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 역사상 최악의 시즌: 늦겨울, 혹은 초봄 - 2020 회고록(1)
“감독님, 우린 언제까지 이런 축구를 봐야 하나요?”
“...발악을 해도 되는 게 없습니다...”
처음이었다. 항상 자신만만했던 그의 입에서 나온 이런 말투는.
1-5, 안방에서 팀이 갈기갈기 찢어진 모습을 보며 최용수 FC 서울 감독은 감독 커리어 역사상 처음으로 팬들 앞에서 스스로의 의지를 놓아버린다.
3승 1무 9패,
FA컵 8강 탈락.
죽도록 발악을 했다는 이 팀의 중간 성적이었다.
2019시즌 3위였던 팀이
2020시즌에는 강등권으로.
팀 분위기는 마치 무슨 바이러스라도 퍼진 듯 축 처진 분위기가 이곳 저곳에 전염되어 있었다.
이 팀은 없었다.
답이.
.
.
.
그러면 잠시 ‘그 바이러스’가 퍼지기 이전으로 돌아가보자.
2019 시즌, 서울은 2018년의 상처를 이겨내고 기적적인 리그 3위 수성으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FC서울에게 2019 시즌이란,
불과 그 이전 시즌까지만 해도 강등 플레이오프에서 허덕이던 팀을 그야말로 혼자만의 힘으로 끌어올린 영웅적인 대서사시와도 같았다.
그 중심에는 돌아온 히어로 최용수가 있었다.
“미생들로 이루어낸 결과다”라는 인터뷰처럼, 완벽하지 않은 전력으로 3위까지 이루어낸 데에 강한 자부심이 있었고,
그가 누렸던 영광의 시절처럼 다시 팀을 강력하게 휘어잡고 2020시즌을 이끌어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의외라고 하겠지만, 이 사람은 전술가다. K리그에서 전술에 대한 욕심에는 최용수를 따라올 자가 많지 않다.
새벽마다 해외축구를 많이 보는 그가 여느 때와 같이 해외축구를 보며 전술을 참고하던 도중,
왠지 모르게 자꾸 눈에 띄는 팀이 있었다.
그건 바로 셰필드 유나이티드.
셰필드는 그 시즌 프리미어리그 승격팀으로서 3백 양 옆의 스토퍼들을 극단적으로 올리는 3-5-2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침 최용수의 포메이션도 같은 3-5-2. 최용수는 셰필드의 경기를 보며 아이디어를 얻는다.
예전처럼 ‘선수빨 축구’가 도저히 불가능해진 팀의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수비지향적인 축구로 팀을 운영하게 되었던 그도 내심 공격축구가 너무 하고 싶었던 모양.
최용수는 셰필드 이외에는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전에 없었던 새로운 3-5-2 전술을 팀에 이식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해가 지나 어느덧 팬들을 설레게, 혹은 빡치게 만드는 겨울 이적 시장이 찾아왔다.
최용수는 일찍이 구단에 한 선수의 영입 요청을 한다.
서울이 가장 먼저 영입에 뛰어든 선수는 인천에서 뛰고 있던 강철 체력의 윙백 김진야.
프런트는 긴 시간 끝에 인천과의 이적료 협상을 완료했고, 마침내 김진야 영입에 성공했다.
김진야는 인천 성골 유스 출신으로,
본래는 윙어 출신이었지만 대표팀에서는 윙백에서 뛰는 등 애매한 포지션으로 성장이 정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던 와중이었다.
이에 김진야는 본인에게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3-5-2의 왼쪽 윙백에서 붙박이로 뛸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서울의 러브콜이 오자 본인의 확실한 포지션을 자리잡기 위해, 야망을 펼치기 위해 새로운 팀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서울이 데려온 두 번째 선수는 ‘네버스탑’ 한찬희.
‘한국축구를 구할 다섯 사도’라는 한 게임의 오글거리는 소개 문구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한찬희는 재능 중의 재능이다.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K리그에 데뷔해 전남에서만 뛴 그야말로 성골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제 2의 기성용’으로 불리던 재능답게 플레이메이킹 능력이 좋고, 무엇보다 빠따 힘이 대단하다.
이 이적은 놀랍게도, 무려 전남이 먼저 제의를 했다. 전남의 전경준 감독이 서울에서 거의 출장하고 있지 못하던 황기욱을 강력히 원했기 때문이다.
이 이적은 황기욱과 신성재를 포함한 2:1 트레이드로 성사되었다.
세 번째 영입은 최용수 감독이 이미 1년 전부터 간절히 원하던 한승규였다.
한승규는 2018 시즌 울산에서 영플레이어상을 받을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은 선수였으나, 전북으로 이적한 이후 모라이스는 그를 주전으로 쓰지 않았다.
한승규는 중미-공미를 오가면서 드리블과 전진성이 뛰어난 플레이를 즐긴다. 때로는 혼자서 결정을 지을 줄도 안다.
결과는 가져오지만 내용은 답답하기 그지없는 최용수 특유의 전술에 활기를 불어다 줄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자원이었다. 비록 임대 영입이었지만 확실하게 팀이 도움이 될 수 있는 평가를 받는 선수.
그리고 이때는 몰랐다.
전북의 초록색으로 인스타 피드가 잔뜻 물들었던,
그 때문인지 처음에는 이 친구를 미덥지 않게 생각했던 서울팬들의 마음까지 빼앗아간 재간둥이가 될 줄은.
그리고 마지막 영입.
최용수는 과거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아드리아노를 데려온다.
이른바 ‘서울의 마지막 전성기’로 불리는 2016년,
무려 한 시즌에 모든 대회를 통틀어 35골을 넣으며 그 누구도 무서울 게 없던 전성기를 누린 악동 스트라이커는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중국으로 이적했으나 부진 끝에 팀을 떠났다.
K리그에서 보여준 게 워낙 많았기 때문에 아드리아노는 다시 K리그 팀들의 관심을 받았고,
결국에는 서울이 아닌 전북으로 이적하게 되지만 두번째 시즌 당한 장기 부상으로 인해 완전히 팀을 떠나 있던 상황.
최용수는 아드리아노를 개성 있는 외국인 선수로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며, 그저 팀에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만 주었다.
그러나 이 친구의 문제는 특유의 초딩 멘탈.
그를 옆에서 제대로 케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던 와중에 또 부상으로 너무 오래 쉬었기 때문에 아드리아노의 몸상태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는 팬들 또한 많았다.
게다가 이 친구의 특유의 멘탈상 과연 몸 상태 관리를 철저히 했을지가 의문이었다.
구단은 기존 선수들과도 재계약을 마친다.
올 시즌 스리백 수비의 핵이 될 김남춘은 2022년까지의 재계약에 서명했다.
그는 “처음과 끝도 서울과 함께 하고 싶다”라는 소감으로 구단에 뼈를 묻을 각오로 새 시즌을 준비했다.
그래도 이렇게 분명 2020시즌 시작 전 서울의 영입 시장 평가는 나름 괜찮은 편이었다.
분위기는 분명히 좋았고, 포르투갈로 떠난 전지 훈련에서도 무려 볼프스부르크와 비기는 등 경기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전지훈련 중간에 최용수의 살벌한 라커룸 대화가 유출되는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그때 서울팬들도 같이 오줌을 지릴 뻔했다.
어쨌거나, 서울 팬들의 분위기는 분명 나쁘지 않았다.
‘그 뉴스’가 뜨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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