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팬의 펜] 패륜놀이 고찰: 연고이전과 이른바 패륜에 대하여
Seoulite1.
연고이전과 이른바 "패륜"에 대해 내 나름대로 생각해 봤어. 애초에 축구팬이 왜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 하는지 어처구니가 없지만 (내가 덕질하려고 응원하지 변호하려고 응원하는 건 아닌데). 어쨌든, 연고이전을 "패륜"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2가지 명제를 암묵적으로 전제하는데, 그 전제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편리하게 무시하는 듯 해.
2.
첫 번째 전제는 "안양 LG 치타스 이전에는 축구팬에게 연고의식이 없다"야. 이게 성립해야 FC서울이 서울에서 안양으로 쫓겨난 건 용서할 수 있어도, 안양에서 서울로 간 것은 용서할 수 없게 되니까. 그런데 애초에 "연고의식" 같은 의식의 영역에 있는 것을 제3자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도 당시 LG 치타스를 응원하던 서울팬들에게 연고의식이 있었다 없었다 확인하기도 어렵고 그 유무를 딱 잘라 말할 수도 없어. 애초에 "패륜"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근거가 되는 명제 자체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개념에 기초한다는 것은 큰 헛점이지.
3.
두 번째 전제는 "안양 LG 치타스의 역사를 FC서울의 역사로 인정하는 것은 연고이전을 찬성하는 것이다"야. 사실상 "패륜"을 외치는 녀석들이 대의명분이랍시고 내세우는 점이 이거인 듯 해. 적어도 내가 관찰한 FC서울 내에 "2004년 창단"을 지지하는 소모임들도 이 전제에 사실상 찬동하는 것이고. 그런데 이 전제는 첫 번째보다도 문제점이 많아.
우선, 읽자마자 느꼈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 문장의 앞 부분(안양 LG 치타스의 역사를 FC서울의 역사로 인정하는 것)은 뒷 부분(연고이전을 찬성하는 것)과는 엄밀하게 따지면 논리적으로 무관해.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인거지. 여기 있는 서울팬 아무나 붙잡고 "FC서울이 2019년에 연고이전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세요?"라고 물어봐 봐. 분탕이나 치러온 사람 아니면 당연히 전부 반대하겠지. FC서울이 안양에서 서울로 돌아온 것을 굳이 "연고복귀"라고 하는 사람들은 "연고이전"에 찬성해서가 아니라 "서울 공동화 정책의 부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인데, "패륜"을 외치는 녀석들은 뒷 부분만 잘라버리고 그 사람들이 마치 연고이전을 찬성하는 사람들인 것마냥 생각하는거지. 실상은 그런 사람 한 명도 없는데 말이야. 허수아비 세워놓고 열심히 때리면서 좋다고 웃고 있는 꼴인거야.
둘째, 프로축구의 기록과 통계에 "어떤 가치"가 개입되어서 임의적으로 조작되는 것은 가급적 지양되어야 해. 승점 단 1점을 삭감하더라도, 임의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확립된 규정과 절차에 의해서만 이뤄져야 하고 오직 그것에 의해서만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기록과 통계가 유지되어야 해. 그래야 말 그대로 "연맹전(league)"이 성립되는 거지, 마음에 안 든다고 흑역사를 임의적으로 넣고 빼거나 지우면 그건 기록과 통계의 의의를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행위야. 그런데 연고이전 반대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특정 역사를 넣고 빼라는 것은 이것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고, 리그의 기록과 통계 원칙에 좋지 않은 선례만 남길 뿐이지.
셋째, 38년 구단사에서 8년 차지하는 안양 시절 지우는 건 연고이전 재발 방지랑 아무 상관 없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에서 "패륜"을 외치는 녀석들의 사라진 논리를 비슷하게나마 구현할 수 있는 건: '아, 우리가 연고이전하면 역사가 지워지는구나. 앞으로 연고이전하지 말아야겠다.ㅇㅇ'라고 구단이 뼈져리게 반성할 것이기 때문에 연고이전을 하지 않는다. 이 정도? 근데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냐? 연고이전이 애들 장난이야? 고작 역사 지워지는 게 두렵다는 이유로 연고이전을 안 할거라는 생각이라면 그건 너무 순진한 거 아닌가? "프로"구단이라면 연고이전이라는 행위로 인해 구단의 존속에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면 연고이전을 안 하려고 하겠지. 그런데 "역사 삭제"가 "구단의 존속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는 발상은 너무 단순하잖아? 예전에 중국 슈퍼리그에서 연고이전하면 구단 해체시킨다는 규정 때려박는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야.
4.
바로 이 지점에서 "패륜"이라고 외치는 녀석들이 사실은 미래의 연고이전 재발 방지에 의외로 도움이 안 되는 존재들인거야. 그들이 "패륜"이랍시고 비판하는 존재는 실체가 없어. 그리고 그들이 "패륜"이라고 외치는 행위를 통해서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상태도 없어. 몇몇 사람들은 역사삭제를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상태라고 내세우기도 하는데 그건 기록과 통계의 원칙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행위인 것이고, 애초에 서울 공동화 정책의 피해를 입었던 FC서울이 그걸 따를 필요도 없고. 어떤 사람들은 그러니까 FC서울이 강등되길 원한다고 하더라고. 근데 그건 리그 성적이 결정할 문제지, 자기들이 "패륜"이라고 외친다고 우리 경기력이 저하되는 것도 아니잖아? 오히려 "패륜"이라고 외치는 녀석들 때문에 서울팬들이 사실은 연고이전에 반대하더라도 반대하는 편에 서기 힘들게 되는 거야. 이미 "패륜"이라고 외치는 녀석들이 "서울팬=연고이전에 찬성하는 사람"이라고 선을 그어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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