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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공공식을 정립한 드라마, <낭만닥터 안사부>

안익수 title: 뗑컨안익수 53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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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fcseoulite.me/free/9625429 복사

 “And the drama continues...”

 피파모바일의 영어 중계 캐스터 데릭 래는 경기가 후반이나 연장으로 접어들 때 이 말을 꺼낸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축구는 자주 드라마에 비유된다. 대량득점이 쉽게 나오지 않고 단 1점을 위해 쏟아부어야 하는 노력이 다른 어떤 종목보다 많기에, 밀렸다고 생각한 경기의 균형이 맞춰지거나 뒤집히는 순간의 쾌감은 드라마 그 이상으로 극적이다. 

 

 성공하는 드라마에는 공식이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슬기로운 의사생활>까지 이어지는 ‘남편 찾기’ 공식은 시청자들에게 내내 유효했다. <추적자 : The Chaser>로 시작해 <황금의 제국>, <펀치>로 이어진 박경수 작가의 이른바 ‘권력 3부작’은 주제(=권력)에 대한 천착과 치밀한 완성도가 담보된다면 반드시 톱스타가 출연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기본기의 공식을 만들어냈다. 반대로 <펜트하우스> 시리즈는 막장 드라마라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다음을 궁금하게 만든다면 보게 돼 있다는 공식을 훌륭하게 증명했다.


 필자가 시즌 2를 재밌게 봤던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에도 공식은 있었다. 눈물 없인 보기 힘든 사연을 가진 환자가 등장하고 소형 병원인 돌담병원이 감당하기 버거운 대형사고가 터지는 것도 공식이라면 공식이지만,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공식은 따로 있다고 느껴졌다. 제목처럼 ‘낭만’을 중시하는 주인공이 돌담병원으로 가 애제자들과 함께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 두 시즌을 통틀어 김사부가 혼자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이야기가 마무리되진 않았고, 혼자 압박을 견디기 버거울 때 제자와 동료들이 적극적으로 조력하면서 모재단의 경영 압박을 물리쳤다. 강동주, 윤서정, 도인범, 서우진, 차은재 같은 재능있는 제자들과 ‘수쌤’ 오명심 및 박은탁으로 대표되는 동료들이 아니었다면 돌담병원을 지키고 독자 재단으로 독립해 전문외상센터를 추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2년 전 필자를 즐겁게 했던 <낭만닥터 김사부>의 이야기 구조는 어떤 축구팀의 현 모습과 비슷한 면이 있다. 바로 응원팀 FC서울이다. 


 

 쓰러져가던 구단, 안경 쓴 신사의 등장

 돌담병원은 극중에 간판 불이 나간 시골 중소 병원으로 나오고 FC서울은 (성적을 떠나) 누가 보기에도 규모가 큰데 어딜 봐서 비슷하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중후반까지의 서울은 쓰러져가는 돌담병원만큼이나 심각한 상태였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환자나 잘 봐. 그럼 돼!”


 9월까지의 FC서울에는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뭘 해도 반등하지 못하는 12위의 성적은 각종 루머가 양산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코인, 골프… 맨정신으로 뛰어들어도 좋은 결과를 받기 힘든 K리그1 강등권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건 구단의 1부리그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꼴찌팀답지 않게 3골을 넣고도 진 전북전 다음날, FC서울은 감독 교체를 발표했다. “이미 늦었다”는 시기적 평가와 “프로 무대에서 한참 전 물러났던 감독이 최하위팀에 와서 얼마나 보여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뒤따르던 상황, 안익수 신임 감독은 선수들에게 간단히 몇 마디만을 남긴 채 강훈련에 돌입한다.


https://youtu.be/e96k8arcFNA


 

“프로라는 것은 팬들이 없으면 여러분의 가치는 평가절하되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이, 시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한편 왼쪽 가슴에 FC서울 엠블럼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FC서울을 꿈꿔 오면서 운동했었고….”

 

 첫 만남이다 보니 마음 다치지 않게 여러 이야기를 덧붙였을 뿐, 요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축구나 잘해. 그럼 돼!” 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극초반을 제외한 시즌 내내 패배의식에 시달리며 고통받던 선수들에게 터닝 포인트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말도 안 되는 경기력으로 패하던 서울은 이날 이후 단 1패만을 기록했고, 감독 교체 시점에선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망해가는 곳에 안경 쓴 재야의 고수가 투입돼 상황을 지휘하고 해당 집단은 위기를 벗어난다. 지난 시즌 막판의 서울은 돌담병원과도 같았고, 그들은 인정받기 힘든 위치에서나마 드라마를 썼다.


 

 방향있는 스승

 김사부에게는 명확한 방향이 있다. 대형병원에서 문제아로 찍힌 이른바 ‘모난 돌’을 좋아한다는 것, 병원의 수익보다는 일단 오는 사람을 살려내는 게 먼저라는 것, 수천 명이 갖가지 사정으로 인해 실려오는 지역의 특성상 외상센터를 만드는 게 맞다는 것. 그 방향 아래 재능을 가진 제자들이 돌담으로 왔기에 김사부의 프로젝트는, 시즌 3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일단 외상센터를 추진하는 병원장까지 생기면서 성공했다.


 안익수 감독 또한 확실한 방향을 갖고 있다. 필드 밖에서는 ‘서울은 명문 구단이니 그에 맞는 축구와 위상을 보여야 한다’는, 감독 부임 이전의 서울 커리어가 수석코치 1년이 전부인 인물치곤 생소할 만큼의 프라이드를 곧 방향성으로 잡고 있다. 그리고 이 원대한 방향을 필드 위에서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 스타일도 정립했다. 


 * 인버티드 풀백을 통해 중원싸움과 공격 상황에서의 우리 선수 숫자를 늘리고 

 * 수비 및 수비 진영에서의 볼 점유 시엔 수비형 미드필더(거의 100% 기성용)를 센터백 자리까지 내려서 수비와 공 전개를 수행하며 

 * 골키퍼(아마도 양한빈) 또한 빌드업 과정에 적극 관여하는 한편

 * 볼이 상대에게 있을 때는 강력한 압박으로 공을 되찾아오거나 상대의 공격 전개를 방해하면서

 * 오프사이드 트랩을 최대한 위쪽까지 끌어올려 팀의 전진성을 확보하고 위기를 사전 차단하는 것

 (하늘색은 선문대학교 유니폼의 색이니 오해 없길 바랍니다)


 이 정도가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요약하자면 어떤 상황에서도 수적 우위를 가져감으로써 다음 상황에서 볼이 갈 선택지를 늘리고 상대의 탈취 위험을 최소화하며, 상대에게 공이 있을 때는 애초에 공이 잘 돌거나 넘어오지 못하게 만들어 위기의 횟수를 줄이는 게 ‘익수볼’의 스타일이다. 


 워낙 많은 강등권 팀들이 감독 교체 버프로 위기를 벗어나고 다음 해 다시 나쁜 성적을 받아들이다 보니 ‘FC서울 또한 감독 교체로 불은 껐지만 올해는 담보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시선이 있다. 미래를 예상하는 일은 과거 행적을 따라서 하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놈의 서울 축구를 딱 팀이 쇠락해가는 시기인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챙겨보기 시작한 필자의 생각은 약간 다르다. 


 서울에서 급한 불만 끄고 DTD 이론에 따라 다시 추락한 예를 꼽자면 이을용, 런호영 감독대행 시기를 들 수 있다. 이 시기의 공통점이 있다면 감독 교체로 위기를 부각해서인지 당장의 활동량이나 득점력 같은 것은 어느 정도 개선됐지만 정작 수비불안과 무기력한 공격전개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다시 제 자리(어허)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안익수 감독 부임 이후의 서울이 그러지 않았다는 건 작년 9월 이후 서울 축구를 본 사람들이면 모두가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비가 안 되고 효율적인 공격전개가 거의 없으며 결정력 또한 부족하다는 근본적인 문제들은 상술한 안익수 감독의 스타일이 토스트에 계란물 입혀지듯 스며들면서 고쳐졌다. 선수들 또한 ‘내가 필드에서 뭘 해야 하지?’를 알게 됐고, 이는 단순히 강등권 탈출만이 아닌 마지막 경기까지 승리를 노려 7위 자리를 따내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도 끝이 나는 거다.”


 부진의 원인이야 한두 가지겠냐만, 그리고 시기마다 같을 리가 있겠냐만 경기장에서 보이는 모습 하나는 같았던 게 사실이었다. 황선홍 때나, 이을용 때나, 최용수 말기나, 런호영 때나, 박진섭 때나 ‘왜 축구하는지, 무엇 때문에 하는지’를 선수들이 받아들이지 못했거나 잘 몰랐다. 이 감독이 왜 우리랑 축구하는지, 함께 뭘 하고 싶은지. 즉 목표나 방향 정도는 알아야 믿고 뛰든 체력을 필요한 곳에 쓰든 할 것 아닌가. 안익수 감독은 가장 동기부여가 안 될 꼴찌에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정신적‧전술적으로 확실히 제시했다. 선수들은 듣고 믿을 만한 목표라는 걸 경기장에서 달라진 전술의 장점과 호성적으로 보여줬다. 이것이 필자가 현 감독이 ‘흔한 강등권 감독교체 버프’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다. 

 


 능력있는 제자

 돌담병원이 ‘김사부 원맨팀’으로 그들 앞에 놓인 위기를 격파하고 외상센터로의 변신을 앞두고 있는 게 아니듯, FC서울도 안익수 감독 한 명의 능력만으로 새 시즌을 돌파할 수 없다. 재능을 가진 제자가 있고 동료가 있어 그들과 뜻이 맞을 때 위기극복을 넘어 성공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안익수 감독이 발굴해낸 제자로는 크게 두 선수를 이야기할 수 있다. 조영욱과 팔로세비치. 조영욱은 청소년대표팀 때 처음 안 감독과 인연을 맺은 선수로, 지난 시즌 초중반 윙어로 뛸 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조영욱 개인의 지분이 전부라기보다는 나상호와 함께 윙어가 먼 거리를 뛰어다니게 만든 전 감독의 실책도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윙의 활동범위를 공격 쪽으로 줄여주고 조영욱을 센터포워드에 놓자 귀신같이 부활했기 때문이다. 괜히 이 감독 밑에서 월반에 성공한 게 아니라는 듯, 조영욱은 안익수 감독의 데뷔전부터 골을 넣더니 9월 말까지 1골에 불과했던 성적을 시즌 종료 때엔 8골까지 끌어올리며 흔한 말로 ‘황태자’가 되었다. 올해도 톱이 됐든 윙이 됐든 주전 자리를 무난히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선수기에, 지난해 후반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2022시즌 팀 성적의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 물론 감독 교체 후 7골을 몰아넣은 선수기에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조영욱이 ‘애제자(순한 맛)’ 버전이라면 팔로세비치는 매운 맛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안익수 감독 부임 후 첫 경기의 팔로세비치는 재교체를 택한 감독에 맞서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물병을 걷어차며 완전히 상극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안익수 감독이 과거 타 프로팀의 감독을 맡았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는 칼같이 플랜에서 배제했다는 전력을 감안하면 엄청난 이적료를 주고 데려온 팔로세비치가 2022년 바로 팀을 떠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살 수 있는 장면이었다. 


“분노 말고 실력으로 되갚아 줘. 네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반올림하면 10년만에 프로 무대에 돌아온 안익수 감독은 다른 선택을 가져갔다. 팔로세비치를 보내버릴 준비를 하는 대신 다음 경기였던 수원FC전의 선발 제로톱 역할을 맡기며 2차 테스트를 준비시킨 것. 팔로세비치는 이날 최대한 뛰어다니며 팀의 승리를 도왔고, 이후 전공인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로(종전의 1명에서 고요한과 함께하는 2명으로 바뀌긴 했지만, 안익수 감독 밑의 메짤라 자리는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에 꽤 가깝다고 생각한다) 돌아가면서 대활약해 시즌 10골을 채운다. 감독과의 관계가 요단강을 건넌 줄 알았던 팔로세비치는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골을 넣고 싶으니 요거트 대신 귤을 달라”며 투정을 부리면서 애제자 라인에 편입했다. 올해 그의 목표 또한 자신의 우수한 성적을 발판으로 한 팀 성적의 회복일 것. 2년 연속 10골을 달성한 ‘A급 외국인 선수’인 만큼 역시 걱정하지 않는다. 



 필요한 자리에 영입된 새 멤버

 어떤 인터넷 방송인은 “‘지금부터는’부터는 안 되는 거야 인마!” 라고 했지만, 서울의 성공적인 드라마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소개할 선수들이 중요하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시즌 2는 서우진이나 차은재, 윤아름 같은 새 멤버의 활약 덕분에 볼 맛이 더 나는 작품이었다. 


  조금 전 ‘익수볼’을 설명하면서 붙인 특징 중에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최대한 올리는 것’이 포함돼 있다. 이 선택은 분명한 리스크를 가진다. 발빠르고 라인 깨는 것을 잘하는 공격진을 만나면 아무것도 못 해보고 실점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안익수 감독의 부임 시점은 9월 말로, 여름이적시장은커녕 파이널라운드가 얼마 남지 않았고 상위 팀들과의 맞대결은 거의 끝난 시점이었다. 다시 말해 레벨이 뛰어난 팀을 상대로 현 전술이 먹힐지에 대한 시험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안익수 감독은 이 한계를 일단 수비진 및 스리백 중앙으로 변형되는 수비형 미드필더 개개인의 뎁스와 퀄리티를 높여서 해결하겠다는 행보를 보여줬다. 먼저 외국인 쿼터를 브라질 세리 A에서 주전으로 뛰어 개인 기량이 검증된 센터백 히카르도 실바로 채웠다. 현 전술에서 필수적인 좋은 빌드업 능력은 물론 공수 모두에서 공중 싸움도 해낼 수 있는 선수다. 뭣보다 하파엘이나 마우링요 같은 브라질 하부리그의 사짜가 아니라 1부리그에서 주전 경력을 가진 선수라는 게 특기할 요소다. K리그1 레벨에서 흔히 구하긴 힘든 실력자라고 볼 수 있기에, 그의 활약에 걸린 기대가 크다. 다만 수비진 필수인 언어 문제와 비자 발급 지연으로 인한 늦은 합류는 그를 개막전부터 풀타임에서 볼 수 없게 했다. 이 선수가 본격적으로 입과 몸이 풀린 후의 퍼포먼스를 등에 업게 될 서울의 수비는 ‘산성’ 에 가까워질 것이다. 


 센터백 자리에 영입된 선수는 더 있다. 지난해까지 서울 이랜드 FC에서 뛰면서 서울더비 승리의 맛을 느낀(학생 글 내려^^) 이상민이다. 비록 프로 무대에서 눈에 확 띄는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연령별 대표팀의 캡틴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좋은 축구지능을 가졌다는 걸 입증해왔다. 이번 시즌 서울의 포지션 중 가장 뎁스가 뛰어난 자리가 센터백인지라 당장 선발 명단에 들지는 알 수 없어도, 다른 센터백들을 컨트롤하고 수 싸움을 가져가는 커맨더 역할을 잘 하는 선수기에 그가 필요한 시점은 분명히 올 것이다. 마침 올해는 아시안게임이 있는데다 코로나19 변수는 계속되기에 이상민 같은 위치의 선수는 꼭 필요했다.


 센터백에 이어 수비형 미드필더의 뎁스도 보강됐다. 수원 삼성에서 데뷔해 오범석의 ‘아힘북이’에 ‘그는 최고다’로 응답했던 조지훈이다. 최근 커리어가 태국이고 강원FC에서 확고한 믿음을 받지 못했다는 건 흠이지만, 연습경기에서 안익수 감독이 “엑설런트”를 연발했다는 소문을 보면 백업 역할로 가치가 클 것으로 보인다. 


 “그 사람이 누구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위치의 사람이든, 수술방에 들어온 이상 나한테 그냥 환자일 뿐이야.”


 조지훈은 입단 인터뷰에서 “전 소속팀 때문에 좋지 않게 보실 수 있지만, 유니폼을 입은 이상 FC서울의 선수이기 때문에 많이 응원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 감독 또한 서울의 프라이드를 강조하면서도 선수 선발에선 ‘테스트장에 들어온 이상 선수일 뿐’이라는 자세를 견지하며 가장 필요해 보이는 선수를 뽑았다. 롱킥이 좋은 선수로 꼽히는 만큼 기성용이 경고누적이나 경미한 부상 등으로 빠졌을 때 그의 역할을 가장 유사하게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의 서울은 이 선수들 외의 다른 영입에서도 부족한 자리를 채우는 온고지신의 기조를 유지했다. 유상훈의 강원행으로 빈 백업 골키퍼 자리에 황성민, 숫자가 더 필요했던 백업 메짤라에 임민혁, 2선 숫자를 늘리기 위한 아시아쿼터 벤 할로란. 당장의 폭발적인 활약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많은 요소로 주전이 나올 수 없을 때 빈 공간을 채울 선수들이다. 엄원상이라는 빅사이닝을 이적시장이 끝나기 직전까지 타진했으나, 이동준의 헤르타 베를린행이라는 변수와 함께 물거품이 됐다. 


 좋은 팀은 11명으로도, 18명으로도 이룰 수 없다. 그보다 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확실한 동기를 갖고 언제든 자기 몫을 할 때 좋은 팀은 만들어진다. 우승권 팀들이 왜 더블스쿼드에 집착하는지를 생각하면 이번 서울의 이적시장은 화려하지 않되, 필요한 곳을 꽤 괜찮게 채운 시장이었다. 지난해 서울의 문제 중 하나가 얇은 선수층이라는 걸 생각하면 가장 필요한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최고의 동료(?)

 돌담병원에는 외과과장 김사부와 그 밑에 있는 재능형 의사들에 걸맞는 최고의 스탭들이 있다. 간호사가 됐든 원무과장이 됐든 그들은 불확실한 목표를 리더가 지향한다는 이유로 따라가고, 때론 “돈 때문에 환자 안 받을 거면 문 닫으라”며 돌담의 프라이드를 강조한다. FC서울에도 감독의 목표에 누구보다 먼저 동조하고 팀의 자부심을 강조하는 선수들이 있다. 안익수 감독이 “형”이라 표현하는 고참들이다. 이 선수들 또한 엄밀히 따지면 제자지만 감독 본인이 형이라는 호칭을 쓰니 동료 포지션으로 옮겨 써보겠다. 고요한과 기성용, 오스마르로 대표되는 이 선수들은 프라이드만을 이야기하는 선수들은 아니다. 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에 자리를 바꿈에도 막힘없이 경기할 수 있고, 프로경력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절실함을 갖고 있다. 

 숱한 인터뷰를 통해 자부심과 열망을 함께 강조하며 후배들을 이끌어가는 이 선수들의 바람은 어쩌면 FC서울 팬들의 바람과 일치할지도 모른다.


 “은퇴 전에 ACL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싶다. 워낙 어려운 컵이기에” - No.13 고요한

 “가장 소중한 고요한, 기성용, 오스마르가 은퇴하기 전에 우승컵 하나는 들자” - FC서울 팬들



 더 높은 곳을 향해

 “3년 안에 국가의 지원을 받는 외상센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숱한 정치가 들어올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콜.”

 지난 시즌이 마무리된 후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사무국은 물론 팬들까지 FC서울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같았을 것이다. 2021시즌이 끝났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것. (마침 키트 스폰서인 프로스펙스도 FC서울 후원과 함께 ‘지금부터가 진짜다’라는 광고 캠페인을 사용한다.) 끝난 건 2021 K리그1일 뿐이지, 서울의 축구는 끝난 게 아니었다. 7위는 서울답지 못했던 시즌의 마지막이라도 서울답게 마치기 위한 임시적인 목표였을 뿐이다. 진짜 목표는 지금부터다. 캐치프레이즈로서의 ‘서울다움’은 초라하게 없어졌지만 팀 스피릿으로서의 ‘서울다움’은 반드시 되살려내야 한다. 


 FC서울에게 있어 지금까지의 오프시즌과 2022년이 다른 점이 있다면 변수를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2016년 우승 이후 서울의 매 오프시즌은 등락폭이 무지막지한 코인판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매 시즌 감독 교체와 선수단의 방향성 없는 변경이 반복됐고 성공한 2019년조차 급진적 변화와 부족한 포지션에 대한 공포가 컸을 뿐 확신은 없었다. 이는 결국 ‘개떡락’으로 귀결되며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성공 공식은커녕 기본적인 틀조차 잡지 못한 것이다. 올해 오프시즌은 최소한 그런 불안이 없다. 방향성은 지난해 막판으로 증명했고, 거기에 맞는 선수들을 데려왔다. 또한 그 방향은 옳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성공 공식이 비로소 정립된 것이다.


 그러나 리그는 언제나 괴로움의 연속이다. 지난 시즌의 서울도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을 보기도 전에 너무도 미약해졌다. 타 구단과의 경쟁과 부상, 코로나19, 경고누적 및 퇴장 등 변수는 숱하게 팀을 뚫고 들어올 것이다. FC서울은 그것을 감당해내야 한다. 


 “팬들이 설렘을 가질 수 있는 축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감독 안익수

 “초반부터 꾸준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주장 기성용


팀 리더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런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에 대한 답은 “콜.”로 정해진 듯하다. 

 

 “And the drama continues...”

 그렇게 FC서울의 드라마는 계속된다. 성공 공식을 찾아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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