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람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FC서울 구단과의 간담회를 요구합니다.
지난 일주일 여의 시간은 FC서울을 지지하는 우리에게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기성용 선수의 전북 이적 가능성이 처음 제기된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는 실망했고, 구단은 반드시 데려오겠다고 말했고, 선수는 입장을 발표했고, 우리는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수많은 말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와 그 날카로운 가시로 우리를 찌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슬픔에 빠진 것은 비단 기성용 선수의 입단이 불발되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라는 단순한 믿음 말입니다. 팀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우리가 끝까지 여기에 남아있을 수 있었던 힘은 시간 속에 켜켜이 쌓인 그 믿음에 있었습니다. 아디 선수 은퇴에 대한 이야기들이 허공을 채울 때도, 데얀의 이적으로 떠들썩했을 때도 우리는 ‘우리’라는 단어의 힘을 믿었기에 여기에 남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받던 선수가 아무런 말도 없이 리그에서 사라졌을 때에도, 입대를 한 선수의 소식을 다른 이를 통해 전해 들어야만 했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실망은 했지만, 그 믿음 하나로 지쳐가는 자신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이 없습니다. 구단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무엇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지 혼란스럽습니다. 지난 11년간 구단도 팬도 그리고 기성용 선수 자신도 FC서울이라는 이름표를 쓰길 주저하지 않았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기성용 선수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울산 현대로 이적한 고명진 선수를 비롯해 ‘서울’이라는 이름을 공유했던 많은 선수가 기성용 선수와 비슷한 길을 밟는 것을 씁쓸하게 지켜봤습니다. 물론 팀을 떠났던 선수가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팀을 위해 헌신했던 선수도 사정에 의해 팀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단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그 과정에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여야만 팬들이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 팀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팀을 위한 선수들의 헌신과 희생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팀이 위대해지기는커녕 팬들의 믿음조차 잃은 채 추락하고 있다면, 팀보다 위대할 수 없다는 선수는 그것보다 얼마나 더 초라해져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듣고 싶습니다. 단순히 지금 거론되는 선수 이적에 관한 설명을 듣고 싶은 게 아닙니다. 구단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서 나아가려 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감내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SNS를 뒤적이며 구단의 행보를 추리해가는 것에 지쳤습니다.
그래서 요구합니다. 엄태진 사장과 강명원 단장 등 책임 있는 구단 프런트가 참석하는 간담회를 빠른 시간 내에 열어주십시오. 물리적인 시간과 장소를 이유로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참석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 공지해주십시오.
수호신께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연대에 소속되지 않은 파편화된 개인들이지만 서울이라는 범주 안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라 믿습니다. 그러니 구단이 팬들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함께 지혜를 모아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20년 2월 XX일
FC서울 지지자
김아무개(서울 강서), 이아무개(경기 고양), 박아무개(서울 노원) 등등
추천인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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