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점이 적은 황의조'에 대한 변호
국축 안 보는 아빠랑 동생이 황의조 왜 이렇게 못하냐 할 때 난 그런 말을 했다.
"우리 팀이 톱한테 뭘 해주는 팀이 아니라, 톱 보고 자꾸 뭘 해달라고 하는 팀이어서 어쩔 수 없다" 고.
황의조가 골을 못 넣는 걸 넘어 슛도 점차 주저하고 때리는 슛의 파괴력도 점차 떨어져가는 건 물론 나도 아쉽지만(그리고 지금의 기록으로 선수가 원하는 팀에 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지금 황의조가 하는 역할은 톱 한 명보다는 훨씬, 정말 훨씬 더 큼
우리는 중원에 적극적으로 가담해주는 황의조가 없으면 오스마르를 리베로 느낌으로 쓰기 굉장히 어려움. 오스마르가 수비나 후방전개 시에 센터백 둘 사이로 들어가서 맡은 일을 하는 게 팀한테 꽤 핵심적인 역할인데, 황의조가 계속 내려와주지 않으면 중원 숫자가 적어지고 기성용 팔로세비치가 (물론 글로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실력자지만) 냉정히 말해 많이 뛰고 싸움을 걸어서 주도권을 뺏는 스타일은 아니니 오스마르를 이렇게 쓰긴 매우 힘들어질 거임. 숫자와 활동량이 모두 3~4명을 가담시킬 상대 중원에 비해 떨어질 테니까.
또한 우리는 2선이든 측면이든 다양한 공격적 위치로 모두 뛰어주는 황의조가 없을 때 공격진 전반의 파괴력 감소를 막기 힘들 거라고 생각함. 나상호가 중앙으로 치고들어가거나 박스 안에서 자리잡아서 슛을 노릴 때, 중앙 공격수가 나상호의 원래 위치로 빠져서 상대 수비를 분산시켜주지 않으면 나상호의 치명성도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거든. 혼자 한 명을 더 상대해야 하니까. 어제 경기 해설도 말했지만 윌리안이 40m를 혼자 뛰고도 2명~3명을 응집한 수비의 큰 방해를 받지 않고 골로 직결되는 결정적 슛을 때린 것도 패스를 받으면 더 위협적인 위치가 될 수 있는 곳에 황의조가 자리잡고 수비를 끌어낸 영향이 있거든. 다른 선수에게 큰 도움을 주는 위치선정이 가능한 선수가 없어지면 결국 그 다른 선수들의 기회 또한 줄어드는 상황이 찾아올 거야. 2선 정도의 위치에서 뛰어다니면서 공을 배급하는 선수가 없어지는 것도 공격 연결에 있어 적지 않은 손해일 거고
그리고 우리한테 상대가 후방에서 공을 가질 때 끊임없이 압박하는 황의조가 없으면 상대는 좀 더 수월하게 원하는 전개를 만들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압박과 활동량이 장점인 공격수가 있다고 반문할 수 있지만(물론 나도 닉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선수를 엄청 좋아해) 공을 가졌을 때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말지 모르는 선수가 공 쪽으로 저돌적으로 뛰어가는 거랑 걸리면 실점할 확률이 높은 선수가 효율적인 압박 위치를 알면서 뛰어다니는 거랑은 상대 입장에서 위압감이 많이 다르거든.
개인적으론 지금같이 팀 전반에 다 관여하면서 뛰는 황의조가 빠지는 게 앞에 배치돼서 득점에 치중하며 8골 정도 넣은 황의조가 빠지는 거랑 동급이거나 오히려 더 손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함. 골이든 뭐든 역할이 한정된 선수의 이탈은 어찌됐건 팀 전반적인 개조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뒤쪽 전개부터 공격 조율, 마무리 그리고 압박까지 전부 다 하는 선수가 나가면 이탈에 따른 수정도 나간 선수가 가졌던 넓은 영역만큼 해야 하니까. 황의조는 팀에 골 수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그게 지금의 2위 서울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함
내가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고 생각하면 질문이 두 가지 떠오르는데,
1. 역할이고 자시고 그렇다면 황의조의 슈팅 감은 왜 죽어가나?
2. 팀은 골 넣으라고 데려온 황의조를 왜 미끼로 쓰나?
이 정도가 의문일 거 같음 저 글을 다 읽었다면
간단히 설명하자면 1.은 황의조의 역할이 많은 만큼 넓은 범위를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음. 뒤로 내려가서 패스길 뚫어주고 올라가서 2선측면에 연결 한 번 해주고 다시 중앙공격으로 복귀한 뒤에 슛을 때리는 게 그냥 공격지역에서 잘 기다리다가 때리는 거랑 같은 정확성이 나면 좋겠지만, 사람 머리랑 몸이 그럴 수가 없거든. 다른 역할이 생겨날수록 머리는 생각이 많아지고 몸은 무거워짐. 애초에 이전 소속팀에서 거의 못 뛰었던 상황에서 과부하가 진작 왔어도 이상하지 않을 롤을 받은 이상 그런 장면은 어느 정돈 방법이 없지 않나 싶음
그렇다면 2. 그냥 공격지역에 놔주지? 는 코칭스태프가 우리 선수구성 때문에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음. 요새 보는 드라마의 시즌1 부분에 그런 명대사가 있다?
지금 여기 누워있는 환자한테 물어보면 어떤 쪽 의사를 원한다고 할 것 같냐?
최고의 의사요.
아니? 필요한 의사다.
20년대 들어서 서울이 참 특이한 팀이라고 느낀 게, 이름난 미드필더는 팀 나간 주세종부터 지금의 모든 선수들까지 정말 많은데 정작 필요한 미드필더가 '없다'는 거임. 많이 뛰고 빠르며 싸움을 할 줄 아는 선수는 오스마르와 기성용을 모두 쓰는 우리한테 정말 필요한 존재지만, 결국 그 선수는 감독이 수 번 바뀐 지금까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음. 팔로세비치는 지금 위치보단 앞에 있을 때 가장 번뜩이는 선수고. 그렇다면 오스마르를 반쯤 센터백 느낌으로 빼면서 기팔 2.5미들을 쓰는 우리한텐 결국 그것만으론 중원싸움에서 열세가 될 수 있는 상황을 다른 포지션의 누군가를 개입시켜서 해결하는 움직임이 중요함. 난 결국 앞에 ○○○이 붙어버린 인버티드 풀백도 감독이 단순히 해외 유우명 전술이니까 벤치마킹했다기보단, 그런 팀의 특성에 잘 맞춰보고자 한 고민이 아니었을까 싶음.
근데 그 인버티드는 결국 22년을 거치면서 메인으로 쓸 물건이 아니라고 판명났잖아? 그러면 수비불안을 줄이면서 중원싸움을 이길 방법은 앞에 있는 선수를 끌어들이는 거고, 마침 많이 뛰고 패싱센스도 있는 황의조가 오면서 우리는 그 약점을 일시적으로나마 제대로 메워 2위가 된 거임. 요약하면 황의조가 공격수의 정통적인 역할을 못 하는 상황 자체는 아쉽지만 그건 능력을 다른 데 써서고, 그렇게 된 이유도 누군가의 판단 착오라기보단 팀의 상황 속에서 최선의 결과가 그거인 거지.
물론 이름값을 생각하면 2골이 빈약한 게 맞지만, 비어있는 골들은 나상호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이 황의조의 기여를 받고 채운 거지 그냥 없어진 게 아니라고 생각함
근데 쓰고 보니까 한 달 뒤에 황의조 나가면 진짜 어떡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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