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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Seoul Player] 박철우의 FC서울 통산 기록.JPG

title: 뗑컨Nariel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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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FC서울 선수들의 개인 통산 기록 게시글 모음.TXT

https://blog.naver.com/asdike/221738220034


(사진출처=FC서울 온라인 박물관)



*프로필

-성명: 박철우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65년 9월 29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80kg 

-포지션: 골키퍼

-학력사항: 청주상업고등학교(現 청주대성고)


※FC서울 이력사항

-LG 치타스 (現 FC 서울) => 1992/01~1994/12


※FC서울 주요 성적

-K리그1 준우승 => 1993

-리그컵 준우승 =>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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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title: 뗑컨Nariel 글쓴이 2021.07.05. 23:37
박철우는 1992~1994 시즌에 LG치타스(現 FC서울)에 몸담았던 골키퍼이며 FC서울 역대 골키퍼들 중 승부차기를 가장 잘 막았던 선수입니다. 그리고 FC서울 소속으로 월드컵에 참가했던 유일한 골키퍼입니다. 박철우는 청주상고(現 청주대성고)를 졸업하고 1985 시즌에 K리그에 입성했습니다. 1986 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에서 포항제철의 골문을 지키며 럭키금성 황소(現 FC서울)에 패배를 안기기도 했지요.

이후 박철우는 1987 시즌부터 1989 시즌 중반까지 2년 6개월 간 상무 축구단에서 군복무를 수행한 뒤 포항으로 복귀합니다. 그리고 1991 시즌에 정기동을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이에 LG치타스는 전경준과 차상광을 포항에 내주고 박철우와 손형선을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그렇게 박철우는 치타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 박철우는 1992 시즌에 김봉수, 임종국과 함께 NO.1 자리를 놓고 치열한 주전경쟁을 펼쳤습니다. 당시 박철우는 K리그 10경기, 리그컵 3경기 출전을 기록했으며 임종국은 K리그 9경기 리그컵 6경기 출전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김봉수는 리그 12경기, 리그컵 4경기 출전을 기록했지요. 하지만 이 경쟁의 최종 승자는 김봉수와 임종국에게 돌아갔습니다. 시즌 마지막에 열린 리그컵 챔피언결정전 1,2차전에서 NO.1 골키퍼로 선택된 선수는 김봉수였지요. 그리고 임종국은 2차전 후반전에 김봉수를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았습니다. 반면에 박철우는 벤치에 머무르며 팀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지켜봐야했습니다.

절치부심한 박철우는 임종국이 입대한 1993 시즌에 김봉수와 다시 주전 경쟁을 벌입니다. 그리고 박철우는 K리그 24경기에서 24실점 10클린시트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K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K리그에서는 무승부인 경우 승부차기로 승패를 가리는 제도를 한시적으로 시행했는데 박철우는 이때 승부차기로 진행된 9경기에서 8승 1패를 거두며 승부차기의 신으로 위용을 떨쳤습니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박철우는 1994 미국월드컵 대표팀 엔트리에 발탁되어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됩니다. 스페인, 볼리비아와의 1~2차전에서는 최인영에게 주전 자리를 내줘야했고 독일과의 3차전에서는 이운재에게 밀려 교체로도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최인영의 부진으로 독일에게 0-3으로 끌려가자 김호 감독은 세대교체를 고려해 나이가 어린 이운재에게 골문을 대신 맡겼지요. 이로인해 박철우의 월드컵 출전은 결국 무산됩니다.

그렇게 월드컵을 아쉽게 마무리한 박철우는 LG 치타스에서 6개월을 더 뛴 뒤 1995 시즌에 신생팀 전남 드래곤즈로 입단하며 FC서울과의 동행을 마무리합니다. 이후 박철우는 전남과 수원을 오가며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K리그 준우승 1회와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준우승 2회를 달성한 뒤 현역에서 은퇴해 지도자로 전향했습니다.
title: 뗑컨Nariel 글쓴이 2021.07.05. 23:37
박철우는 1992~1994 시즌에 LG치타스(現 FC서울)에 몸담았던 골키퍼이며 FC서울 역대 골키퍼들 중 승부차기를 가장 잘 막았던 선수입니다. 그리고 FC서울 소속으로 월드컵에 참가했던 유일한 골키퍼입니다. 박철우는 청주상고(現 청주대성고)를 졸업하고 1985 시즌에 K리그에 입성했습니다. 1986 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에서 포항제철의 골문을 지키며 럭키금성 황소(現 FC서울)에 패배를 안기기도 했지요.

이후 박철우는 1987 시즌부터 1989 시즌 중반까지 2년 6개월 간 상무 축구단에서 군복무를 수행한 뒤 포항으로 복귀합니다. 그리고 1991 시즌에 정기동을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이에 LG치타스는 전경준과 차상광을 포항에 내주고 박철우와 손형선을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그렇게 박철우는 치타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 박철우는 1992 시즌에 김봉수, 임종국과 함께 NO.1 자리를 놓고 치열한 주전경쟁을 펼쳤습니다. 당시 박철우는 K리그 10경기, 리그컵 3경기 출전을 기록했으며 임종국은 K리그 9경기 리그컵 6경기 출전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김봉수는 리그 12경기, 리그컵 4경기 출전을 기록했지요. 하지만 이 경쟁의 최종 승자는 김봉수와 임종국에게 돌아갔습니다. 시즌 마지막에 열린 리그컵 챔피언결정전 1,2차전에서 NO.1 골키퍼로 선택된 선수는 김봉수였지요. 그리고 임종국은 2차전 후반전에 김봉수를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았습니다. 반면에 박철우는 벤치에 머무르며 팀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지켜봐야했습니다.

절치부심한 박철우는 임종국이 입대한 1993 시즌에 김봉수와 다시 주전 경쟁을 벌입니다. 그리고 박철우는 K리그 24경기에서 24실점 10클린시트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K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K리그에서는 무승부인 경우 승부차기로 승패를 가리는 제도를 한시적으로 시행했는데 박철우는 이때 승부차기로 진행된 9경기에서 8승 1패를 거두며 승부차기의 신으로 위용을 떨쳤습니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박철우는 1994 미국월드컵 대표팀 엔트리에 발탁되어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됩니다. 스페인, 볼리비아와의 1~2차전에서는 최인영에게 주전 자리를 내줘야했고 독일과의 3차전에서는 이운재에게 밀려 교체로도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최인영의 부진으로 독일에게 0-3으로 끌려가자 김호 감독은 세대교체를 고려해 나이가 어린 이운재에게 골문을 대신 맡겼지요. 이로인해 박철우의 월드컵 출전은 결국 무산됩니다.

그렇게 월드컵을 아쉽게 마무리한 박철우는 LG 치타스에서 6개월을 더 뛴 뒤 1995 시즌에 신생팀 전남 드래곤즈로 입단하며 FC서울과의 동행을 마무리합니다. 이후 박철우는 전남과 수원을 오가며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K리그 준우승 1회와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준우승 2회를 달성한 뒤 현역에서 은퇴해 지도자로 전향했습니다.
title: POTM3 나상호Seoulite 2021.07.06. 00:05
Nariel
오오...우리 구단 월드컵 출전 골리를 배출한 팀이었군요...! 오늘도 새로운 사실 알아갑니다! (ㅇㅁ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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