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억하는 김남춘 선수
요즘 FC서울이 실점하는 상황에서 수비진들의 모습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 집중력도 없고 끈기도 없고 뭔가 아쉽네 ‘
그리고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 김남춘 선수가 있었다면… ‘
우리가 사랑하고 응원하는 김남춘 선수를 잊지 않기 위해서
김남춘 선수의 일대기와 장점에 대해서 글을 쓴다.
# 일대기
대전시티즌으로 합류 할 뻔 했던 김남춘 선수는 한계를 느껴고
광운대학교 축구부로 입단을 하게 된다.
광운대 주장완정을 차고 경기를 뛴 김남춘 선수는 인정받고
자유 선발 선수로 FC서울에 입단 하게 된다.
2014년 8월 16일 , 인천Utd 전에서 프로 데뷔를 하게 된다.
이후 3백과 4백으로 바뀔 때 마다 자리가 불안해졌고
백업 요원으로 출전하는 경우가 많아졌었다.
2016년 시즌이 끝나고 상주상무 축구단으로 군 입대를 한다.
전역 후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부상까지 당하는 악재가 겹치고
2020년도에도 1라운드 부터 부상으로 자리를 이탈했지만
김호영 체제에서는 부활한 모습을 보였었다.
누구보다 서울을 사랑했고, 서울에 애정을 주는 선수였었다.
부상때문에 아쉬웠고, 부진하는 모습에 아쉬웠지만
마지막 시즌 보여준 ‘ 춘디치 ‘ 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김남춘 선수의 장점
# 활동량
김남춘 선수의 활동량은 정말 좋았다.
황선홍 시절의 4백에서 오스마르-곽태휘 조합의 단점을
해결해준 선수가 김남춘 선수였다.
당시 오스마르 선수를 올려서 기용하고 김남춘 선수가
곽태휘 선수의 짝으로 낙점 받았었는데,
곽태휘 선수의 느린발과 압박 부족을 해결해준 선수였다.
부상이 빈번했지만, 활동량과 압박 부분에서는 꾸준히 좋았다.
# 멀티포지션
상주상무 시절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봤었다.
3백 시절에 유사 시 4백처럼 운영 될 때 김남춘 선수의 임무는
수비형 미드필더 처럼 올라가서 중원 압박이였다.
유사 시 공격 상황이 오면 라인을 올려서 경기를 할때
좀 더 적극적인 공격 루트를 시작하는데 도움을 준 플레이였다.
마지막으로…
김남춘 선수가 우리의 곁을 떠난 날은 10월30일이다.
시즌 마지막 경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였고,
당시 서울은 성적부진이였지만, ACL이 남은 상황이여서
김남춘 선수의 재활을 기다리는 중이였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났을때, 많은 팬들은 슬퍼하였다.
슈퍼매치 라이벌 수원 삼성 팬들도 애도와 추모를 해주셨고
많은 구단과 선수분들이 같이 공감해주시고 애도 해주셨다.
홈경기때 벌어진 원정 팬 사건은 이야기는 또 다른 분쟁으로
연결 될 수 있을까봐 이야기는 못하지만 ,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김남춘 선수는 FC서울을 사랑했고
팬들을 위해서 뛰고 노력하던 선수였다는 것이다.
+ ) 블로그 홍보를 하려고 쓴 글이 아니여서 링크 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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