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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이 끊은 우리의 고리, 축구장에서 잇다

알로에베라킹 title: 뗑컨알로에베라킹 9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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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축구칼럼이 아닙니다

 

 

 요즘은 좀 진정세가 보이는 것 같지만, 2주쯤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칼부림의 공포에 시달렸다. 자꾸 누군가 다치고 다른 누군가는 유명을 달리했으며 사람들은 공포에 빠졌다. 그 공포는 표면적으로는 '내가 밖에 나갔다가 살아서 집에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지?' 겠지만, 들여다보면 더욱 심각했다. 믿기 힘든 소식이 계속되는 세상에 떨어진 후, 우리는 서로를 믿을 수 없었다. 길을 걷다 누가 뒤에서 걸어오기만 해도 불안했고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면 끝없이 주위를 둘러봐도 안심할 수 없었다. 남이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당연한 믿음은 무너졌고, 바깥에 나간 우리를 둘러싼 인파는 더 이상 동료 시민이 아니라 나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는 수상한 사람이었다. 길바닥엔 아스팔트가 가득하고 옆을 둘러보면 고층 빌딩이 가득한 평소의 세상임에도 문명 이전의 정글을 헤쳐나가는 것과 같은 심정을 가져야 했다. 뉴스가 잠잠하고 더는 흉기나 묻지마 같은 키워드의 기사가 매일같이 올라오지 않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 암담함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하고 있을 것이다.

 

 축구장에도 사람이 많다. 집단을 노리는 범죄의 타겟이 되려면 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축구장에 가는 것도 두려웠다. 대구와의 홈 경기에 무서운 마음을 참고 갔지만 남은 건 후회밖에 없었다. 전철에서 이어폰도 끼우지 못하고, 눈도 붙이지 못하고 내내 주변에 무슨 일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왕복 네 시간을 다니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밥을 먹는 도중에도 뒤를 계속 돌아봐야 하는 불안함 속에 바깥에 있는 건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에 다름없었다. 심지어 당일 오후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는 합정역에서 흉기 소지자가 체포됐다는 소식도 날아들었다. 그 날 이후 직관은커녕 다른 곳에 사는 가족과의 약속도 포기했고, 집에 처박혀 있었다. 창문 밖이 내가 알았던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위해를 입을 수 있다는 공포감만큼이나 사회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약속을 존중받을 수 없다는 상실감이 컸으니까.

 

20230902_154737.jpg

 

 걸어서 20분짜리 직관을 마다하는 팬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게 라이벌전이면 더더욱. 가지 않기엔 수원월드컵경기장이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오랜만에 걸어나왔다. 다행히 거기에 가서 본 사람들은 무서움에 떨기보다는 뜨거워지는 경기장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서로 증오하는 두 집단이 모여 있었지만, 경기장 바깥에서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대하는 모습, 긴장하는 모습 그리고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찾아 줄을 서는 모습. 다행스럽게도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었다. 그래서 무섭지 않았다. 

 

 경기장에 들어간 뒤에 더 큰 안도를 느낄 수 있었다. 전반전 도중 오른쪽 좌석이 전부 소란스러워졌다. 팬들 중 한 명이 폭염에 쓰러진 것이다. 최근의 상황을 생각하면 다른 일이 터진 줄 알고 소동에 빠지거나 경기장에서 빠져나가려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지만(사실 나는 처음 사람들이 웅성거렸을 때엔 그런 쪽으로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에 어지러웠다), 사람들은 자신의 공포를 표출하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없었다. 대신 모두가 쓰러진 관중의 이송을 요구하며 응원을 멈췄고, 경기를 중단해 달라고 X자를 그렸다. 원래 선수단의 부상 치료를 목적으로 경기장에 출근하는 구단 의무팀도 "우리 팬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이야기와 함께 광고판과 펜스를 넘어 관중석으로 달려왔다. 우리가 수많은 사건이 있기 이전처럼 서로를 믿고 있음을, 누군가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려 함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동료 시민이고 그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당연하지만 흔들린다 생각했던 진리를 그렇게 다시 새길 수 있었다.

 

 팬이나 관계자로부터 축구는 단순히 공놀이가 아니라는 말을 유독 다른 스포츠에서보다 자주 듣는다. 그 사람들은 팀의 역사와 자존심 같은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 말을 썼겠지만, 나는 다른 의미에서 이해하고 싶다. 축구는 삶이기도 하고 이유이기도 하며 때론 불신과 공포를 극복케 하는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잘 모르는 타인의 일에 이입하고 감동받은 일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일을 만들어준 것만으로 축구는 커다란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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