 듣는 Mew의 ‘Comforting Sounds’를 들으며 올라가던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 에스컬레이터.
그러나 오늘은 내 손에 다른 것들이 쥐어져 있었다. 오른손에는 국화, 왼손에는 김남춘이 좋아했다는 아몬드 빼빼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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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 앞에서는 모두가 한 마음이었다.
포항에서,
울산에서,
전주에서,
춘천에서,
수원에서.
“... 이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김남춘 선수를 추모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바이러스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고 나서 오랜만의 직관.
그 사이에 달라진 경기장 풍경의 괴리감만큼이나
직관을 손 꼽아 기다렸던 그 마음의 크기만큼이나
허전했던 빈자리 하나.
상암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던 분위기가 감돌았다.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모두들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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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경기를 뛰고 있는 게 맞는건가?’
'아니, 경기를 뛰는 게 맞나?'
퉁퉁 부운 선수들의 얼굴에는 슬픔보다 더한 황망함이 묻어 있었다.
선수들은 김남춘을 위해 승리가 필요했다. 선수들은 멘탈이 무너진 와중에도 끝까지 경기에 임했다. 그 누구도 허투루 뛰지 않았다. 선수들은 정말 90분 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너무나도 열심히 뛰었다.
특히 상대팀 출신의 김진야는 정말 특유의 강철 체력과 투혼까지 더해 경기장 이곳 저곳을 미친듯이 뛰어다닌다.
도전을 찾아 서울로 온 그에게는 이전 팀과의 이런 경기는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김진야는 마치 성골 유스처럼 서울만을 위해서 뛰었다.
전반전, 아길라르의 행운의 선제골이 터졌다.
그리고 이를 따라가지 못한 서울은 결국 0-1 패배로 2020 시즌의 마지막 K리그 경기를 마쳤다.
경기장은 마치 폭발하기 직전 들끓는 화산 같았다.
양팀 선수들이 두번 크게 충돌했다. 전염병의 창궐로 원정팀 응원이 금지되었으나, 이를 무시한 상대팀 팬들의 환호가 경기장이 떠나가라 들린다. 상대팀이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치키 않는다는 점에 분노로 가득찼던 경기장.
경기는 끝났다. 서울 선수들이 센터라인 원에 모여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려던 순간.
외침이 들렸다.
김남춘!
김남춘!
김남춘!
선수들은 김남춘을 부르는 서포터즈들의 외침을 듣자마자 겨우내 붙잡고 있던 정신을 완전히 놓고, 정말 경기장이 떠나가라 울었다. 정말 모든 선수들이 울었다.
불과 어제까지 같이 웃고 떠들던 동료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슬픔.
세상을 떠나기 전 우리가 그를 조금 더 사랑해주고 보살펴줄걸 하는 후회.
이 모든 감정이 눈물과 함께 뒤섞여 상암벌의 잔디를 적셨다.
김남춘의 이름이 울려펴진 뒤,
올 시즌 서울의 주인공 임대생 한승규가 벤치에 있던 김남춘의 유니폼을 집어들어 N석 서포터즈 앞으로 간다.
한승규는 울음을 머금고 유니폼을 골대 앞에 놓았다. 그리고 이어 주장 완장을 들고 다가오던 한 사람.
주인 잃은 유니폼에 주장 완장을 건네준 이는
고인과 가장 친한 동료였던 박주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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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11월 6일, GS 챔피언스 파크.
선수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양한빈과 김원식, 그리고 주세종은 시즌 뒤로 미뤄놓은 웨딩 마치를 치루며 새신랑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오스마르는 훈련장에서 일주일 사이 김남춘의 자리가 비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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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ye Amigo!
안녕 친구!
Today was the day I came back to rutine and I saw your empty spot.
오늘은 내가 일상으로 돌아온 날인데, 너의 빈자리를 봤어.
All of a sudden everything came back and hit me again, the chills, the goosbumps, the questions unanswered...
그 때 갑자기 모든 기억들이 돌아와 나를 치고 가네. 그 냉기, 소름이 돋는, 답이 없는 그 질문들...
I’ve realized this grief will last forever.
그 때 깨달았어. 이 슬픔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는 걸.
I’ve realized that friendships have different ways of connection.
우정이라는 건 모두들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깨달았어.
Sometimes no talk needed, no spending time together needed but also a friend is someone you make eye contact with and both of you draw a smile at each other's face.
친구라는 건 때로는 대화가 필요없고 함께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이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미소를 짓게 만드는 존재이지.
I will call you FRIEND forever.
나는 영원히 너를 친구라고 부를거야.
Nothing will reconfort me but I can say that the last thing I did was hugging you.
아마 그 어떤 것도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건 없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한 건 너를 껴안았던 것임은 말할 수 있어.
I wish there would be an other way of learning but you helped me appreciate the small things, a smile at someone, a coffee with a friend, a hug of my kids, a holding hands with my wife, a text to a distance friend.
Life goes on and I'm sure yours too, I hope you are in peace and watching over your loved one, the rest of us will continue with a knot in our hearts.
인생은 계속될 것이고 그 곳에서 너의 인생도 계속 될거라고 믿어. 너가 평화로운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기를 바랄게. 이제 남은 우리들은 다 같이 함께하는 마음으로 계속 살아갈테니까.
Always remembered!
- 오스마르, 인스타그램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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