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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사는 결국 야생으로 완성된다.

백마도사고명진 title: No.4 김남춘백마도사고명진 1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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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fcseoulite.me/free/5859177 복사

저번에는 미드필더를 마법사에 비유한 글을 썼다. 이런 식으로 거리가 있어 보여도 공통된 애트리뷰트를 가지고 있는 관계를 파악해나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잘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엔 공격수와 전사에 대해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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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열면서


미드필더는 마법사로 은유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저번 글을 열면서 썼다. 그러나 전사라는 개념은 축구선수들에게 전방위적으로 묘사되지, 어느 한 포지션에 좁혀져 있지는 않다. 때문에 이번 주제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드래곤 퀘스트를 최근에 끝낸 뒤 이 글을 쓰고 싶은 욕구 그리고 전사와 공격수에 대한 공통 분모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의 핵심인 야생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짐승적인 면에 도달했다.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에서 설명하는 전사는 이전의 마법사와 같이 RPG(주로 드래곤퀘스트)에서 등장하는 직업군에 한정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전사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범위가 마법사에 비해 훨씬 넓기 때문이다. 마법이라는 기술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 마법사에 비해 전사의 전(戰)은 아이덴티티라고 하기엔 포괄적이다. 싸운다는 의미의 戰은 결국 RPG에서 보일 수 밖에 없는 양상이고 이건 전 직업군을 가리지 않고 겪어야 하는 시퀀스다. 때문에 전사의 이미지를 RPG의 특수 직업군과 그 원형으로 좁힐 필요가 있다.


(넓은 전사의 범위를 표현해주는 굳건이. 사람들은 훈련소에 가는 순간 사회에서 갖던 직업들을 거세당한 채 전사가 된다. RPG에서의 전사는 거세당하는 모습이 아니므로 두 의미는 상충된다.)


1. 용사와는 다르다 용사와는


앞서 제시했지만 전사라는 단어는 그냥 쓰기에 너무 넓다. 때문에 원하는 의미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RPG에서 전사라는 직업이 수행하는 역할을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파티플레이가 중요시되는 RPG에서는 나름의 전술과 포지션 분배가 필요하다.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누구는 팀을 보조해주는, 누구는 상대의 진열을 망치는, 누구는 상황을 보는, 누구는 결정적인 카드가 되는 등. 파티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리턴을 극대화하려는 효율을 보기 위해서 포지션 분배는 필수인 것이다.

파티 플레이에서 전사는 보통 선봉대장을 맡는다. 육체와 체력을 베이스로 중장비를 두른 채 상대의 전역에 돌진하고, 이에 상대는 전사를 막기 위해 전사에게 신경이 쏠리며 전열이 흐트러진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함으로 적군은 전열을 재정비하는데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아군은 압박 받는 일 없이 결정적인 수를 전개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힘을 베이스로 처음부터 초전박살을 낼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정상적인 전사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 힘은 파티에게 무조건 도움이 될 수 있다. 드래곤퀘스트에서 전사가 가진 역할 역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강한 전사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베르세르크』의 가츠. 마법사가 전황을 정리하기 전까지 시간을 벌어주고 혼자서 결정타를 날리기도 한다.)


전사의 이러한 역할은 흡사 영웅을 맡는 용사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용사와는 다르다. 용사의 역할은 다음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전사가 만약 전방에서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이라면 용사는 그보다는 후순위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용사란 전사와 마법사 그 사이에 있는 영웅적인 면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물론 전사가 영웅이 될 수 있기도 하고 영웅이 전사가 될 수 있기도 하다. 세상은 게임이 아니고, 심지어 게임 내에서도 이러한 포지션 파괴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다루는 전사는 용사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전사이기 위해서 무조건 용사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 전사의 야생적인 면


보통 전사는 괴력을 가진 이들로 묘사되곤 한다. 이러한 묘사는 최근이 아닌 예전부터 이뤄진 일이다. 다양한 고대 전승이나 영웅설화, 혹은 신화 속의 신까지 괴력은 숭배되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괴력은 힘을 다소 직관적으로, 묘사하기 쉽게 변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라던지. 그럼 잠시 오래된 시간을 꺼내보자.

한국사를 배웠다면 원시 종교에서 자연물과 자연현상을 숭배했던 시기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모두 알 것이다. 대충 신석기 시절부터 있었으니. 어림잡아도 청동기인 기원전 2333년보다는 오래 됐다.

자연을 숭배할 때 인간들이 갖는 마음은 해명되지 않은 미지에 대한 공포, 그리고 그 공포를 힘으로 환원하여 소유하고 싶어한 욕망이 혼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호랑이를 숭배하고 곰을 숭배하고 가을이면 힘들게 지은 움막을 멀리 날려버린 태풍을 숭배하고 두려워하며 종교를 만들어왔다. 

다시 전사로 돌아가보자. 전사는 흔히 힘을 가진 이로 묘사된다 했다. 그리고 그 힘의 원형은 상당히 자연들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렇다면 전사는, 적어도 괴력을 가진 전사는 야생적이다. 남성중심사회로 역사를 만들어온 이들의 야생. 전사에게 야성적인 면은 현대에 와서 아예 특성적인 면으로까지 분류되곤 한다. 전사에 대한 야성, 마초이즘한 이미지를 묘사할 때 흔히 가져오는 오크가 있다.


(워크래프트의 힘과 야생적인 면을 극대화한 종족 오크.)


결국 전사는 힘으로 파티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다. 그리고 그 힘은 야생적이다.

 

3. 득점은 기술이 뒷받침된 야성이다


축구로 가보자. 득점력이 있는 공격수는 언제나 우수한 자원으로 취급을 받는다. 근대축구가 정립된지 100년이 넘었다 해도 결국 점수를 얻어내야 승리를 할 수 있는 스포츠라는 속성에 있어 골을 넣는다는 건 어떤 요소(선제골이건, 역전골이건 만회골이건)로 발현되건 플러스적인 요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은퇴를 한 뒤에도 이름이 남아있는 공격수들 중에서 득점력이 없는 공격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여기에 있다. 축구는 결국 득점으로 귀결된다. 때문에 득점을 할 수 있는 팀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공격수인 경우는 드물지 않다.


(현역시절에는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은퇴 이후에는 축구의 신, 브라질에서는 국보로 불리기까지 하는 펠레. 그의 득점기록은 전설이 되었다.)


득점력이 있는 공격수가 우수한 자원이 된다는 건 동시에 득점력이 있는 공격수가 회귀하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만약 득점력이 되는 공격수의 공급이 많이 있었더라면 공격수의 가치는 지금에 비해 절하됐을 것이다. 1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다소 보수적인) 스포츠인 축구는 세월만큼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발전해왔다. 전술 같은 내적인 면 뿐 아니라, 체계적인 훈련, 교육, 의료시스템 등에서도 발전을 보여왔다. 그 결과 축구는 과거보다 정교해졌고 기술적이게 되었다. 단순하게 돼지 방광에 바람을 넣어 만든 공보다 가벼워진 축구공, 포지션마다 다르게 분류되는 축구화, 이들의 능력을 최대화하기 위한 포지셔닝 등.

그러나 이렇게 정교해진 축구, 발전해온 축구임에도 어디서나 공격수나 득점력 빈곤에 시달린다는 말은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내가 축구를 좋아서 처음 보기 시작한 2010년대 초반에도, 세리에a가 최강 리그였던 8090년대에도, 과거에도, 그리고 요즘에 와서도. 득점력이 있는 공격수는 빅클럽이 거액을 지불해서라도 사오기까지 한다. 기술로 커버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는 것처럼. 잠시 스포츠에서 거리를 두고 예체능적인 영역으로 가보자.

명말청초 시절 활동한 중국의 화가 석도는 자신의 화집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예술가에게 있어 감성은 늘 먼저 선행되고, 이성은 늘 후행된다."


어떤 기술이 있더라도 결국 감성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예술이 발현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한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예술에서 예체능으로, 다시 스포츠로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이 말을 가진 채 축구로 가져와보자. 축구는 기술이 필요하다. 기술이 없는 이상 축구란 극단적으로는 동네 공터에서 아기가 혼자 고무 풍선을 차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축구가 완성될 수 없다. 이건 축구 뿐 아니라 스포츠 전반적으로 통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기술 만으로 스포츠가 완성됐다면 우리는 약팀을 응원하지 않았겠다. 또 세계 클럽들 중 극소수를 제외하면 전방위적으로 스포츠가 살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스포츠(프로레슬링을 제외하면)를 각본이 없는 드라마라 상투적인 표현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결과로 마무리되는 축구서 감성의 압축은 무엇일까. 득점이다. 이 감성은 기술로 커버할 수 있는데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감성은 자연적, 야생적이라 할 수 있다. 괜히 타고난 골잡이라는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다. 타고났다는 말이 가진 자연성을 생각하면 더더욱. 고로 이런 야생을 발현하는 주체인 "득점력이 있는 공격수"는 야생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포츠용품을 제작하는 기업인 아디다스는 이러한 이미지를 차용하여 프레데터(포식자)라는 축구화를 만들기도 했다.


(아디다스의 프레데터, 포식자는 약육강식이라는 자연구조에 속해있다.)


4. 마치며- 야생하지 않는 부분과의 조화


그러나 힘을 가진 이들이 아둔하면 그 힘은 무용지물이다. 아무리 힘이 강하다 한들 해야 할 때 하지 않아서 파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는 귀축이나 다름없다. 야생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더라도 피아식별을 할 줄 알고 타자를 위해 힘을 쓸 수 있을 때 전사는 전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힘을 가진 이에게 필연적으로 부여된 책임이다.


(스파이더맨인 피터파커에게 벤 파커가 남긴 말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이 말은 피터 파커의 행동을 결정하는 좌우명이 된다.)


공격수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득점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팀이 요구할 때 득점을 하지 않고(못하고), 팀을 위한 전술에 맞는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 공격수는 결국 팀원들에게, 나아가 팀 자체에게 버림을 받는 환경에 처하게 된다. 득점력이 아깝지 않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득점력은 야생적인 면이다. 자연적으로 타고난 만큼 자연적이기에 환경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 거기에 반자연, 그러니까 문명이라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시간이 긴 인간이기에 야생성을 언제든 발현할 수 있게 갈고 닦지 않는다면, 팀에게 그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 야생성이라는 건 쉽게 휘발될 수 있다. 그러니까 방심하면 훅 가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잃은 삼손처럼. 공격수는?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아자르처럼.

야생하지 않는 부분을 위해 야생성이 존재하지 않는 공격수는 결국 야생하지 않는 부분에 점령당하는 야생, 동물원이 된다.

 

(들릴라에게 방심하여 약점을 노출한 뒤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잃은 삼손)



-----

 

시간 없는 분들을 위한 4줄 요약

 

1) 전사는 전위다, 용사가 아니다

2) 전사의 힘은 야생적이다

3) 공격수의 득점은 타고났다

4) 타고났어도 나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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