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구장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어
서울이라는 이유로 너무 큰 구장을 지어서 휑해 보인다고.
나처럼 목소리 꽥꽥 질러가면서 목 다 쉬어가며 축구 열심히 보는 애들이랑 잠재적인 코어 축구팬들 좀 유입하게 한 2~3만명만 들어가는, 크레이븐 코티지 같은 경기장이 참 좋겠다고.
예를 들면 아현 중학교 정도면 위치도 경기장 배치도 딱이겠다고.
(사진: 아현 중학교 운동장, 뒷편에 스탠드도 있음)
근데 애를 낳고 경기장 한두번 가다보니 N석은 애들 데려가기 너무 과하더라. 늙어서 그런가 목소리도 그만치 안 나와.
하지만 경기장이란 데가 참 가족들이 놀러오기 좋은 곳이더라고. 그리고 나처럼 나이든 친구들이 E석, W석으로 이동하면서 점점 소리는 안 지르지만 응원하는 분위기도 짙어지고 있어.
그러다보니 생각이 차츰 바뀌더라고. 여긴 놀이공간이구나. 축구는 공놀이구나. 한 경기 한 경기는 중요하지 않구나.
그렇게 보다보니 이 팀에 빠져든지 15년이 넘었어. 그래서 이 팀에 대한 내 사랑이 너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어린 친구들이 무슨 말하는지는 이해해.
(사진: 아챔 결승 선수들 입장할 때 찍은 사진. 다들 머플러랑 클래퍼 들기 전이라 부산하다)
가끔 글에 쓰지만 나도 05년 주멘의 첫 해트트릭, 이 팀의 우승 3회, 아챔 준우승, 강등 플레이오프를 현장에서 보았던 사람이야.
그리고 그런 사람 이 팀에 널리게 많아... 동대문에서부터 따라온 사람 아니면 올드팬이라고 명함 들이밀기 힘들어. 2010년대 팬들끼리 뉴비라고 하는게 그런거지 뭐.
그런 친구들은 현실에 치여서, 체력이 안돼서 N석에서 소리 높여 노래하지 못하고 깃발을 들지 못할지도 몰라. 그리고 항상 코어에서 뛰어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워 하고 있어.
(사진: 시티 리그 우승하고 울고 있는 올드팬. 이게 내 모습이길 바라고 광저우에 갔건만...)
오래 봤다고 나이 먹었다고 부심 부리는 게 아니야.
그냥 팬들이 경기를 즐기거나 응원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더라고.
난 이 팀에서 탈출은 글렀고 어차피 망한거 오랫동안 볼 수 있게 천천히 강팀의 모습을 회복했으면 좋겠어. 그 때쯤 되면 6만석도 충분히 차겠지.
사골국물처럼 약불에 오래 끓는 팬들도 있어야지 않을까 싶어. 모두가 강불에 팔팔 끓는 불꽃같은 팬들이면 주변에서 못 다가오니까.
추천인 40
댓글은 회원만 열람할 수 있습니다.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