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FC서울의 시작, 최용수
내가 최용수와 FC서울을 처음 접한건 2011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쯤이였다.
당시 초등학교에서 무료 티켓을 나누어줬고, 상대는 제주였던걸로 기억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로 축구에 관심이 많아진 나는, 아빠와 함께 상암을 찾았다.
재미있었다. 스코어나 직관 당시의 기억은 안나지만.
나중에 찾아보니 그 경기가 최용수의 감독(대행) 첫 경기였다고 하더라.
그 이후, 종종 축구장을 찾았다.
어린 나이, 왕복 3시간에 가까운 거리 때문에 자주 찾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감독석에는 최용수가 있었다.
나에게 서울은 최용수였다.
2012년, 홈에서 우승 세리머니를 하던 모습과
2013년, 사상 최초로 팀을 ACL 결승에 올려놓던 모습.
이제는 과거로 회상되는 우리의 황금기에는
최용수가 있었다.
영원히, 최용수가 있을것 같았다.
2014년인가 2015년으로 기억한다.
인터넷을 자주 쓰지 못해 종이신문으로 소식을 접하던 나는 최용수가 중국에서 거액의 오퍼를 받았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머리가 멍했고, 가슴이 찡했다.
보내주기 싫었다.
내 바램이 통했는지, 최용수는 떠나지 않았다.
2016년에는 결국 시즌 중에 떠나긴 했지만.
2016년에는 학원에서 소식을 접했는데, 이미 한번 겪어서 인지 그때보단 무덤덤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2018년, 최용수는 아시안게임 해설위원으로 '대박'을 치며 방송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고
우리 FC서울은 최악의 암흑기를 맞이했다.
모두가 꺼리는 그 자리.
국가대표팀 감독처럼 독이 든 성배도 아닌 자리.
그 자리에 최용수는 돌아왔다.
그리고 강등을 막아냈고,
2019년, 전년도 11위 였던 팀을 최종성적 3위로 마무리하며
ACL 티켓을 따냈다.
'됐다, 이제 됐어!'
ACL 진출 확정 직후 내가 내뱉은 말이다.
다시 시작될 줄 알았던 그와 우리의 행복한, 즐거운 동행은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2020년, 야심차게 변칙3백을 선보였지만
최악의 부진에 시달렸고,
'욘스 아웃' 이 팬들의 주 여론이 되는, 초유의 상황까지 발생한다.
그는 FA컵 포항전 패배 이후 이렇게 말했다.
'발악을 해도 되는게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참 씁쓸했다.
내가, 우리가, 모두가 알던 항상 자신감에 넘치던 최용수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날.
최용수는 FC서울 감독직을 자진 사임한다.
과외가 끝나고 폰을 켜자마자 보였던 그 소식은
내가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나는 욘스를 보내주기 싫었다.
아니, 이렇게 아름답지 않게 보내주기 싫었다.
그가 우리와 함께 만들었던 황금기를
다시 만들기를 바랬다.
하지만 세상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법.
최용수와 우리의 동행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나에게, 그는 레전드이자, 최고의 감독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제 그는 강원FC의 감독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운명의 장난인지, 첫 상대는 우리이다.
'FC 서울의 레전드' 에서 '강원 FC 감독' 으로 향하는 그의 첫 발을 응원하며
우리도, 그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이기를 바란다.
-2021년 11월 16일.
강원FC 감독 선임 오피셜을 보며 씁쓸한 한 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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