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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작년에 남춘이 보내면서 쓴 글

주세종 179

22

3
https://fcseoulite.me/free/7906333 복사

삼일상을 치르듯 내내 경기장에 갔다.

하필이면 나는 토일월 일을 해서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고 그렇지만 떠나간 이가 너무 보고싶어서, 세상에 영혼이 있다면 경기장은 그에게 가장 익숙한 곳일 테니 쉽게 찾아오겠지 싶어서 금토일 그리고 발인인 오늘까지 경기장으로 향했다.


금요일엔 실감이 나지 않았는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슬프긴 했지만 허망한 감정이 더 크게 들었다.

집에 있기가 어려워서, 믿기지 않아서, 그래도 내일이 경기인데 당신을 추모하는 자리는 내 손으로 만들고 싶어서 포스트잇과 테이프, 매직을 사서 경기장으로 향했다.

사실 가면서도 거짓말이길 간절히 빌었던 것 같다.


나 말고도 이미 와 있던 사람들이 게이트 앞에 간단히 자리를 만들고 꽃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잘 가라는 몇마디 글을 남기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또 그 자리에서 쉽게 떠나기가 힘들어서 경기장 계단에 앉아 한참 지는 노을을 바라봤다.


토요일은 경기가 있는 날이었고 나는 아침부터 학생들 수업이 있었다. 수업을 하는 동안에도 괜찮았다.

수업은 두시에 끝나고 경기는 세시에 시작인지라 꽃을 살 시간은 없었고, 대신 편의점에 들러 가장 비싸고 좋은 맥주를 한 캔 사서 게이트 앞에 내려놓으면서도 슬프지만 참을 수 있었다.


경기 내내 간절히 바랐다. 다른건 다 필요 없고, 당신의 영전에 바칠 딱 한골만 나오기를. 근데 축구 참 어렵더라. 몸이 부서져라 선수들이 뛰는데, 저러다 큰일 나겠다 싶을 정도로 그 차분하던 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데 한 골이 나오질 않더라. 들고 간 카메라? 당연히 소용 없었지. 경기에 가면 천 장 이천 장씩 찍어댔는데 오늘 보니 딱 이백 장 남짓 찍혀있더라.


휘슬이 울리고, 그래도 당신 가는 길 배웅하는 선수들 사진은 몇 장 남겨야겠다 싶어 카메라를 들어 선수들을 찍기 시작했는데, 그 강하던 사람들이, 그 강해보이던 사람들이 엉엉 울더라. 그때부터는 정말 참을 수 없어서 나도 소리 내 울었다. 떠난 당신 때문에도 슬펐지만, 나는 남은 우리가 더 슬펐는지도 모른다. 그제서야 실감이 났거든. 이제 당신을 더이상 이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다는 걸.


당신의 유니폼이 골대 앞에 내려놓아지고, 당신을 그렇게나 아끼던 선배가 까만 주장 완장을 내려두고 당신 유니폼을 한번 쓸어보고, 매일을 함께하던 선수들이 주저앉아서, 혹여나 자신 울음소리가 새어나가면 옆 동료들이 더 무너질까 입을 틀어막고 우는데, 내가 어떻게 눈물을 참을 수 있겠어.


누구 입에서 먼저 나왔는지 모를 당신의 이름이 울리고, 제대로 불러주고 싶었는데 목이 막혔다. 누군가 그걸 응원이라고 부르지 않길 바란다. 그건 우리의 통곡이었고 초혼이었다. 남은 사람들이 떠나는 혼이라도 붙잡고 싶어 내뱉은.


내가 너무 우니까 옆에 앉아계시던 분이 휴지를 주시더라. 너무 울어서 미안하다고 말했는데 괜찮다고 말해주셔서 또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울었다. 분명 담담하다고 생각했는데 절대 담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와서, 일찍 씻고 누웠는데 잠이 안오길래 당신 영상을 몇 개쯤 보고, 그러고 나서 결혼식으로 빈소에 가지 못하는 다른 선수의 글을 보고 또 한참을 울었다. 나도 이렇게 슬픈데, 그 찢어지는 마음을 내가 어떻게 감히 위로할 수 있겠어. 동료 장례식도 못가는 그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조차 없었다.


와중에 참 많은 사람이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더라. 힘든걸 얼마나 티를 안 냈으면 하나같이 힘든 줄 몰랐다는 말이 나와. 이 미련한 사람. 


일요일 아침, 출근 전 다시 경기장으로 갔다. 가는 길 꽃 한송이 못 놔준게 못내 아쉬워서, 예쁜 꽃 한다발을 사들고. 가는 길에 오래오래 보라고 시들지 않는다는 보존화를 사서. 울지 않을거라고, 어제 너무 울었으니 웃는 모습만 보여주자 생각하고 갔는데 더 많아진 꽃과 편지를 보다가 또 눈물이 터졌다.


당신을 좋아하던 친구가 빈소에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빈소에 선수들이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안심했다. 아, 가는 길 외롭진 않겠구나. 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고 갈테니.


그리고 월요일인 오늘, 원래는 발인 시간에 맞춰 경기장 앞 추모공간을 마무리한다고 했는데 하루 더 연장한다는 소식에 내 나름대로의 발인을 해주자는 생각으로 다시 경기장으로 향했다.


가서 향 하나를 피워주고, 마지막으로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하고, 아픈 다리도 다 나아서 행복하게 축구만 하라는 말을 전하는데 경기장에서 그렇게 죽일 듯 싸우던 팀의 지지자가 그 유니폼을 입고 와서 당신에게 꽃을 내려두는 걸 보고 다시 주저앉아서 울었다. 참 미움받지 않는 선수였구나. 그래, 그 선한 미소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어.


이제 당신은 진짜 떠났으니, 나도 나의 삶을 살려고 한다. 당신의 자리는 여전히 내 가슴에 텅 빈 구멍으로 남겠지만, 그래서 때로는 추모원에 찾아가 한참 울고 올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여기 이 상실을 함께 건너온 우리가 있으니 견딜만 하리라 믿는다.


꽃 피는 따뜻한 봄이 오면 늘 당신을 기억하고, 행복하길 기도할게.


잘 가, 춘디치. 우리의 봄. 


-


보고싶다 춘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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