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단순히 승리를 한다고 해서 안익수를 찬양하는 게 아니다.
좌우 측면 라인만 무의미하게 뛰댕기느라 침투가 적어지고 체력만 주구장창 빠지는 나상호와 조영욱,
압박 없이 그저 공 쫓아가기에만 바쁜 수비라인,
U자형 빌드업만 주구장창인 기성용,
자기 자리 못찾고 내려오는 팔로세비치.
그리고 텅 빈 원톱 자리.
8월까지 매 경기 봤던 우리 팀의 모습이다.
그리고 ○○○팀의 모든 조건을 갖춘 것만 같던 선수단이 감독 하나 왔다고 불과 몇 주만에
주고 받는 움직임의 디테일 끝에 계속 좋은 찬스를 만드는 2선,
토나오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자랑하는 수비라인,
한칸 내려오면서 그야말로 전술의 두뇌가 된 기성용,
마침내 제 롤을 부여받고 2선에서 미친 활약을 보여주는 팔로세비치.
그리고 원톱에서 폭발한 조영욱까지.
우리는 우리 팀이 이렇게 짧은 기간 만에 모든 게 180도 바뀌어버리는 기적을 목도하고 있다.
우리 경기를 안 챙겨보는 타팀팬들은 말한다.
‘아니, 5승 3무 1패, 그래 뭐 좋은 성적이긴 한데, 서울이 정말 그렇게 달라졌냐? 그저 감독 교체 스파크 뿐인거 아니냐? 2018년 인천의 안데르손은 하스에서 안익수보다 더 대단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 의문에 대한 내 답은 하나다.
우린 지금 선수단의 투혼으로 이기는 게 아니라, 시스템으로 이긴다.
불과 몇달 전까지 골프네 코인이네 별 소리 다 나왔던 선수들이다.그 입 바르고 착한 현영민이 해설위원으로서는 그에게서 평생 들을 수 없을 수위의 맹비난을 했다.
팬들은 선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팬들이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을 못 믿는다는 건, ○○○팀으로 가는 루트 중 가장 최악의 케이스다. 나는 이 시기 서울을 ‘한국의 샬케04’로 불렀다.
나는 지금도 정말 이대로 이 팀이 아무 희망도 없이 강등되었으면 샬케04 선수들이 강등이 확정된 이후 팬들에게 쫓겨서 도망갔던 그 그림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근데 그런 선수들이 감독 하나 달라졌다고 몇주 사이에 우리에게 무슨 논란이 있었냐는 듯 열심히 뛰기 시작한다. 피치 위에서는 눈동자부터가 달라졌다.
이들이 투혼이 부족해서 그 동안 경기장에서 답답했을까? 몰론 그 이유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우리가 지금 하는 축구에 ‘디테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경기장에서 어떻게 뛰어야하는지, 어떤 움직임을 가져가야 하는지, 새 감독은 큰 소리로 선수 하나하나 포지션을 잡아가며 위치와 롤을 지정해준다.
능력 있는 감독이 오니, 내가 어떤 축구를 해야할 지 알겠고, 그러다보니 자신감이 생기고, 그게 경기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디테일’이 서울을 부활시켰다.
무엇보다 안익수의 그 시스템은 팬들에게 흥미를 준다. 이기는 것도 이기는 거지만, 지금 서울은 재밌게 이긴다.
욘스가 코리안 콘테로 변모한 2014 시즌 이후로는 서울팬들에게는 이런 재밌는 축구가 사실상 처음인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안익수를 찬양하는 이유일지라.
내가 자주 드나드는 한 커뮤의 축구 좀 보는 갤러는 익수볼을 보고 “유럽에서도 펩 전술을 이 정도로 잘 구현하는 감독은 몇 없다”라는 극찬을 했다.
하지만 펩빡이니, 뭐 인버티드 풀백이니, 좌우 메짤라니 이런 거 전혀 알 필요 없다. 팬들이 경기장에 가는 게 신이 나기 시작했다. 몇주 전까지만 해도 욕하기 바빴던 선수들의 활약이 기대되고, 단순히 한두 골이 아닌 그 이상의 축구를 바라기 시작했다.
단순히 욱여 넣고 뽀록으로 이기는 축구가 아니라, 경기장을 지배하면서 꾸준히 찬스를 만들 줄 아는 축구라는 걸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
내년에는 무슨 상황이 벌어질 지 아무도 모른다. 파훼법이 의외로 간단한 축구인만큼 강팀과의 경기에서도 이 전술이 먹힐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외친다. 나의 서울 팬질 역사상 이런 감독은 처음이다.
이렇게 단 몇 주만에 선수단의 스피릿, 스탯, 활동량의 질적인 향상을 이끌어낸,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팬을 하면서 좀처럼 느끼기 어려웠던 축구 자체의 재미까지 잡아낸 감독은 정말 처음이다.
서울팬과 동시에 15년째 콥질을 하지만 심지어 클롭도 이 정도로 팀을 한순간에 바꿔놓지는 못했다. 하지만 안익수는 가능했다. 그렇기에 우리가 자처해 익버지의 순례자를 자처하게 된 것이다.
그저, 익버지. 나의 삶, 나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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