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Player] 박용호의 FC서울 통산 기록.JPG
[정리] FC서울 선수들의 개인 통산 기록 게시글 모음.TXT
https://blog.naver.com/asdike/221738220034
(사진출처=FC서울)
*프로필
-성명: 박용호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81년 3월 25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포지션: 중앙 수비수
-학력사항: 인천 석남서초등학교, 인천 부평동중학교, 인천 부평고등학교
*FC서울 이력사항
FC서울 => 2000/01~2004/11, 2006/12~2012/01
(2004/12~2006/11은 광주 상무 축구단에 임대되어 군복무 수행)
*FC서울 주요 성적
-K리그1 우승 => 2000, 2010
-K리그1 준우승 => 2001, 2008
-리그컵 우승 => 2010
-리그컵 준우승 => 2007
-FA컵 8강 => 2000, 2011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 2001/02
바르고 고운말을 사용해주세요.
참고로 박용호는 등번호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갖고 있습니다. 박용호는 서울에 입단한 뒤 2004 시즌까지 5년 동안 등번호 14번을 달고 경기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상무에서 전역한 뒤로는 2009 시즌까지 3년 동안 등번호 4번을 달았습니다.
하지만 박용호는 2010 시즌 개막을 앞두고 등번호를 4번에서 15번으로 변경했습니다. 박용호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9년에 주장완장을 차고 부평고의 전국대회 3관왕을 이끌었는데, 이 당시 그의 등번호가 15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박용호는 우승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유망주 시절 등번호를 서울에서 다시 단 것이었죠. 그리고 공교롭게도 박용호가 등번호를 바꾼 그 해, 박용호와 FC서울은 10년 만에 K리그 정상을 다시 탈환하게 됩니다 :)
하지만 박용호는 2010 시즌 개막을 앞두고 등번호를 4번에서 15번으로 변경했습니다. 박용호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9년에 주장완장을 차고 부평고의 전국대회 3관왕을 이끌었는데, 이 당시 그의 등번호가 15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박용호는 우승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유망주 시절 등번호를 서울에서 다시 단 것이었죠. 그리고 공교롭게도 박용호가 등번호를 바꾼 그 해, 박용호와 FC서울은 10년 만에 K리그 정상을 다시 탈환하게 됩니다 :)
박용호는 고교 시절 이천수, 최태욱과 함께 '부평고 3인방'으로 불리며 특급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2000년에 안양 LG 치타스(現 FC서울)에 입단했습니다. 그리고 광주 상무에서 군복무를 수행한 2년을 제외하면 FC서울에서 총 10시즌을 소화했습니다. 데뷔 초기에는 K리그 우승과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을 달성했고, 2010~2011 시즌엔 팀의 주장을 역임하며 팀의 2010 K리그 우승과 2010 리그컵 우승에 기여했죠.
그러나 박용호는 2012 시즌을 앞두고 현금 트레이드 형식으로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며 서울과 결별합니다. 그리고 부산에서 2년 동안 활약한 뒤 말레이시아 ATM FA와 강원FC 등 여러에서 활약을 이어가다 2016 시즌을 끝으로 코치로 전향했습니다. 이후 박용호는 강원FC에서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를 쌓아나갔으며 2018 시즌에는 잠시 FC서울에서 코치직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2019 시즌부터 현재까지는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코치직을 역임중입니다.
그러나 박용호는 2012 시즌을 앞두고 현금 트레이드 형식으로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며 서울과 결별합니다. 그리고 부산에서 2년 동안 활약한 뒤 말레이시아 ATM FA와 강원FC 등 여러에서 활약을 이어가다 2016 시즌을 끝으로 코치로 전향했습니다. 이후 박용호는 강원FC에서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를 쌓아나갔으며 2018 시즌에는 잠시 FC서울에서 코치직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2019 시즌부터 현재까지는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코치직을 역임중입니다.
박용호는 고교 시절 이천수, 최태욱과 함께 '부평고 3인방'으로 불리며 특급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2000년에 안양 LG 치타스(現 FC서울)에 입단했습니다. 그리고 광주 상무에서 군복무를 수행한 2년을 제외하면 FC서울에서 총 10시즌을 소화했습니다. 데뷔 초기에는 K리그 우승과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을 달성했고, 2010~2011 시즌엔 팀의 주장을 역임하며 팀의 2010 K리그 우승과 2010 리그컵 우승에 기여했죠.
그러나 박용호는 2012 시즌을 앞두고 현금 트레이드 형식으로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며 서울과 결별합니다. 그리고 부산에서 2년 동안 활약한 뒤 말레이시아 ATM FA와 강원FC 등 여러에서 활약을 이어가다 2016 시즌을 끝으로 코치로 전향했습니다. 이후 박용호는 강원FC에서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를 쌓아나갔으며 2018 시즌에는 잠시 FC서울에서 코치직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2019 시즌부터 현재까지는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코치직을 역임중입니다.
그러나 박용호는 2012 시즌을 앞두고 현금 트레이드 형식으로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며 서울과 결별합니다. 그리고 부산에서 2년 동안 활약한 뒤 말레이시아 ATM FA와 강원FC 등 여러에서 활약을 이어가다 2016 시즌을 끝으로 코치로 전향했습니다. 이후 박용호는 강원FC에서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를 쌓아나갔으며 2018 시즌에는 잠시 FC서울에서 코치직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2019 시즌부터 현재까지는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코치직을 역임중입니다.
Nariel
참고로 박용호는 등번호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갖고 있습니다. 박용호는 서울에 입단한 뒤 2004 시즌까지 5년 동안 등번호 14번을 달고 경기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상무에서 전역한 뒤로는 2009 시즌까지 3년 동안 등번호 4번을 달았습니다.
하지만 박용호는 2010 시즌 개막을 앞두고 등번호를 4번에서 15번으로 변경했습니다. 박용호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9년에 주장완장을 차고 부평고의 전국대회 3관왕을 이끌었는데, 이 당시 그의 등번호가 15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박용호는 우승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유망주 시절 등번호를 서울에서 다시 단 것이었죠. 그리고 공교롭게도 박용호가 등번호를 바꾼 그 해, 박용호와 FC서울은 10년 만에 K리그 정상을 다시 탈환하게 됩니다 :)
하지만 박용호는 2010 시즌 개막을 앞두고 등번호를 4번에서 15번으로 변경했습니다. 박용호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9년에 주장완장을 차고 부평고의 전국대회 3관왕을 이끌었는데, 이 당시 그의 등번호가 15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박용호는 우승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유망주 시절 등번호를 서울에서 다시 단 것이었죠. 그리고 공교롭게도 박용호가 등번호를 바꾼 그 해, 박용호와 FC서울은 10년 만에 K리그 정상을 다시 탈환하게 됩니다 :)
피망 2021.05.11.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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