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 역대 주요 선수들] 1. 1984 시즌 창단멤버들
한문배(1984~1986): 75경기 7골 4도움
-우승기록: K리그1 1회(1985)
-개인수상: K리그1 MVP 1회(1985), K리그1 베스트일레븐 1회(1985)
-평가: FC서울 역사상 최초의 주장. 1985 K리그1 우승의 주역이었으며 FC서울 역사상 최초로 K리그1 MVP를 수상했다. 선수생활 말년에 럭키금성 황소(現 FC서울)의 창단멤버로 합류해서 은퇴할 때까지 3년간 팀에 몸담았다. 그의 조카인 한동원도 훗날 FC서울에 입단해 5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김광훈(1984~1985): 36경기 1도움
-우승 기록: K리그1 1회(1985)
-개인수상: 없음
-평가: FC서울 2대 주장. 1985 K리그1 우승 때 팀의 주장을 역임했으나 정작 리그에서는 13경기 출전에 그쳤다. 선수생활 말년에 창단멤버로 합류했던 탓에 1985 시즌이 끝난 뒤 구단의 권유로 축구화를 벗었다.
박항서(1984~1988): 117경기 20골 8도움
-우승기록: K리그1 1회(1985)
-개인수상: K리그1 베스트일레븐 1회(1985)
-평가: FC서울 3대 주장. 제일은행 축구단과 육군 축구단을 거친 뒤 1984년에 럭키금성 황소(現 FC서울)에 창단멤버로 입단했다. 팀에서 1985 K리그1 우승과 1986 K리그1 준우승을 경험했으며, 특히 1985 시즌에는 19경기에서 4골 3도움을 기록했다. 1988 시즌이 끝난 뒤에는 현역에서 은퇴해 팀의 트레이너로 보직을 변경했다.
(P.S: 박항서의 FC서울 통산 기록에는 전국축구선수권대회 4경기가 기록미상으로 집계되지 않았다. 해당 경기들의 기록이 확인되면 박항서의 출전기록은 최대 121경기까지 늘어난다. 그리고 박항서가 1988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멤버인지 여부도 확인이 불가능하다)
정해성(1984~1989): 121경기 2골 4도움
-우승기록: K리그1 1회(1985), 전국축구선수권대회 1회(1988)
-개인수상: 없음
-평가: FC서울 4대 주장. 제일은행 축구단에서 활약하다가 1984년에 럭키금성 황소(現 FC서울)의 창단멤버로 입단했다. 1989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럭키금성에서만 활약했으며 1986 시즌 후반기에는 주장을 맡아 팀의 리그 준우승에 공헌했다.
(P.S: 정해성의 FC서울 통산 기록에는 전국축구선수권대회 6경기가 기록미상으로 집계되지 않았다. 해당 경기들의 기록이 확인되면 정해성의 출전기록은 최대 126경기까지 늘어난다)
피아퐁(1984~1986): 43경기 18골 6도움
-우승 기록: K리그1 1회(1985)
-개인수상: K리그1 득점왕(1985), K리그1 도움왕(1985)
-평가: K리그1 역사상 최초로 득점왕과 도움왕을 동시에 차지한 태국인 공격수. FC서울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 중 한명이다. 1984 시즌 후반기에 입단하여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는 괴력을 선보였고 1985 시즌에는 21경기에서 12골 6도움을 기록했다.
조영증(1984~1987): 54경기 14골 5도움
-우승기록: K리그1 1회(1985)
-개인수상: K리그1 베스트일레븐 2회(1984, 1986)
-평가: 1980년대 최고의 멀티플레이어. 그리고 김현태와 더불어 구단 역사상 최초로 K리그1 베스트일레븐을 2번 차지한 선수이다. 1984 시즌에는 수비수로, 1986 시즌에는 미드필더로 베스트일레븐을 수상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특히 1984 시즌에는 팀의 공격수들의 빈공으로 최전방 스트라이커에 기용되기도 했는데 이때 6경기 연속으로 골을 터트리는 괴력을 과시했고 리그 28경기에서 9골 4도움으로 팀내 득점 1위와 도움 1위를 마크했다. 다만 팀이 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1985 시즌에는 부상과 대표팀 차출로 5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상래(1984~1987): 92경기 14골 12도움
-우승기록: K리그1 1회(1985)
-개인수상: 없음
-평가: 창단멤버이자 1985 K리그1 우승의 주역. 1985 시즌에 K리그1에서 21경기에서 7골 5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치며 팀내 공격포인트 2위를 마크했다. 1986 시즌에도 21경기에서 5골 3도움을 기록하며 준우승에 공헌했다.
강득수(1984~1989): 146경기 21골 37도움
-우승 기록: K리그1 1회(1985), 전국축구선수권대회 1회 (1988)
-개인수상: K리그1 도움왕(1986), K리그1 베스트일레븐 (1985)
-평가: 창단멤버이자 20세기 FC서울 최고의 찬스메이커. 몰리나와 데얀이 등장하기 전까지 30년 가까이 FC서울 통산 최다 도움 1위를 보유했던 선수였다. 피아퐁에 이어 구단 역사상 2번째로 K리그 도움왕을 차지했으며 1985 K리그1 우승과 1988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다만 1989 시즌 이후 현대 호랑이(現 울산 현대)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당시 럭키금성 황소(現 FC서울) 프런트가 '한 팀에 입단하면 6년간 이적불가'라는 악규정을 빌미로 임의탈퇴를 걸어버리며 씁쓸한 이별을 맞이했다. 다행히 이때 럭키금성의 임의탈퇴는 대한축구협회에 의해 무효화되었고 6년룰은 후에 폐지되었다.
(P.S: 강득수의 FC서울 통산 기록에는 전국축구선수권대회 2경기가 기록미상으로 집계되지 않았다. 해당 경기들의 기록이 확인되면 강득수의 출전기록은 최대 148경기까지 늘어난다
김현태(1984~1991, 1996~1997): 117경기 154실점 30클린시트
-우승기록: K리그1 2회(1985, 1990), 전국축구선수권대회 1회(1988)
-개인수상: K리그1 베스트일레븐 2회(1985, 1986), K리그1 우수 골키퍼상 2회(1985, 1986 춘계), 전국축구선수권대회 베스트일레븐 1회(1988)
-평가: FC서울 역사상 최초의 주전 골키퍼이자 20세기 FC서울 최고의 골키퍼. 1984 시즌에 창단멤버로 입단하여 은퇴할 때까지 원클럽맨으로 활약했다. 1991 시즌에 현역에서 은퇴했으나 1996~1997 시즌에는 팀에 골키퍼가 부족하자 잠시 플레잉코치로 선수로 등록했다. 하지만 경기는 출전하지 않았고 1997 시즌에 다시 축구화를 벗었다.
(P.S: 김현태의 FC서울 통산 기록에는 전국축구선수권대회 6경기가 기록미상으로 집계되지 않았다. 해당 경기들의 기록이 확인되면 김현태의 출전기록은 최대 123경기까지 늘어난다)
김태영(1984~1986): 3경기
-우승기록: 없음
-개인수상: 없음
-평가: 창단멤버였고 팀에 3년 동안 몸담았으나 1986 시즌에 프로축구선수권대회(리그컵)에서만 3경기 출전에 그쳤다. 은퇴후에는 국제심판으로 활동했으며 1999년에는 AFC에서 엘리트 국제심판으로 선정됐다.
이용수(1984): 25경기 8골
-우승기록: 없음
-개인수상: 없음
-평가: 창단멤버이자 1984 시즌 팀내 득점 2위.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해군 축구단과 상업은행 축구단을 거쳐 럭키금성 황소(現 FC서울)에 합류했다. 1984 시즌에 25경기 8골을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선보였으나 1년만에 할렐루야 축구단으로 이적했다. 은퇴 후에는 KBS 해설위원과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역임했다.
박정일 (1984): 18경기 4골
-우승기록: 없음
-개인수상: 없음
-평가: FC서울 통산 1호골 득점자. 청구고등학교, 건국대학교를 졸업한 뒤 대우 로얄즈(現 부산 아이파크)의 창단멤버로 입단했다가 1984년에 다시 럭키금성 황소(現 FC서울)의 창단멤버로 합류했다. FC서울 창단 첫 경기였던 1984년 3월 31일 할렐루야와의 K리그 경기에서 강득수의 어시스트를 받아 첫 골을 신고했다. 그러나 1984 시즌이 끝나고 럭키금성에서 방출된 뒤 1985 시즌 후반기에 현대 호랑이(現 울산 현대)로 팀을 옮겼다.
(1) 1984 시즌 창단 공신들
(2) 1980년대 후반기 선수들 (럭키금성)
(3) 1990년대 전반기 선수들 (LG치타스)
(4) 1990년대 후반기 선수들 (안양LG)
(5) 2000년대 전반기 선수들 (안양LG)
(6) 2000년대 후반기 선수들 (귀네슈호)
(7) 2010년대 전반기 선수들 (황금시대)
(8) 2010년대 후반기 선수들 (암흑기)
연재순서는 이렇게 됩니다!
(1) 1984 시즌 창단 공신들
(2) 1980년대 후반기 선수들 (럭키금성)
(3) 1990년대 전반기 선수들 (LG치타스)
(4) 1990년대 후반기 선수들 (안양LG)
(5) 2000년대 전반기 선수들 (안양LG)
(6) 2000년대 후반기 선수들 (귀네슈호)
(7) 2010년대 전반기 선수들 (황금시대)
(8) 2010년대 후반기 선수들 (암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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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현태선수 설명에서 최초의 No.1이라는게 무슨 의미인가요? 등번호인가요 아니면 퍼포먼스가 좋은 키퍼라는뜻인가요
그리고 김현태는 구단 최초의 주전 골키퍼라는 뜻에서 NO.1을 썼는데 이게 의미가 중의적으로 전달될 수도 있다는 걸 고려하지 못했네요.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항상 정보 감사드려요! 너무 재밌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