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은 패륜인가?(Feat.서울공동화 정책)
1. 서울 연고지를 희망하는 럭키금성으로 창단
1-1. FC서울의 시초인 럭키금성은 서울 연고지를 희망하고 창단하였으나, 대한축구협회에 의해 충청도로 배정 받았다.
1-2. 1984~1986년은 정부 규제로 인해 지역 연고제가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구단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중립 경기를 했다.
1-3. 1987~1989년은 광역 연고제를 시행하여 팀들은 각자의 광역 연고지에서 홈 경기를 했다.
2. 1990년 서울로 연고이전
2-1. 도시지역 연고제(시연고제)가 시행되어 현대는 강원도에서 울산으로, 럭금은 충청도에서 서울로, 대우는 경상남도에서 부산으로, 포철은 경상북도에서 포항으로 연고 이전을 하였다.
2-2. 1991년 모기업 명칭 변경에 따라 구단명을 LG 치타스로 변경 했다.
3. 서울공동화 정책으로 인해 안양으로 강제 연고 이전
3-1. 정부는 월드컵 개최를 위해 지역 연고제 바탕의 지방 축구 열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서울 지역 공동화 정책을 추진 했다.
3-2. 서울공동화 정책으로 인해 서울을 연고지로 하던 3팀(LG, 일화, 유공)은 서울에 축구 전용구장을 건립하지 않을 경우 타지역으로 연고지를 이전하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3-3. 일화는 천안으로, 유공은 부천으로 연고지를 이전 했다.
3-4. LG는 전용구장 건립까지 검토했지만 부지 확보 과정에서 주민들의 반발로 인해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여 안양으로 연고 이전을 하였다.
3-5. 1996년 연고 이전 후 구단명을 안양 LG 치타스로 변경 했다.
4. 서울로의 연고 복귀
4-1. 서울시는 월드컵 개최 이후 비어 있던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프로축구 팀의 홈 구장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4-2. 연맹은 신생 구단 창단을 우선 원칙으로 하였으나 서울시는 구단 창단 및 운영 비용에 부담을 느꼈고, 기업들은 경기장 사용료에 난색을 표했기 때문에 기존 구단들에서 서울 지역 연고를 희망 받기로 하였다.
4-3. 안양 LG치타스와 부산 아이콘스가 연고 이전 의향서를 제출 했다.
4-4. 서울시는 안양 LG 치타스를 연고 구단으로 하고자 했고, 이에 부산 아이콘스는 이전 신청을 철회 했다.
4-5. 긴급 이사회를 통해 안양 LG 치타스의 서울 연고 복귀는 만장일치로 승인 되었다.
4-6. 안양 LG 치타스는 모기업이 GS로 변경 되었고, 연고 복귀 후 구단명을 FC서울로 바꿨다.
FC서울은 패륜인가?
FC서울은 안양 LG 치타스 시절에도 언론을 통해 서울로의 연고 복귀를 희망 하였다.
충청도로 강제 배정 된 럭키금성 시절과 서울에서 안양으로 강제 이전 된 LG 치타스 시절에도 쭉 서울 연고만을 희망 하였다.
그리고 그 팀은 지금 서울에 있다.
FC서울은 패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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