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박주영과의 결별, 겸허히 받아들이자.
'레전드 박주영의 결별, 겸허히 받아들이자'
FC서울 통산 11시즌, 314경기 90골 31도움. 그가 FC서울 팬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레전드인 만큼 그와의 결별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매우 뜨겁다.
혹자는 박주영만큼은 FC서울에서 은퇴시켰어야 했으며, 박주영을 FC서울에 남기지 않은 것은 프런트의 실수라고도 한다.
선수들과의 이별, 이젠 'Cool'해질 때 됐다.
흔히 K리그에서 '잘 하는' 선수들에게 나오는 말들이 있다. "ㅇㅇㅇ 종신!", "평생 여기서 뛰어주세요!" 등등.
듣기 좋은 말이다. 잘 하는 선수들이 선수생활을 해당 팀에서 마무리 하는 것 또한 좋은 그림 또한 아름다운 장면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 순간 최고의 선수들이 뛰어야 하는 축구단 특성상 선수들은 더 잘해서 더 좋은 팀으로 이적하기도 하고 또는 기량 유지를 못해서 다른 팀으로 이적하기도 한다.
레전드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느 선수는 너무 잘해서 해외 팀으로 이적하기도 하고, 어느 선수는 기량이 떨어져서 다른 팀으로 이적하거나 은퇴하는 것을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역사가 깊게 쌓인 유럽의 경우에는 팀의 레전드가 타 팀 감독으로 가거나 혹은 타 팀으로 가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응원해준다. 어쩌면 우리 한국 축구 팬들이 레전드가 떠나는 것을 'Cool'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직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기에 우리가 레전드를 떠나보내는 과정을 많이 겪어보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타 팀으로 이적한다고 해서 레전드가 아닌 것이 아니다.
한 팀의 레전드였던 선수가 타 팀으로 이적한다고 한들 그가 레전드가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선수를 내가 응원하는 팀에서 더 오래 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경기 출전도 얼마 하지 못하는데 팀에 남긴다면 그것은 선수에게나 감독에게나 그리고 팬들에게나 큰 아픔이 될 것이다.
리버풀의 제라드가 리버풀에서의 여정을 끝마치고 LA 갤럭시로 향했고, 첼시의 램파드가 첼시에서의 여정을 끝마치고 맨시티로 향했고, 제니트의 아르샤빈이 제니트에서의 여정을 끝마치고 쿠반 크라스노다르로 향했었지만, 그 선수들이 전설으로 남았던 팀의 팬들은 여전히 그들을 기억하고 좋아해주듯 우리 또한 팀과 선수의 결정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선수와 구단을 이간질하지 말라.
지난 18일 박주영의 인스타그램에 이어 오늘(28일) 구단 공식 SNS에서 비슷한 의미로 쓰인 문단이 있다.
'저는 선수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축구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FC서울이 어떤 역할이든 저를 필요로 한다면, 꼭 그 부름에 응하겠습니다.'
- 18일 박주영의 인스타그램
'FC서울, 박주영과의 11년간의 동행 잠시 멈춘다', '또한 FC서울의 영원한 '레전드'로서 한치의 소홀함 없는 모든 예우를 이어가겠습니다.'
- 28일 FC서울 인스타그램
물론 협상을 하던 당시에는 속이 상하고 괴로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양 측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지만 잠시 동안 바라보는 위치가 다르기에 서로를 인정하고 언젠가는 다시 서로가 필요할 때 만나자는 약속을 하였다.
과연 감독의 구상에 없는 선수를 굳이 남겨서 선수와 팬들만 상처 받게 하는 것이 진정한 '레전드 대우'인 것인가?
아니면 이렇게라도 서로 지향점이 다른 것을 확인하고 서로 잠시만 안녕 하는 것이 레전드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인가.
서울에서 보낸 모든 시간이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FC서울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에 대한 여부를 떠나, 서울은 제 마음 속 가장 큰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짝사랑이 되더라도, 절대 제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
지난 10년 6개월동안 FC서울의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사랑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끝을 함께하지 못하는것이 아쉽지만 그것또한 제가 감당해야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부심과 행복했던 기억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 박주영의 인스타그램
선수가 먼저 나서서 여전히 FC서울을 사랑한다고 하였고, 후에 FC서울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그 부름에 응하겠다고 하였음에도 자신의 영웅이 떠나는 것에 화가 나서 그저 분 풀이 대상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구단은 그만 공격 당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했고, 앞으로의 길을 존중하겠다 하였지만 주변에서 좋게 보아주지 못한다면 좋은 마무리가 좋은 마무리로 될 수 없음이라.
글을 마치며
박주영이 FC서울을 떠나는게 여전히 불만족스럽고 화가 난다 하더라도 이미 팀을 떠난 레전드, 지금 팀에 남아있는 레전드들을 바라보며 '박주영도 이렇게 당했는데 당신들이라고 그렇게 당하지 않을 것 같냐' 라고 하지 말길 바란다.
이는 오로지 각자의 선택에 따라 흘러가는 결과일 뿐이고, 그런 말들은 그저 당신들의 괴로움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덮어 씌워 분풀이를 하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한 지금, 서로 간의 감정이 더 나빠지지 않길 바랄 뿐이고, 여기서 누군가의 마음이 다치지 않길 바랄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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