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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ㅎㄷㄷ했던 15살 시절 이청용의 데뷔전.JPG

title: 뗑컨Nariel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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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fcseoulite.me/history/222963 복사

원문

https://blog.naver.com/asdike/221613947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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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라는 컵대회가 있었습니다.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는 2009년에 폐지되기 전까지 매년 3월마다 열린 클럽축구대회였는데, 내셔널리그 팀들이랑 대학교 축구부팀들이 30~50팀 정도 참가해서 자웅을 겨뤘죠. K리그 2군팀들과 경찰축구단(당시에는 프로팀이 아니었습니다)도 이 대회에 종종 참가했구요. 쉽게 비유하자면 하부리그 팀들의 미니 FA컵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는 내셔널리그,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전국체전과 더불어서 하부리그의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였죠. 특히 당시에 한국축구에서 2부리그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던 내셔널리그는 이 대회에서 초 강세를 보였습니다. 내셔널리그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2003년부터 대통령배가 폐지되는 2009년까지 우승팀이 모두 내셔널리그에서 배출되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보니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는 하부리그 팀들에게 '최고의 실전무대'였습니다. 내셔널리그 팀들은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었고, 정규리그가 개막하기 전에 조직력을 다지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K리그 2군팀들과 대학축구부들은 상대적 강호인 내셔널리그와의 맞대결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었구요.

그리고 2004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안양에서 서울로 연고지를 옮긴 FC서울이 이 대회에 2군을 내보냈습니다. JOINKFA와 당시 언론기사에는 팀명이 FC서울이 아닌 안양 LG 치타스라고 나와 있는데 이는 대회 참가신청 당시의 팀명이 안양 LG여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즉, FC서울 1군은 K리그와 리그컵에서 'FC서울'이라는 이름으로, FC서울 2군은 대통령배에서 '안양 LG 치타스'라는 이름으로 활약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2004 대통령배 출전하게 된 서울 2군은 전주대학교, 동아인재대학교와 함께 12조에 편성됩니다. 한 조에 팀이 3개여서 조별리그는 각 팀당 2경기를 치렀고, 무승부시에는 승부차기로 승자와 패자를 가렸습니다. 또한 조가 16개였던 탓에 1조당 2팀이 32강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서울 2군은 3월 7일에 열린 조별리그 1차전에서 전주대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8-9로 패배합니다. 서울 2군은 최재수(만 20세), 김승용(만 18세), 안상현(만 18세), 한동원(만 17세), 송진형(만 16세) 등이 출전했지만 패배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이전 경기에서 동아인재대를 꺾었던 전주대는 이 승리로 32강 진출을 확정짓습니다. 참고로 김승용, 안상현, 송진형에게는 이 경기가 성인무대 공식 데뷔전이었습니다(R리그는 입단 테스트 선수들도 출전하는 경우가 있다보니 성인무대 공식대회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또한 김승용은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는 성과를 냅니다.

어쨌든 1차전에서 패한 서울 2군은 3월 9일에 조별리그 2차전에서 동아인재대와 32강 진출을 놓고 진검승부를 벌이게 됩니다. 그리고 서울은 1차전에 출전했던 최재수, 김승용, 한동원, 송진형은 물론이고 1차전에 결장했던 고명진(만 16세), 김승용(만 16세), 이청용(만 15세), 고요한(만 15세) 등도 출전시킵니다. 당시 앳된 나이였던 이 선수들에게는 2차전이 성인무대 공식 데뷔전이었지요.

그럼 운명의 2차전에서 서울 2군은 어떻게 됐을까요?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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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군은 전반전에 4골, 후반전에 6골을 폭격하면서 동아인재대를 10-1로 대파하고 12조 2위로 32강에 진출합니다. 한동원은 전반전에만 해트트릭을 작렬했고, 입단 2년차 송진형은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펄펄 날았습니다. 또한 충격적이게도, 이청용과 고요한은 이 경기에서 자신보다 최소 4~5살 위인 대학생들을 상대로 후반전에 교체로 출전하여 성인무대 데뷔골을 기록합니다. 심지어 이청용은 후반전 45분만 뛰고도 해트트릭을 기록했습니다. 훗날 월드컵 무대와 프리미어리그를 누비게 되는 이청용의 클래스는 어릴 적부터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일반인이었다면 당시 이청용은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어야 했으니까요. 조광래 감독이 중학교 중퇴를 권유하면서까지 이청용을 프로로 데려왔던 건 다 이유가 있었나 봅니다.

 

 

 

 

P.S 

동아인재대를 대파한 서울 2군은 32강과 16강에서 한양대와 경희대를 격파하며 승승장구합니다. 하지만 8강에서 동국대 축구부에게 1-2로 석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는 수원시청 축구단이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수원시청 축구단이 바로 먼 훗날 K리그에 참가하게 되는 수원F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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