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과 함께(4) - 안익수는 어떻게 꼴찌팀 FC서울을 끌어올렸나? (FC서울 2021시즌 리뷰&2022시즌 프리뷰)
3편 링크 : https://fcseoulite.me/free/9559912
광주전이 열리기 전 33라운드, 故 김남춘의 기일. 서울은 인천에게 0-2로 패배했다.
안익수 체제에서의 첫 패배였으나, 전반 초반 백상훈의 퇴장으로 80분 넘게 10대 11로 끌려갔던 상황이기에 감독으로서도 어쩔 수 도리가 없는 패배였다. (그 와중에도 서울은 60분대까지 거의 가패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긴 했다.)
그 와중에 12위 광주는 강원을 상대로 다 잡은 경기에서 막판 극적인 동점골을 허용하며 2:2로 경기를 마쳤다. 이제 둘의 승점차는 4점차.
만약 서울과의 홈경기를 광주가 가져간다면, 광주는 서울을 1점차로 추격하면서 강등 싸움을 더 혼잡스럽게 만들 수 있었다.
서울에는 9월까지 광주 출신의 박진섭 감독이 있었다면, 광주에는 거꾸로 서울 출신의 이 ㅅ.. 아니 이 감독이 있었다.
바로 작년까지 서울 감독대행직을 수행했던 ‘런’ 김호영.
서울 감독대행직으로 최용수 사퇴 이후 대행 초반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다가, 서서히 체력 저하로 꼬라박으면서 팀을 하위스플릿에 보내버린 뒤
슈퍼매치가 열리기 이틀 전 자신에게 정식 감독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팀을 도망나오는 민폐짓을 저지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서울팬 거의 대부분은 이 감독을 향해 혐오의 감정으로 바라보며 분노의 이를 갈고 있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호영은 광주 감독직에 부임한 이후 서울을 의식하는 듯한 발언을 계속해왔다.
서울에게 지동원의 골로 0-1로 패배하고 나서 기자회견에서 김호영 감독은 “우리가 서울을 못 이길 이유는 없었다.”라는 추한 변명식의 인터뷰를 싸지르기도 했다.
정작 남들은 다 한번 씩은 이기는(수엪 제외) ○○○밥팀 서울을 상대로 이번 시즌 한번도 이기지 못했음에도 말이다.
어쨌든, 김호영 감독이 그렇다고 해서 무능력한 감독은 아니었던지라 광주의 시즌 경기력 자체는 나쁜 편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커뮤니티에 ‘광주 강등은 안 당할 듯?’이라는 밈이 생겼을까.
다만 경기력에 비해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데다가 거기에 교체 미스 사건으로 승점을 감점당하며 운까지 따라주지 못하면서 최하위로 떨어졌다.
그렇게 서울을 벼르고 있던 김호영은 강등 싸움이 걸린 외나무다리에서 서울을 다시 만났고,
익수볼을 나름대로 철저히 분석해 전반전부터 엄청난 압박에 들어가며 수비진을 괴롭힌다.
인천전 10명이서 80분 가까이를 뛴 후에 치뤄진 주중 경기의 여파 때문일까, 기성용과 서울의 포백은 광주의 강한 압박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광주는 엄원상을 원톱으로 세우고 마치 FM의 전진형 스트라이커처럼 상대방의 광활한 뒷공간을 공략하는 전술로 서울의 수비진을 괴롭혔다.
이는 굉장히 잘 먹혀들었고, 계속된 공략 속에 마침내 전반 막판 김종우가 양한빈의 볼 처리 실수를 놓치지 않고 득점에 성공한다.
이날 기성용이 부상의 기운이 있기도 했고, 폼 자체도 매우 좋지도 못했기 때문에 안익수 감독은 후반이 시작하자마자 기성용을 빼고 차오연을 투입한다.
그러나 차오연과 강상희 두 어린 서울 수비진의 볼처리는 광주의 잔디 사정과 컨디션 난조가 겹쳐 후반전에도 매우 좋지 못했고,
광주의 압박이 계속 성공하면서 후반 초반에 이찬동, 엄원상의 골이 추가로 터졌다.
이제 경기는 3:0. 광주의 승리가 유력해보였고, 서울은 감독 교체 이후 좋았던 흐름이 끊기며 다시 강등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자 커뮤니티에서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마법의 주문.
'광주 강등은 안 당할 듯?'
'광주 강등은 안 당할 듯?'
'광주 강등은 안 당할 듯?'
'광주 강등은 안 당할 듯?'
'광주 강등은 안 당할 듯?'
결국 그 주문은 서울을 깨웠고, 여기서 안익수의 노련한 한 수가 등장한다.
익버지 가라사대, “오스마르를 한 칸 위로 올려라”
기성용의 자리에 대신 들어갔던 차오연이 오스마르가 있던 왼쪽 수비수로 내려가고, 오스마르가 위로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서 익수볼의 공격 진형인 숫자 5명(메짤라 둘, 측면 윙포워드, 원톱)이 전방으로 함께 올라가기 시작한다.
오스마르의 볼 키핑 능력과 시야, 전개는 K리그 탑급이다.
오스마르를 중심축으로 공격이 전개되면서 오히려 서울의 공격 상황에는 5명 vs 광주 수비진 4명의 상황이 벌어졌다.
중원 숫자 싸움에서 2.5선에 고요한, 팔로세비치 메짤라 둘이 상대 광주의 3선에 홀로 위치한 한희훈의 빈공간을 끊임없이 파고들었고,
한희훈은 이 둘을 혼자서 상대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게 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경기 분위기가 서울로 넘어가고, 이 찬스에서 상대의 자책골과 팔로세비치의 골이 나오면서 승부는 순식간에 3:2가 되었다.
순식간에 불안한 한점 차 리드. 그러나 김호영은 여기서 최악의 수를 두는데,
4-1-4-1 전형을 유지한 채 오히려 이민기 자리에 허율, 엄지성 자리에 두현석, 즉 공격진 자리에 공격수를 그대로 투입하는 교체를 단행한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는 한희훈이 혼자 커버하지 못하는 하프스페이스를 보호하기 위해 옆에 한희훈의 파트너를 붙여넣으면서 오히려 투볼란치로 가는 수비적인 교체를 하는 것이 정배였지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라는 말 때문인지, 서울 공격진들의 체력 저하를 과신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서울의 밀어붙이는 공격력을 공격력으로 제어하려는 선택을 한다.
런호영의 최악의 수 덕분에 상황은 오히려 서울에 유리하게 흘러갔고, 결국 사고가 터진다.
마침내 지속된 공격 속에서 서울의 동점골이 터진 것이다. 그 주인공은 올해 오산고등학교 3학년, 19살 준프로 선수 강성진이었다.
구단 첫 준프로 선수로서 안익수가 부임한 이래 주전으로 올라선 강성진은 오른쪽 윙포워드가 주 포지션으로,
왼발을 굉장히 잘 쓰고 드리블 능력이 이미 성인급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절대 주눅들지 않고 수비수에게 겁없이 도전하는 요즘 어린 친구들의 특성이 아주 잘 묻어난 당찬 선수였다.
광주 선수 두 명 앞에서 강성진은 약간의 드리블을 선보인 뒤 머뭇거리지 않고 슈팅을 때렸고, 이것이 골망을 흔들었다.
이제 시간은 서울의 것이었다.
김호영은 동점골이 먹히고 나서야 부랴부랴 한희훈과 이찬동을 빼고 박정수와 이순민을 투입해서 수비 숫자를 보강하려 했지만,
흐름을 탄 서울 선수들은 불길처럼 광주의 수비진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투 메짤라의 한 자리에서 계속적으로 광주의 불안한 3선을 파고들며 찬스를 노렸던,
원클럽맨 고요한, 우리의 영웅 고요한, 결정적일 때 항상 팀을 살리는 DNA를 보여주었던 고요한이 측면에서 강하게 때린 슈팅이 골망을 찢을듯이 울렸다.
최종스코어 4-3. 서울의 믿을 수 없는 대역전승.
서울 선수들은 모두가 함께 껴안고 이 기적적인 역전에 기뻐했고,
뒤에 서 있던 서울 원정 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주중 어려운 시간에 멀리까지 찾아간 보람을 맘껏 즐겼다.
그 사이로 지나가는 런호영의 똥 씹은 표정과 멘탈이 단체로 나가버린 광주 선수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교차한다.
그렇게 경기는 끝. 안익수의 신의 한 수와 함께 강등권 냄새를 감지하면 그제서야 발휘되는 서울 극장의 DNA가 발현된, FC 서울 역사상 최고의 역전극이었다.
결국 이 경기는 두 팀의 시즌 전체의 운명을 갈라버린 경기라고 할 수 있겠다.
런호영의 광주는 항상 전술의 기본 컨셉을 들고 나오는 건 좋았고 상대를 어렵게 만드는 데 능했으나,
그 딱 하나, 순간적인 대응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단점이 결국 시즌 초반부터 승부처마다 광주의 발목을 붙잡았고,
이것이 광주가 시즌 내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음에도 팀을 결국 강등권 위로 끌어올리지 못한 이유를 직접 증명해보이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서울팬이라면 이 영상 두 번 봐라. 세 번 봐라.)
안익수의 노련한 전술 승리였고, 김호영의 안이한 패배였다.
또한 서울 선수들이 투혼으로 몸소 증명해낸 기적이었다.
이후 익수볼은 날이 갈수록 여물어가며, 이어 벌어진 성남전에서 끝판왕급 경기력을 보여주며 3-0 완승을 거두었고,
최용수가 새로 부임한 강원과의 이어진 홈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두며 마침내 2021 시즌 잔류를 확정 짓게 된다.
마지막 경기였던 38라운드 포항 원정은 익수볼이 계획대로 돌아갈 경우 얼마나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증명했던 경기로,
비록 전반전에 선취골을 먹혔음에도 90분 내내 시종일관 상대를 가두고 패는 경기력을 보여줬고
익버지의 1호, 2호 전사인 조영욱과 팔로세비치가 연달아 골을 넣으며 서울은 마지막 경기까지 승리로 장식,
결국 막판의 극적인 뒤집기로 7위(하스왕)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전혀 예상치 못한 해피엔딩으로 시즌을 마치게 된다.
1편에서 얘기했던 ‘서울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단순히 감독 교체 스파크 아닌가?’에 대한 대답을 이제 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이 기간을 단순히 선수단의 투혼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이겼다.
불과 9월 6일까지만 해도 골프네, 코인이네 별 이상한 소리 다 나왔던 팀이었다. 그런 팀이 감독 하나 달라졌다고 몇 주 사이에 우리에게 무슨 논란이 있었냐는 듯 눈동자부터가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들이 투혼이 부족해서 그 동안 경기장에서 그렇게 답답했었을까? 몰론 그 이유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우리가 지금 하는 축구에 ‘디테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안익수가 오면서 11경기 동안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 단적인 예로 수비 라인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박진섭 시절 이렇게 헐거웠던 오합지졸 수비라인이,
안익수 때는 이렇게 바뀌었다.
(안익수는 수비수 사이에 끈을 묶어서 라인을 조절하는 훈련을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것이 바로 전술의 ‘디테일’이다.
내가 경기장에서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 어떤 움직임을 가져가야 하는지, 새 감독은 큰 소리로 하나하나 포지션을 잡아가며 위치와 롤을 지정해주었다.
능력 있는 감독이 오니, 내가 어떤 축구를 해야할 지 잘 알겠고,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생기고, 그게 경기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결국 그 ‘디테일’이 서울을 부활시켰다.
(이스타TV피셜 순도 100%의 아버지)
무엇보다 안익수의 그 시스템은 팬들에게 엄청난 흥미를 가져다준다.
이기는 것도 이기는 것이지만, 2021 후반기의 서울은 재밌게 이겼다.
욘스가 코리안 콘테로 변모한 2014년 이후로는 서울팬들은 축구 자체에서 오는 희열감을 느낀지 꽤 오래되었다.
이런 재밌는 축구가 서울팬을 시작하면서 사실상 처음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안익수를 단순히 우리 팀 살려줬다는 것만으로 찬양하는 게 아닌 이유이다.
안익수는 펩의 전술을 많이 참고했고, 이 덕분에 펩의 전술에서 엿볼 수 있는 공격 시퀀스가 경기장에서 많이 구현되고는 했다.
전술과 관련해서 몇몇 해축 팬들도 흥미를 가지고 볼 수 있을만큼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러나 펩빡이니, 뭐 인버티드 풀백이니, 좌우 메짤라라느니 이런 건 서울팬들은 굳이 머리 아프게 알 필요가 없다.
팬들이 경기장에 가는 것이 신이 나기 시작했다.
몇주 전까지만 해도 욕하기에만 바빴던 선수들의 활약이 기대되기 시작하고,
유망주들이 땜빵용 소년병에서 아이돌이 되어가는 과정을 즐겁게 지켜보고,
단순히 한두 골이 아닌 그 이상의 축구를 바라기 시작했다.
단순히 욱여 놓고 뽀록으로, 선수들의 정신무장으로 이기는 축구가 아니라
경기장을 지배하면서 꾸준히 찬스를 만들 줄 아는 능동적인 축구라는 걸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주 안에 선수단의 스피릿, 스탯, 활동량의 질적인 향상을 이끌어내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팬을 하면서 좀처럼 느끼기 어려웠던 축구 자체의 재미까지 잡아낸 감독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서울팬 모두가 ‘오직 익수’를 외치며 커뮤니티에 여기저기에 익버지 단어사전을 뿌려대며,
기꺼이 익버지의 순례자를 자처하게 된 것이다.
시즌은 이렇게 끝이 났다.
2021시즌의 놀라운 기적을 목도한 익버지교 신자의 간증이 끝났으니,
다음 마지막 편에서는 다소 중립적인 입장으로 돌아와 겨울 이적 시장 선수 보강 정리와 함께 익수볼의 2022년에 기대되는 점과 우려되는 점을 바라보고자 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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