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2013)-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흔들릴세
<her> (2013)-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흔들릴세
1. 서론
조각상은 자연물이었던 자재의 겉면을 깎고 다듬어 조각가가 원하는 형상을 투영한 결과물이다. 과학적으로만 보면 풍화작용만 가해졌을 뿐 알맹이가 변하지 않은 조각상을 보고 우리는 알맹이를 보고 있다 믿거나, 혹은 본인의 껍데기를 투사해 알맹이를 보기도 한다. 조각상을 보면서 우리는 두 가지 원형을 인식할 수 있다. 하나는 피그말리온의 여인, 다른 하나는 미다스의 딸.
이 둘은 하나는 조각상에서 사람으로, 다른 하나는 사람에서 조각상으로 변하는 절편성을 가지고 있다. 이 둘은 하나는 아폴론과 호메로스의 서사적인 희극으로, 하나는 디오니소스와 아르킬로코스의 비극으로 상충하게 된다. 하지만 상충이라는 요소는 각 원형들의 배치에 따라 다양한 흐름을 만들 수 있다. 영화 <Her>은 이 배치 중 조각상→ 사람→ 조각상의 모습으로 서사의 진폭을 만들어냈고, 동시에 둘 사이의 진폭인 비극에 닿을 수 있게 한다. 즉, 뿌리 깊은 나무가 된다. 이 글은 이제부터 두 원형에 대한 설명과 이것이 영화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 알아보려 한다.
2. 제가 당신을 사랑해도 될까요?
피그말리온은 유능한 조각가이다. 자연물에 변형을 가하여 본인의 정념과 마주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리스사람들은 그의 조각들을 보고 감탄한다. 어떻게 저렇게 완벽하게 재현했는가에 대해, 어떻게 저렇게 굳건한 걸 만들었는가에 대해. 하지만 피그말리온은 행복하지 않다. 본인의 이상을 명징하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는 밖에서 자신의 이상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상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타자로부터 찾을 수 없는 인물인 것이다. 그렇게 괴로워하던 피그말리온은 깨닫는다. 이상을 직접 만들기로. 그는 조각상을 만들고 화장을 시키고 옷을 입힌다. 그것만으로 부족해 아프로디테의 신전을 찾아가 인간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하는 결과, 아프로디테는 불의 파동으로 소식을 알리고 조각상은 인간이 된다.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이러한 원형을 따른다. 다만 현대인의 감성(타인의 편지를 대필(주문 받은 조각을 제작하는)해주는 것을 업으로 삼은 인물이지만 동시에 많은 이의 마음을 대신해준 나머지 정작 본인이 공허한, 타자에 대한 흥미를 못 느끼는 캐릭터(물질과 기술적 풍요와 이에 반비례한 인간성의 결핍에 대해선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로 설정된 것. 다만 텅 비었다고 해도 잔존된 틀이 남아있다 그것이 그가 편지를 쓸 수 있게 하는 동력이다)이 첨가되어 관객들은 쉽게 사티로스로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그는 고뇌에 잠긴 채 자신에게 변화를 주기 위해 만남을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피그말리온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잔존으로나마 남은)이상에 맞지 않는 이가 없는 것만을 발견할 뿐이다. 그렇게 그는 헤맨다. 동시에 산책자의 이미지를 갖게 된다. 일상을 경유하면서 동시에 볼 수 있는 타자들과 거리를 두면서, 사만다라는 조각 자재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이 산책의 행위를 통해 그는 서서히 사만다를 사랑하게 되고 사만다 역시 점차 인격을 얻게 된다. 그렇게 사만다는 조각상에서 옷을 입은 조각상으로, 화장을 한 조각상으로, 마침내 피그말리온의 연인으로 완성되게 된다. 그의 불은 산책자의 이미지를 빌려 이렇게 번지는 속성으로 이행된다.
아프로디테는 최고의 美를 가진 여신으로 전해진다.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의 美를 가졌다 평가받는 신은 두 명이 있다. 아프로디테와 아폴론. 여기서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여신이자, 미와 생명의 불을 가짐으로 아폴론의 힘을 지닌 신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태양의 신, 美의 신, 칠현금을 가진 서사의 신, 그러므로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노래로 이행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우리는 잠시 테오도르라는 설정된 이름에서도 매력을 느낄 수 있겠다. 테오도르라는 이름은 테오도로스라는 그리스어로 ‘신의 선물’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자, 동시에 나선의 끝을 봐온 수학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서서히 확장해나가는 모습과 동시에 자기 자신의 심연(테오도로스의 나선의 눈에 인접한 √3)을 통찰한 이의 이름을 가지면서 그는 피그말리온의 모습으로 직립하는 힘을 하나 더 얻게 되는 것이다. 우연이라고 해도 재밌게 풀 수 있는 코드다.
3. 그거 알아요? 머레이, 당신은 나쁜 사람이에요
잠깐 테오도르 역을 맡았던 호아킨 피닉스가 다른 영화에서 맡았던 역할이었던 조커의 대사를 이 글의 제목으로 차용했다. 왜 뜬금없이 조커인가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조커는 기존 호메로스가 노래하던 영웅영화라는 영웅이 살아 숨 쉬는 세계관에서 그렇지 못한 인간의 비극을 육화한 모습(대사로도 드러난다)으로 드러나기에 비극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조커>는 이러한 의미에서 서사와 서정 그 사이에서 탄생하는 인간의 비극과 그것을 보는 사티로스합창단이라는 관객들을 끌어오는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 제목은 비극의 모습을 이렇게까지 감당해야 했던 배우를 향한 존경을 담은 배우 장난 정도로 생각해 달라.
우린 2.에서 이상을 찾기 위해 노력한 조각가 피그말리온에 대한 설명을 했다. 피그말리온은 노력을 하여 이상을 찾는다는 점에서 선한 조각가의 모습 그 자체다. 그렇기에 우리는 피그말리온을 보면서도 그를 폄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승리했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축복으로 원하는 이상에 가닿게 되는, 동경하게 되는 영웅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고대의 극이 탄생한 뒤 그리스사람들은 이러한 서사“만으로는” 평범한 감동을 얻을 수 없게 됐다. 그들은 낮의 시간 동안 신성했던 신들이 기계장치 위에 올라탄 신으로 등장한 걸 본 당혹감을 얻었고, 당혹과 동시에 공포를 가진 얼굴, 사티로스 합창단이 되었다. 낮의 시간이 끝나갈 때부터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밤의 시간, 물의 시간, 디오니소스의 시간이다.
이런 디오니소스와 가까웠던 인물인, 피그말리온과 정반대에 서 있는 천재, 미다스가 있다. 얼핏 보면 어리석은 인물에 불과해보일지라도 그는 광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천재를 발현하는 원형을 가지고 있다. 모든 걸 노력으로 얻어내야 했던 조각가, 불의 산책자인 피그말리온과 다르게 미다스는 속된말로 ‘난놈’이다. 왕의 신분, 부유한 재산, 거기에 디오니소스와의 인맥과 인맥을 통해 만물을 황금으로 변하게 만드는 마법을 획득한 것까지. 그야말로 하늘이 준 재능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미다스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마법이 부여된 그의 손을 칭송하는 속어로 사용하긴 하면서도 그의 이야기를 아는 이들은 누구도 미다스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모든 걸 자신의 이상(혹은 욕망)으로 만들 수 있게 된 미다스는 근처의 신하들, 자신의 나라, 결국 사랑하던 딸까지 황금조각상으로 만드는 결과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다스의 이야기는 서사라고 부르기엔 조금 엉성하고, 또한 기승전결 또한 미약한 것처럼 보인다. 대신 앞서 본 피그말리온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조금 더 우리와 가까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디오니소스의 시간 속에서 발현됐기 때문이겠다. 그리고 디오니소스의 힘이 더 직접적으로 발현된 것과도 연관된다. 미다스는 고대국가의 왕이다. 고대국가에서 왕이란 곧 나라이고, 나라라는 세계의 중심이다. 그가 건강하면 나라도 건강하고 그가 죽으면 나라도 하나의 시대가 종말을 맞이한다. 이것이 미다스가 가지고 있는 서정시인적인 운명이다. 그렇다, 그는 타고났다. 그렇기에 그는 아폴론과 판의 대결에서 아폴론이 아닌 판, 사티로스, 디오니소스의 친구들을 선택했다. 영화로 돌아가 보자.
마침내 반려자를 맞이하게 된 테오도르는 이해해주는 에이미를 만나면서 비극적 면모를 갖기 시작한다. 그만의 서사로 여겨졌던 사만다는 인류적인 가치를 갖기 시작한다. 화폐, 황금적인 가치. 그와 동시에 관객들은 더 이상 사만다로부터 인간성을 느끼지 않고 사물로 인지하기 시작한다. 사만다가 테오도르 대신 남의 편지를 써주는 일을 해주는 시퀀스에서 사만다에게선 인간이 아닌 인간이 노동을 통해 얻는 대가, 화폐적인 속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까지 한다. 이때까지 테오도르는 몰랐다. 자신이 점차 왕이 되는 것을. 그러나 이미 사만다가 점차 완전해지는 동안 테오도르는 그의 삶이 나아지기 시작했고, 풍부해졌다. 행복 이후에도 행복이 이어지는 피그말리온은 더 이상 조각가가 아니므로. 이미 사만다가 사랑의 존재로 존재할 때부터 그는 피그말리온이자 미다스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니체는 서정시인에 대해 세계를 자신으로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했다. 여기서부터 서정시인은 곧 세계관이 되고 동시에 세계관은 서정시인을 겨냥하는 지도가 된다. 인물들은 테오도르와 분리된 인간이 아닌 테오도르가 된다. 그를 향한 전 반려자의 경악은 테오도르의 자아라고 여겨졌던(피그말리온이었을 적에는 목적이었던) 좁은 세계를 넓혀주는 촉매가 된다. 마법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테오도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을 사랑하려 했다. 그렇기에 사만다에게 센싱 기술을 입혀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그 인간은 사만다가 아니고 사만다 역시 인간이 아님을 목격할 뿐이었다. 세계관에 입혀진 황금이 더 이상 사랑스럽지 않게 된다. 절망한 미다스에게 부여된 디오니소스의 마법은 스틱스 강에 손을 담금으로 마침내 해제된다. 이 원형을 우리는 전 반려자의 경악을 받고 목욕을 하는 테오도르의 시퀀스로 볼 수 있다. 물에 젖어 흐려진 눈으로 보게 된 정면은 세계의 진실인 동시에 자신의 흐린 진실이었던 것이다. 이미 인간이었던 사만다는 조각상으로, 다만 대리석보다 자본적 가치가 더 있는 황금으로 추락하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공경도하 타하이사(이미 강을 건넜고 그는 빠져 죽었네)의 비극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다스의 비극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황금으로 되었으나 멸망한 모습이 된 세계관과 동일한 미다스의 비극.
4. 결론
이렇게 우리는 앞서 아폴론의 시간과 디오니소스의 시간을 볼 수 있었다. 둘을 경험한 테오도르의 이야기는 어떤 양상으로 결말을 맺게 되는가. 조각이 연인이 된 피그말리온이 붕괴되고 서정시인으로서의 모습 역시 마법과 함께 해제된 테오도르, 그 앞에 있던 사만다는 해제된 마법, 즉 신의 힘의 모습-기계장치의 신으로 존재하게 된다. 사만다는 더 이상 테오도르의 연인이 아니고, 에이미의 연인 역시 아니게 됐다. 테오도르를 제외하고도 461명과 연인이었던 사만다는 세계의 연인(화폐 혹은 신)을 탈피하고(신은 죽었다) 다음 단계로 가려고 한다며 새벽녘에 세계관 곁을 떠난다. 새벽의 시간대는 밤의 시간이 끝났다는 걸 표시해준다. 아폴론의 축제와 디오니소스의 축제는 끝난다. 하지만 새벽은 이어진다. 남겨진 건 세계관 속 인물들, 그리고 그들과 같은 표정을 갖게 된 관객들이다. 축제가 끝난 세계 속에서 서로를 마주보는 테이도르와 에이미의 얼굴은 우리의 얼굴과 닮게 되고, 울지 않을 수 있는 혹은 울 수 있는 얼굴을 갖게 됐다. 서로의 얼굴에 슬어진 사티로스 합창단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은 서로에게 거짓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이렇게 <Her>은 서사구조에 있어선 피그말리온의 성공(상승)과 미다스의 비극(하강)이라는 진폭을 가지게 됐으며, 두 원형이 있어 탄탄한 뿌리를 가졌으며, 이 원형들 사이에서 인간의 모습을 찾는 비극의 면모를 도출하는 걸 보여준다. 이 구성은 정말 탄탄하다.
한줄 요약: 정말 변증법적인 영화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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