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더비지만, 더비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파이프 그림을 떡하니 그려놓고는 그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고 역설하는 것이죠.
의도적으로 그림과 문장을 모순시킴으로써 그림은 그 대상의 재현일 뿐이지, 그 대상 자체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마그리트가 의도한 바랑은 1도 상관없지만, 저는 내일 열리는 경인더비가 마치 <이미지의 배반> 속의 파이프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일 열리는 경기는, '1년 전 경기는 이런 결말로 끝났어야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경기가 아닙니다.
작년의 경기에서 일어난 해프닝을 떠올려 여러 감정을 느낀다한들 그것은 그날을 재현하려는 시도일 뿐, 그날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내일 경기는 1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경기이겠지요.
하지만 한편으로 내일 경기는 평소에 우리가 '경인더비'라고 부르는 그 경기들과는 다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 양팀 사이의 무수한 이야기가 걸러지고 정제되어서 승부욕이란 알갱이만 남고,
이러한 알갱이들이 시간과 함께 쌓이고 쌓인 결과가 우리가 마주하는 '경인더비'의 실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일의 경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이야기는, 아직 우리 마음 속에서 걸러지고 정제되기에는 너무나 무겁고 큰 덩어리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내일 열리는 경기는 더비지만, 동시에 더비가 아니라고.
"Ceci n'est pas un derby."(이것은 더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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