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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라극장

[시네마 SEOUL] <틱, 틱... 붐!>, <렌트>, 그리고 조나단 라슨

Lochas title: 포효하는 보라빛 북극곰Lochas 9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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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fcseoulite.me/free/9322691 복사

역사적인 뮤지컬 [렌트]의 원작자로서의 조나단 라슨의 명성과 달리, 1990년의 작가 지망생으로서의 조나단 라슨의 인생은 끔찍했다. 


나이는 어느덧 서른이 되었음에도, 그의 우상 손드하임과 달리 뮤지컬 업계에 어떠한 업적을 남기지도 못했다. 물론 서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음악 업계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재능을 갖춘 사람만 가능한것이지만, 라슨은 조급했다. 그는 반드시 서른이 되기 전, 자신의 이름을 예술계에 남기고 싶어했다. 



뮤지컬 [렌트]의 오프닝 넘버 <Rent>에서 묘사되는 허름하고, 이따금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아파트는  

라슨 본인이 살던 거처에서 따온 것이다.


서른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라슨의 통장 잔고에는 한 푼의 돈도 없었다. 뮤지컬을 작곡, 작사하면서 수입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며 연명해야했으며, 좁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월세조차 제대로 내지 못해 이따금 전기가 끊기는 일을 경험하기도 해야했다. 


7년에 걸쳐 워크샵까지 진행했던 그의 역작이자 라이프 워크 [슈퍼비아]는 나름대로 좋은 반응을 받고, 미국 내 저명한 뮤지컬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브로드웨이에 오르기에는 그 당시의 트렌드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있고, 대중성이 부족했으며, 오프-브로드웨이(브로드웨이 외부의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로 제작되기에는 디스토피아 미래상을 묘사하는 작품의 특성상 제작비가 문제가 되었다. 무엇보다 원작으로 삼은 조지 오웰의 [1984]에 대한 라이센스를 취득하지 못해, 작품 내 [1984]를 연상시키는 설정 하나하나를 모두 삭제해야했다. 


뮤지컬, 그리고 영화 [틱, 틱... 붐!]에서의 묘사와 다르게 실제 [슈퍼비아]는 이후에도 1, 2년 정도 더 작업을 진행했으나, 결국 정식 무대에 오르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 


Rosa-Stevens-2.png.jpg뮤지컬, 영화 [틱, 틱... 붐!]에서 라슨의 에이전트로 나오는 로사 스티븐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은 허구의 인물이다.


-그래서 저는 이제 뭘 어떻게 해야하나요?


- 다음 작품을 써야지. 그렇게 하나의 작품이 끝나면, 또 다음 걸 써. 

그렇게 계속, 계속 글을 쓰는거야. 그게 작가가 되기 위해 해야하는거란다, 아가.

그렇게 계속 벽에다 대고 던져대렴, 그러다보면 언젠가 하나 정도는 붙지 않겠니?

아, 다음 번에는 너가 잘 아는 것에 대해 한 번 써보도록 해. 연필 날카롭게 갈고 다시 시작하렴.


영화 [틱, 틱... 붐!] 중 조나단 라슨과 그의 에이전트, 로자 스티븐슨의 대화 중.


실제로 라슨이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이런 충고를 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슈퍼비아] 작업의 말미 무렵부터, 라슨은 좀 더 현실적이고, 자기 반영적인 두 작품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무대에 올라간 라슨의 유이한 작품들. [렌트]와 [틱, 틱... 붐!]


하나는 [틱, 틱... 붐!],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렌트]였다. 


서른 직전에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던 존(틱, 틱... 붐!), 그리고 꿈도 희망도 없는 뉴욕 예술가의 거리를 자전거로 활보하며 카메라로 촬영하는 젊은 다큐멘터리 감독 마크(렌트). 존의 노래, 그리고 마크의 카메라 프레임 속에는 조나단 라슨이 살아온 배경, 그가 사랑해 마지않던 친구들이 담긴다. 



[틱, 틱... 붐!]의 존(앤드루 가필드)와 [렌트]의 마크 코헨(앤서니 랩)은 외형과 직업면에서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조나단 라슨의 분신격인 캐릭터들이나 다름없다.


[렌트]와 [틱, 틱... 붐!]은 이른바 '기록'이다. 


당초 1인극으로 기획되었던 [틱, 틱... 붐!]은 조나단 라슨 본인에 의해 쓰여진 30살 생일날에 대한 비망록이다. 실패를 맛보고 절망했던 젊은 예술가의 생의 기록이다. 조나단 라슨 본인에 의해 쓰여지고 공연되었던, 자신의 인생에 대한 쓰디쓴 블랙 코미디다.


[렌트]는 라슨이 보고 겪은 모든 것들,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고이자 기록이다. 마크 코헨의 수동 카메라 프레임은 라슨의 시선이다. 라슨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때로는 활기넘치는, 때로는 절망하고 분노하던 예술가들의 삶이 생생하게 기록된다. 그들의 행복한 웃음, 사랑 그리고 가슴 아픈 죽음까지도, 모두 다. 

조나단 라슨의 작품들은 바로 그 흔적이다. 


영화 [렌트] 중 <Life Support>넘버 장면. 

에이즈 환자들이 각자 스티브, 고든, 알리, 팸, 수, 폴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이 이름들은 실제로 에이즈로 사망한 라슨의 친구들의 이름으로,

라슨이 자신의 노래에 그들의 이름을 기록함으로서 세상에서 잊혀지지 않게 되었다.

라슨은 [틱, 틱... 붐!]의 넘버인 <Boho days>에서도 자신의 룸메이트를 거쳐간, 그리고

자신의 생일 파티에 참여한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하는 방식으로

친구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시도를 한 바 있다.


세상 속에서 버림받았던 소수자들과, 병자들, 예술가들이 어디선가 살아갔다는 증거로서 남은 커다란 흔적이다. 


조나단 라슨은 1996년 1월 26일, 오프 브로드웨이에서의 [렌트] 워크샵이 끝난 그 날 밤 사망했다. 그의 짧은 인생을 계속해서 좀 먹었던 가난과 창조에 대한 부담감이 대동맥류라는 병환으로 돌아와 그를 잡아먹었다. 곧이어 찾아올 [렌트]의 성공으로 얻을 명성을 채 누려볼 기회조차 없이, 그는 영원한 안식에 들고 말았다. 


라슨은 사망했음에도,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지구 어디에서 공연되어지고 사랑받고 있다. [렌트]는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성공한 뮤지컬이 되어 전세계 수 많은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해주었다. 라슨의 사망으로 완성되지 못한 채 사라질 뻔했던 [틱, 틱... 붐!]은 동료 예술가들의 손에 3인극으로 재편되어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아파트 한 구석에서 초라하기만했던 한 남자의 삶의 기록은 지금도 세상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위안이 되어 살아 숨쉬고 있다. 


살아생전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기를 바랬던 라슨의 소박했던 소망은 이렇게나마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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