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스포츠 스토리텔러 키성용] 나는 스완지에서 다시 태어났다
https://m.blog.naver.com/kisy1989/223285343175
유럽 무대를 마음에 품지 않은 축구선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꿈으로 가는 기회는 2008년에 처음으로 왔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오퍼가 왔는데, 나도 그렇고 팀도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나는 2007년에 세뇰 귀네슈 감독이 FC서울에 부임하면서 경기에 나서기 시작해서 막 성장하는 단계였다.
2009년 여름, 다시 한번 이적 제안이 왔다. 팀 주축 선수가 됐고, 대표팀에서도 경기에 나서던 시점이었기에 당연히 해외로 나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문제는 시기였다. 유럽은 여름에 새 시즌을 시작하는데 우리는 그때 한창 시즌을 치르고 있었다. 게다가 (이)청용이도 다른 팀에서 제안받았기에 팀도 고민에 빠졌다.
바라던 제안을 받은 후에 스트레스가 상당히 컸다. ‘지금 못 나가면 다음에 갈 수 있을까?’ 냉정히 평가해서 그 당시 기성용은 좋은 제안을 선택해서 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K리그 시즌을 치르는 중이었기에 팀에서 보내주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유럽에서 뛰고 싶은 마음과 현실이 부딪히면서 괴로웠다.
청용이가 여름에 나가고, 나는 겨울에 이적하는 걸로 정리된 이후에도 안타까움은 있었다. 내가 나쁜 놈이 됐다고 할까. 팀은 초반에 잘 나가다가 후반기 막판에 조금 떨어지면서 3위로 시즌을 마쳤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전남드래곤즈와 승부차기를 했는데, 하필 내가 못 넣었다. 그전에도 몇몇 팬들이 ‘기성용 열심히 안 한다’, ‘쟤 마음 떴다’라고 했는데 끝도 이상하게 나버렸다.
당시 기록을 보면 4골 10도움으로 K리그에서 가장 잘한 시즌이었는데, 억측과 예기치 못한 이별로 마음이 아프게 떠났던 게 기억난다.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했다.
...
나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웨일스로 날아와 코칭 라이선스 교육을 받고 있다. 교육이 끝난 후에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고 몇몇 지도자를 만날 예정이다. 아직 은퇴하면 무엇을 할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최신 전술 트렌드를 배우고 지식을 습득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배운 것들을 나눌 방법을 고민해 보려고 한다.
추천인 118
댓글은 회원만 열람할 수 있습니다.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